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들 '북한 일본인 조사 아직 예측불허'

북한의 송일호 북-일국교정상화교섭 담당대사가 지난달 28일 스톡홀름에서 열린 일본과의 국장급 협의 후 기자단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북한과 일본이 합의한 전면적인 일본인 납치 문제 재조사의 앞날은 험난하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습니다. 특히 ‘교도통신’은 재조사 분야별로 통계와 걸림돌들을 제시하며 앞날이 녹록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는데요. 김영권 기자와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북한은 현재 재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설치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우선 조사 범위부터 알아 볼까요?

기자) 양국 정부가 지난달 29일 합의한 대로 북한 내 모든 일본인 문제가 포함돼 있습니다. 납북자 등 행방불명자 뿐아니라 1945년 전후 북한에서 사망한 일본인 유골과 묘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북한에 계속 남은 잔류 일본인 문제, 그리고 과거 재일한인 북송사업에 따라 한인 남편과 함께 북한에 간 일본인 배우자 등 분야가 매우 광범위합니다.

진행자) 행방불명자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기자) 북한에 납치됐을 것으로 의혹이 제기된 실종자들입니다. 일본 경찰청은 이런 행방불명자가 모두 860 명이라고 밝혔습니다. 일본 민간단체들이 독자적으로 집계한 특정실종자 규모는 470 명 정도입니다. ‘교도통신’은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 가운데 북한에 납치됐을 가능성이 큰 사람은 80여 명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이들에 관해 축적된 정보를 갖고 있다며 북한에 이들에 대한 조사를 우선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그럼 이들의 명단이 북한에 전달됐나요?

기자)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특정 실종자 명단을 전달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추가로 명단을 전달할 계획도 밝혔습니다. 하지만 인원과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진행자) 일본 정부가 공식 파악한 납북자는 몇 명이나 되나요?

기자) 17 명입니다. 하지만 소가 히토미 씨의 사례처럼 일본 정부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납북자도 있을 수 있다는 게 일본 정부의 설명입니다. 일본 정부는 북한 정부가 모든 납북자 정보를 관리하고 있는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이를 투명하게 하고, 모두 복귀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아사히’ 신문 등 일부 언론들은 북한 정부가 이런 요구에 응할지는 불투명하다고 전망했습니다.

진행자) 일본인 배우자에 관한 조사는 어떻습니까?

기자) 일본인 배우자는 1천800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1959년부터 1984년 사이 일본 내 친북단체인 재일조선인총연합 (조총련)의 재일 한인 귀환사업으로 한인 남편을 따라 북한에 간 일본인들입니다. 당시 ‘지상낙원’이라는 선전을 믿고 북송선에 오른 재일 한인은 적어도 9만3천 명에 달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어머니인 고영희도 이 때 부모를 따라 북송선에 오른 재일 한인 출신입니다. 하지만 북한 정부는 수령의 필수명분인 ‘백두혈통’ 을 내세워야 하기 때문에 이런 배경을 숨기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북한에 생존해 있는 일본인 배우자 수는 얼마나 되나요?

기자) 북송선을 탄지 수 십 년이 흘렀기 때문에 많은 배우자가 사망한 것으로 일본 정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교도통신’은 적어도 50-100 명이 평양 등지에서 생활하고 있을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다른 일부 언론들은 200-300 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일본인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의 규모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생존자 수가 예상보다 더 많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일본 언론들은 당시 북송선에 오른 일본인 배우자의 한인 남편과 자녀 등 직계가족을 모두 합하면 5천 명이 넘는다고 전했습니다.

진행자) 잔류 일본인의 규모는 어떤가요?

기자) 일본 후생노동성의 전신인 후생성은 지난 1997년 보고서에서 잔류 일본인이 적어도 1천442 명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규모를 보수적으로 잡았기 때문에 실제 규모는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교도통신’은 일본 외무성을 인용해 종전 시기 북한에 일본인 27만 명이 거주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일본으로 복귀했고 부모가 사망해 중도에 북한에 남은 자녀 등이 잔류 일본인에 포함돼 있다고 전했습니다.

진행자) 그럼 신원을 파악하기가 힘들 수 있겠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다른 일본인들보다 잔류 일본인 정보 파악이 가장 힘들다는 게 일본 언론들의 지적입니다. 하지만 일본 이민정책연구소의 사카나카 히데노리 소장은 ‘교도통신’에, 잔류 일본인의 규모가 일본인 배우자 보다는 많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령으로 생존자가 줄었기 때문에 조기 구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신원이 파악돼 일본 귀국이 성사될 경우 이들의 일본 생활 적응과 국가의 지원 제도 정비 등 여러 과제들이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지적했습니다.

진행자) 유골 현황은 어떤가요?

기자) 일본 정부와 민간인 단체들은 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에 사망한 일본인 유골 2만1천 600 구가 우선 조사대상에 포함된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평양과 청진 등 70 곳에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을 아는 유가족들이 적어 회수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교도통신’은 전했습니다. 일본 내부에서는 북한에 위령비와 합동묘지 건설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북한 정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진행자) 이런 국내 일본인 조사에 대한 북한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기자) 강경 분위기가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교도통신’ 평양지국은 9일 일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며 평양의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북한 관영 언론들이 북-일 합의 소식을 전했고, 대일 비판은 과거보다 자제하는 분위기이지만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지난 4일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는 등 비판적 여론이 여전히 높다는 겁니다. 특히 평양에서는 일본의 존재감마저 희박해지고 있다며 평양외국어대학의 예를 들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어떤 내용이죠?

기자) 1990년대 이 대학에 학년 당 70 명이 넘던 일본어 전공 학생이 지금은 불과 몇 명에 그치고 있다는 겁니다. 또 외국인 관광 안내책자가 영어와 중국어, 러시아어판으로 발행되고 있는데 일본어판은 출판되지 않는 사례들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진행자) 이제 관심사는 북한이 특별조사위원회를 언제 출범시킬지 여부인데요. 전망은 어떤가요?

기자) 구체적인 출범 시기는 아직 불투명합니다. 아베 일본 총리는 앞서 합의 후 3주 뒤 조사위원회를 설치한다고 밝혔지만 합의문에는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북한의 송일호 북-일국교정상화교섭 담당 대사는 지난 5일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조사위 설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구체적 시기와 조사 기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송 대사는 이번 조사가 일본 측과 정보를 공유하며 협의를 진행할 수 있고 정보 전달은 베이징의 양국 대사관을 통해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4차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할 경우 합의 이행이 어려워질 수 있고 도쿄의 조총련 중앙본부 매각, 만경봉호 일본 재입항 등을 놓고도 양국이 견해차를 보이고 있어서 이번 북-일 합의가 어떤 성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낙관하기 힘들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