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9년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었다고 밝혔습니다. 또 회담이 무산된 이유가 북한 측의 무리한 대가 요구였음을 강하게 내비쳤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한국의 한 언론과 가진 퇴임 인터뷰에서, 지난 2009년 추진된 남북정상회담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안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밝혔다고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이 전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또 김 위원장이 이런 뜻을 원자바오 당시 중국 총리를 통해 전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당시엔 쌀이나 보리를 달라는 식이 아니라 그냥 만나고 싶다고 했다며,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고 핵 문제에 진전이 있다면 만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또 원 총리를 통해 김 위원장이 서울로 답방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원 총리가 김 위원장이 먼저 만나자고 했으니까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게 좋겠다고 설득해 북한을 방문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뒷얘기도 전했습니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이 자신을 만나겠다고 한다니까 그 밑에 있는 김양건 같은 사람이 실무적으로 연락을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과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2009년 싱가포르에서 여러 번 접촉한 일도 이런 남북정상간 간접적인 교감이 있고 나서 이뤄진 일이었음을 확인한 겁니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이 끝내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선 김 위원장 밑에서는 한국 대통령이 북한에 오려면 당연히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이제까지 해 오던 방식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었던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그 같은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활용할 의도가 있었다면 북측의 요구를 들어주고 정상회담을 했을 것이라고 말해 북측이 정상회담 대가를 요구했음을 강하게 내비쳤습니다.
다만 대가 요구가 김 위원장의 지시였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며, 김 위원장은 그런 것을 떠나서 만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임태희 전 장관은 이와 관련해 지난 해 10월 ‘VOA’와의 통화에서 김 부장이 200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만나 식량 지원 문제를 거론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자신이 그 대가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갖고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을 돌려보내는 이른바 ‘프라이 카우프’ 방식의 인도적 교환 사업을 요구했고 북측도 이를 수긍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수 억 달러 규모의 현물을 요구했고 이것이 걸림돌이 돼 한국 통일부와 북한 통일전선부 사이의 실무급 회담을 하다가 끝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임 전 장관입니다.
[녹취: 임태희 전 노동부 장관] “나중에 듣기로 장관급 회담은 이뤄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실무자 회담을 하다가 깨진 것으로 그렇게 들었어요.”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된 뒤 북한은 이듬해 3월 이 대통령에 대한 실명 비판을 7개월 만에 재개했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감행하면서 한반도를 극도의 긴장 상태로 몰아갔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한국의 한 언론과 가진 퇴임 인터뷰에서, 지난 2009년 추진된 남북정상회담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안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밝혔다고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이 전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또 김 위원장이 이런 뜻을 원자바오 당시 중국 총리를 통해 전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당시엔 쌀이나 보리를 달라는 식이 아니라 그냥 만나고 싶다고 했다며,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고 핵 문제에 진전이 있다면 만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또 원 총리를 통해 김 위원장이 서울로 답방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원 총리가 김 위원장이 먼저 만나자고 했으니까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게 좋겠다고 설득해 북한을 방문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뒷얘기도 전했습니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이 자신을 만나겠다고 한다니까 그 밑에 있는 김양건 같은 사람이 실무적으로 연락을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과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2009년 싱가포르에서 여러 번 접촉한 일도 이런 남북정상간 간접적인 교감이 있고 나서 이뤄진 일이었음을 확인한 겁니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이 끝내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선 김 위원장 밑에서는 한국 대통령이 북한에 오려면 당연히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이제까지 해 오던 방식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었던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그 같은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활용할 의도가 있었다면 북측의 요구를 들어주고 정상회담을 했을 것이라고 말해 북측이 정상회담 대가를 요구했음을 강하게 내비쳤습니다.
다만 대가 요구가 김 위원장의 지시였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며, 김 위원장은 그런 것을 떠나서 만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임태희 전 장관은 이와 관련해 지난 해 10월 ‘VOA’와의 통화에서 김 부장이 200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만나 식량 지원 문제를 거론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자신이 그 대가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갖고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을 돌려보내는 이른바 ‘프라이 카우프’ 방식의 인도적 교환 사업을 요구했고 북측도 이를 수긍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수 억 달러 규모의 현물을 요구했고 이것이 걸림돌이 돼 한국 통일부와 북한 통일전선부 사이의 실무급 회담을 하다가 끝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임 전 장관입니다.
[녹취: 임태희 전 노동부 장관] “나중에 듣기로 장관급 회담은 이뤄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실무자 회담을 하다가 깨진 것으로 그렇게 들었어요.”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된 뒤 북한은 이듬해 3월 이 대통령에 대한 실명 비판을 7개월 만에 재개했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감행하면서 한반도를 극도의 긴장 상태로 몰아갔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