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수용 북한 외무상 러시아 방문 목적과 전망

1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한 리수용 북한 외무상(왼쪽)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환대를 받고 있다.

북한의 리수용 외무상이 어제 (30일) 모스크바에 도착해 11일 일정의 러시아 방문을 시작했습니다. 리 외무상의 이번 방문은 북한과 러시아 간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외교적 돌파구 모색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30일 리수용 외무상의 방문을 앞두고 발표한 성명에서 두 나라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강조했습니다.

러시아는 지난 1948년 10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북한을 인정한 나라이며, 두 나라 국민들은 양측의 건설적인 관계 발전을 지지한다는 겁니다.

러시아 정부는 이런 입장을 반영하듯 리수용 외무상과 러시아 고위 관리들과의 회동 계획을 자세히 밝혔습니다. 리 외무상이 북-러 외무장관 회담 외에 트루트네프 부총리 겸 극동담당 대통령 특사, 니콜라이 표도로프 농경부 장관, 알렉산드르 갈루쉬카 극동개발부 장관 등과 만날 예정이란 겁니다.

리 외무상은 또 아무르스카야와 사할린, 하바롭스크, 연해주 지역을 찾아 지역 행정 대표들과 만난다고 러시아 외무부는 밝혔습니다.

리 외무상은 이들 지역 행정대표들과의 회동에서 북한 근로자 추가 파견과 투자 유치, 농업과 소비 시장 개발에 관한 협력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과거 한-러 수교와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 등으로 한동안 소원했던 북-러 관계가 이렇게 다시 가까워지는 것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부합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외교적 돌파구를 모색하려는 북한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을 경계하며 전략적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러시아의 계획이 북-러 관계를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 정부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의 박형중 북한연구센터 소장은 30일 ‘VOA’에 리 외무상의 러시아 방문 목적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소장] “첫 번째 의제는 경제협력 확대가 될 것이고, 두 번째는 동북아에서 한국, 미국, 중국에 대한 일종의 대항 균형추로서 북한과 러시아가 협력을 강화하는 문제가 논의될 것 같습니다.”

북한은 한국과 중국, 미국과 관계가 녹록하지 않고 북-일 협상도 전망이 밝지 않기 때문에 현재 유일하게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나라가 사실상 러시아 밖에 없다는 설명입니다.

박형중 소장 등 전문가들은 러시아 역시 극동지역 개발과 자원 수출, 아태 지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교두보, 그리고 한국까지 이어지는 가스관 건설이란 장기 목적을 염두에 두고 북한과 가까워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는 올해 들어 급속도로 가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지난 2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석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고, 3월에는 알렉산드르 갈루쉬카 극동개발부 장관 등 러시아 고위 대표단이 사업가들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4월에는 지난 1985년 이후 30년만에 러시아 최고위급 인사인 유리 트루트네프 부총리가 마쿠르 주 등 극동 3개 주 대표들을 이끌고 북한을 찾았습니다.

북한 정부는 러시아 대표단이 소방차 수 십 대를 북한에 기증하며 여러 협력을 약속하자 관영언론들을 통해 양국 관계가 새로운 도약단계를 맞이했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TV'가 보도한 내용입니다.

[녹취: 조선중앙TV] “러시아 정부가 기증한 소방차들에는 러시아 인민의 뜨거운 성대와 친선이 깃들어 있으며 이는 조국과 인민의 안녕을 지켜선….”

북한과 러시아는 이런 교류를 통해 현재 1억 2천만 달러 수준인 양국의 교역 규모를 2020년까지 10억 달러로 확대하기로 뜻을 같이했습니다.

이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5월 옛 소련 시절 북한에 빌려준 109억 달러 가운데 90 %의 채무를 탕감하는 비준안에 서명했습니다.

러시아는 이와는 별도로 3억 달러 이상을 투입한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통해 두 지역 사이 철도 개보수를 지난해 완료했고, 지난 7월에는 나진항의 화물터미널을 개통하는 등 나진 개발과 현대화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코트라에 따르면 러시아는 중국에 이어 북한의 2대 교역국으로 지난해 교역 규모는 전년보다 37.3% 증가한 1억4백만 달러였습니다. 북한의 대 러시아 수출은 7백70만 달러로 주로 의류와 부속품에 집중됐고 수입은 9천6백만 달러 규모로 광물성 생산품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러나 북-러 간 협력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박형중 소장은 북한의 핵 문제가 관계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소장] “협력이 러시아한테 직접적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전개되려면 북한 핵 문제가 풀려야 될 겁니다. 그 문제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는 교역이 증가한다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화물이 와야 하는데 한국이든 일본이든지.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이 협력할 이유가 없는 거지요. 유엔의 제재 때문에.”

러시아도 이런 배경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외무부의 알렉산더 루카셰비치 외무부 대변인은 29일 ‘이타르타스 통신'에 북한의 풀리지 않는 핵 문제가 두 나라 간 협력 증대를 가로막는 심각한 요소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를 철저히 이행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두 나라의 교역 품목이 매우 제한적이란 배경도 협력 확대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브래들리 밥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VOA’에 양측 모두 광물성 생산품 외에 교역을 크게 확대할 만한 품목이 별로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 “You don’t have Russian private…”

게다가 러시아 정부가 개발을 추진하는 시베리아 극동지역도 시장이 크지 않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투자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나진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북한에 대한 직접투자보다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 나진항을 통해 물류를 해외로 신속히 이동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세종연구소의 양운철 박사는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주요 관심은 나진항을 통해 중국에 석탄, 한국과 일본에는 천연가스를 판매하는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양 박사는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한국이 나진선봉 지역에 투자해 이 곳의 활용도를 극대화하지 않는 한 나진항을 통한 북한의 물류 수입은 크게 기대하기 힘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