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국계 미국인이 매년 6.25전쟁 기념일마다 미군 참전용사들을 초대해 만찬을 베풀고 있습니다. 이역땅에서 희생을 마다 않은 노병들에게 10년 넘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캘리포니아 주 랭캐스터 시의 ‘크레이지 오토스’ 식당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오믈렛 요리로 유명합니다.
넉넉한 인심의 주인공은 이 식당을 운영하는 허진 사장. 올해도 6.25전쟁 기념일을 맞아 백발이 성성한 노병들을 직접 만찬장으로 안내합니다.
[녹취: 허진 사장] “너무 고맙더라고요. 미국 와서 이렇게 살게 된 거, 우리 식구들, 이렇게 축복 받아서 이만큼 살게 해 준 거, 만약에 그 분들이 없었으면 이게 가능했을까…”
1982년 미국으로 건너와 안정적으로 정착한 뒤에도 60여 년 전 한반도 전장에서 목숨을 건 미군들에게 큰 빚을 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허 사장이 10년 넘게 6.25 참전용사들을 초대해 정성껏 식사를 대접하게 된 이유입니다.
[녹취: 허진 사장] “전쟁 얘기며, 누구 사진을 가지고 와서 누구를 찾아달라는 등, 자기가 어느 지역에서 싸웠고, 저는 그냥 고맙다, 그런 말 밖에 못했어요.”
멀리 미 동남부 플로리다 주에 사는 친형 허영 씨도 동생 부부가 준비하는 뜻 깊은 만찬에 힘을 보탰습니다.
9살 때 아버지의 자전거에 매달려 피난을 떠났던 허영 씨는 이후 베트남전에 참전해 미군과 나란히 싸웠습니다. 현지에서 수많은 사상자들을 목격한 허 씨는 한반도에서 발발했던 전쟁의 비극을 다시 한번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1971년 미국 컬럼비아대학으로 유학을 와 의사가 된 허영 씨는 피난길 가족들 곁을 스쳐간 미군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올해 6월에도 동생의 식당이 있는 캘리포니아 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녹취: 허영 씨] “고맙죠. 그 분들이 이렇게 희생을 했으니 저희가 오늘 날이 있는 거고, 오늘날 한국의 경제적 발전도 볼 수 있던 거고.”
허영 씨, 허진 씨 형제가 지난 25일 참전용사들을 위해 마련한 식사 자리는 자연스럽게 6.25전쟁 발발 65주년 기념식장이 됐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주재 한국 총영사관이 84 명의 참전용사에게 ‘평화의 사도 메달’을 대신 전달해 달라고 허 사장에게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샤론 러너 주 상원의원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도 참석해 노병들에게 감사장을 전달했습니다.
허진 사장은 식당을 찾던 고령의 6.25 참전용사들이 하나 둘 스러져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녹취: 허 진 사장] “미안하기도 하고 부상 당하신 분들, 한 2년인가 3년 됐는데 더 이상은 못 뵙는 걸 보니까 돌아가셨거나 양로원, 병원, 그런데 가서 계시든가 그랬겠죠.”
동상으로 손가락, 발가락을 모두 잃은 한 노병은 장진호 전투 생존자 모임에서 받은 메달까지 허 사장에게 건넨 뒤 더 이상 모습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참전용사들에게 매주 화요일마다 모임 장소까지 제공하는 허 사장은 마지막 한 사람의 노병이 남을 때까지 ‘감사의 만찬’을 차릴 계획입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