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수뇌부가 최근 ‘인민생활 향상’을 부쩍 강조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인민생활과 관련된 고민으로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왜 인민생활 향상을 강조하는지, 그 배경과 전망을 최원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18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인민생활 향상’을 국가적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원수님께서는 인민들의 식량 문제, 먹는 문제, 입는 문제와 관련해 주신 유훈부터 먼저 집행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표현을 5 차례나 쓰면서 먹는 문제 해결을 강조했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도록 하는 것이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또 축산과 관련된 논문을 통해 자신이 주민들의 생활 향상 문제를 고민하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우리 인민들에게 넉넉한 생활을 마련해주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세습을 통해 집권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인민생활 향상을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한국의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입니다.
[녹취: 강인덕 ] "지금 김정은의 경우는 항일빨치산 투쟁이니 혁명투쟁이니 하는 경력이 없어서 개인 우상화가 힘들 것입니다. 따라서 인민의 지지를 얻으려면 먹는 문제 해결, 인민생활 향상 밖에는 없죠.”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3년 간 먹는 문제와 관련해 식량난을 다소 완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유엔 산하기관인 식량농업기구 (FAO)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곡물 생산량은 497만5천t으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곡물 생산이 늘어난 때문인지 장마당의 쌀값도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박봉주 내각총리가 포전제를 추진해 이것이 곡물 생산 증산으로 이어졌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국 국민대학교 정창현 교수입니다.
[녹취: 정창현]”식량 생산량은 꾸준히 늘고 있는데, 그러한 양적인 통계보다 중요한 것은 포전담당 책임제라든지 농민에게 일정하게 자율처분권을 주는 것을 통해 실질적으로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양이 늘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북한 당국은 먹는 문제 해결을 강조하며 이를 주도할 ‘3대 축’으로 농산, 축산, 수산업을 제시하고 각 분야의 생산 정상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축산업을 강조하는 `조선중앙방송' 보도입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한적하던 산골 마을이 염소, 양들이 구름처럼 떼지어 흐르는 현대적인 육종장으로 천지개벽 되고 풀과 고기를 바꿀 데 대한 위대한 대 원수님들의 높은 뜻을 빛나게 꽃 피울 수 있는...”
그러나 탈북자들은 김정일 시대에도 ‘풀을 고기로 바꾸자’며 축산업을 강조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고 말합니다. 평양교원대학 출신인 탈북자 이숙 씨입니다.
[녹취: 이숙] "전에도 스위스처럼 양, 염소 이런 풀 먹는 짐승을 키워라 했었는데, 아무리 키우라고 하면 뭣합니까, 키워도 몇몇 간부들에나 차례가 돌아가고 일반 백성들은 차례가 안 돌아 가니까, 일반 사람들은 귓등으로 잘 듣지도 않고…”
탈북자들은 북한 주민들이 ‘인민생활’ 향상 정책에 ‘혹시나’하는 심정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에도 인민생활을 개선하겠다고 하다가 안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선뜻 믿기 어렵다는 겁니다. 다시 탈북자 이숙 씨입니다.
[녹취: 이숙]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는 잘 믿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건설되면 백성들에게 기름이 얼마, 또 뭐가 얼마 이렇게 차려진다고 얘기를 했었는데, 당시에도 잘도 늘어놓는다 했었는데, 이번에는 김정은이 첫 번째 정책이라고 하니까 좀 지켜봐야죠.”
한편 강인덕 전 장관은 북한이 진정 인민생활 향상을 이루려면 ‘핵-경제 병진노선’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강인덕] "핵 개발과 경제 개발을 병진한다는 정책, 이 노선이 문제인데, 핵 개발을 하려면 북한 GDP의 20% 이상을 핵 개발에 투자해야 하는데, 그러면 경제 개발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거죠.”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인민생활 향상을 약속한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김일성 주석은 지난 1962년 1월 신년사를 통해 ‘쌀밥에 비단옷, 고깃국을 먹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