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립문서보관소 (National Archives)가 6.25 한국전쟁 65주년을 맞아 당시 미군의 비밀전문을 통해 전쟁 직후의 긴박한 상황을 재조명했습니다. 이 전문들은 당시 미국의 참전 배경과 전시 상황을 자세히 담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 국립문서보관소는 지난 27일 인터넷 홈페이지의 ‘오늘의 문서’에 6.25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무력 사용을 승인한 옛 1급 비밀전문을 선정해 올렸습니다
미 국립문서보관소는 날마다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기록을 선정해 웹사이트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선정된 전문은 지난 1979년 6월 18일에 기밀해제된 육군 문서로, 한국전쟁과 관련한 대통령의 무력 사용 승인과 전시 상황에 대한 미군 지휘관들의 평가와 의견을 교환한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전문에 따르면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북한의 침공에 맞서 한국 군을 지원하기 위해 미 극동사령부 (FECOM) 산하 해군과 공군에 무력 사용을 승인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목적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한국 군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적시했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1950년 6월25일 북한의 침공을 확인한 뒤 당일 안보리를 긴급소집해 북한 군의 철수를 촉구하는 결의 82호를 채택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이를 따르지 않자 이틀 뒤인 27일 북한의 무력 공격 격퇴와 지역. 국제 평화 등을 위해 한국에 원조를 제공할 것을 회원국들에 권고하는 결의문 83호를 채택했습니다.
미국의 당시 무력 사용 결정은 이런 유엔 안보리의 첫 결의에 따른 것으로 비밀전문은 38선 이남 지역 내 모든 북한 군의 제거를 목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 공군이 38선 이남의 북한 군 탱크와 총기, 군 병력, 다른 군사 목표물을 모두 공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 미 해군 역시 연안 접근에 제한을 두지 않고 북한의 침략에 대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전문은 북한 군의 침공 직후 긴박했던 상황에 대해서도 자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일본에 본부를 둔 극동사령부는 26일 보고에서 북한 군이 서울을 24 시간 안에, 즉 6월27일이나 28일에 점령할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국 군 3사단과 5사단이 북한 군의 남하를 막는 데 실패해 북한 군 탱크가 서울 외곽까지 진입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당시 북한 군은 25일 남침한 지 사흘만인 28일 서울을 함락했습니다.
전문은 이런 열악한 상황에 따라 한국이 정부를 남쪽으로 이전했고 미 군사고문단도 대구에 통신망을 개설했다고 밝혔습니다.
전문 3쪽에는 한국 군의 당시 전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 군 부대들이 북한 군의 공격에 저항할 능력이 없다는 겁니다.
전문은 한국 군 사상자 규모 등 전시 상황을 볼 때 “한국 군은 충분한 저항 능력이나 전투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이런 초기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한국의 완전한 패망 (complete collapse)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전문에는 당시 미군이 전적으로 열세인 한국 군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의 이타즈케 공군기지에서 F-51 (머스탱) 전투기 10 대를 한국 군 조종사들에게 인도했다는 보고 내용도 있습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한국 군은 당시 전투기가 전혀 없었으며 이 때 전투기를 처음으로 인수 받아 다음달인 7월에 처음으로 전투에 출격했습니다
전문은 또 일본 요코하마 항에서 탄약 등 무기를 실은 첫 선박이 곧 출항할 계획이며 사흘 안에 한국에 도착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전문은 이밖에 북한의 침공 다음날인 26일 인천항을 통해 미국인 가족 등 민간인 682 명을 일본으로 대피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김포와 부산 등을 통한 미국인 대피 계획과 일정도 자세히 담고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