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이후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자 수가 크게 줄었습니다. 한 해 3천 명에 가까웠던 이전 상황과는 확연히 다른 현상인데요, 북-중 국경 지역에서의 단속 강화와 식량 사정 호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통일부는 10월 말 기준으로 올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수는 980여 명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월 평균 98명 수준으로,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 규모가 처음으로 월 평균 100명을 넘었던 2003년 이후 12년 만에 100 명 이하로 줄어든 겁니다.
한국 통일부는 관계기관으로부터 합동심문을 받는 탈북자까지 고려하면 올 한 해 한국으로 온 탈북자 수는 1천200명 미만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1천400여 명보다 200 명 이상 적은 규모로, 탈북자 수가 가장 많았던 2009년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겁니다.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는 2006년 처음 2천 명을 넘긴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09년엔 2천900여 명으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탈북자 수가 급증하면서 한국 정부는 탈북자 초기정착 교육시설인 하나원 한 곳으로는 부족해 최대 5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제2하나원을 새로 짓기도 했습니다.
한 때 한 해 3천 명에 가까웠던 한국 입국 탈북자 규모는 그러나 북한에서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2012년부터 절반 가량 줄었습니다.
탈북자가 감소한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김정은 체제 들어 북-중 국경 통제가 강화된 것이 첫 번째 이유로 지적됩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김정일 시대에는 탈북자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방관하는 자신감을 보였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탈북자를 체제에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이를 막기 위해 국경 통제와 단속을 대폭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 (HRW) 도 ‘2015 월드 리포트’에서 탈북자 수가 감소한 배경으로 북한 당국의 국경 감시 강화를 꼽았습니다.
한국의 북한인권단체들과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탈북을 막기 위해 순찰병력을 늘리고 주요 탈북 루트마다 철조망과 감시카메라를 설치했으며, 통신감청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탈북자들의 한국 입국을 돕는 북한인권단체 관계자는 김정은 집권 후 북한 당국이 인민무력부 산하 국경경비대를 국가안전보위부 소속으로 바꾸고 탈북자 단속을 크게 강화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북한인권단체 관계자] “군인들이 서로를 감시하고 민, 관, 군을 동원해 지역마다 노농적위대, 교도대를 동원해 감시를 강화하고 주민들에 대한 통행증 발급도 사회안전부가 아닌 보위부에서 하도록 감시를 강화했어요”
돈을 받고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방조하는 국경경비대원에 대한 처벌도 예전보다 크게 강화됐습니다.
매년 탈북자 설문조사를 벌여온 북한인권정보센터 김인성 팀장입니다.
[녹취: 북한인권정보센터 김인성 팀장] “탈북자들 인터뷰에 따르면 경비대가 자주 교체가 되고 과거와 달리 돈을 받고 탈북을 도운 사실이 드러나면 제대 후에도 교화소에 간다든지 강한 처벌을 받게 돼, 경비대원들이 가능한 한 탈북자들의 도강을 도우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돕고 있는 민간단체 인사는 국경경비대원이 탈북자를 체포할 경우 포상금이나 입당, 간부 등용, 자녀 대학 추천과 같은 포상이 주어져 도강비를 따로 챙기고 체포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습니다.
탈북자들이 국경을 넘는 데 대한 위험 부담이 커지면서 도강 비용도 크게 올랐습니다.
탈북자들의 한국 입국을 돕는 북한인권단체 관계자는 김정은 체제가 출범하기 전인 2010년 2~300만원 수준이던 도강 비용이 800~1000만원까지 치솟았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정부의 탈북자 단속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인권단체 관계자는 한동안 중국 남방 지역에서의 탈북자 단속이 일부 완화되긴 했지만 최근 들어 다시 중국 공안이 동북 3성 지역에서 검열과 검문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0월 한 살 배기 아기를 포함한 탈북자 9 명이 베트남에서 붙잡힌 뒤 중국 공안에 넘겨져 현재 북송될 위기에 처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의 북한인권단체들은 김정은 체제 이후 탈북자 정책에서 가장 큰 변화는 북한의 가족을 이용해 탈북자들의 재입북을 유인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인권단체 ‘나우’ 이영석 사무국장입니다.
[녹취: 이영석 나우 사무국장] “탈북 과정에서 잡히거나 한국에서 보낸 돈이 발각될 경우 ‘처벌받지 않으려면 한국에 가 있는 가족을 돌아오라’고 설득하게 해 북에 있는 가족들이 한국 내 탈북자에게 전화를 해 재입북을 설득 또는 강요하는 이런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는 거죠.”
실제로 북한 당국은 북한으로 돌아간 탈북자들을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해 체제선전에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통일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 정착했던 탈북자 가운데 북한으로 되돌아간 사람은 북한 매체를 통해 확인된 경우만 2000년 1명에 이어 2012년과 2013년 각각 7명, 2014년 1명입니다.
또 다른 한국 정부 당국자는 재입북 탈북자의 기자회견은 과거 탈북자들의 존재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 조차 꺼렸던 북한 당국의 태도와는 확연히 다르다며, 한국에 대한 적개심을 부각해 주민들의 탈북 의지를 꺾고,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인덕정치]를 부각해 체제 우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가 탈북자 문제에 적극 대처하는 데는 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문제 제기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의도도 담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통일연구원 한동호 박사입니다.
[녹취: 한동호 통일연구원 박사] “지난해 유엔 안보리를 통해 북한인권 문제가 공식 제기되는 등 최근 2~3 년 사이에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은 데 대한 김정은 정권의 부담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유엔 COI 보고서의 경우 탈북자 증언을 위주로 작성된 만큼 탈북자에 대한 통제를 통해 인권 운동에 방어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고 보입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지난 2013년 라오스로 탈출했던 탈북 청소년 9명이 강제북송된 사건은 김정은 체제가 탈북자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과거와 달리 이례적으로 조직적이고 신속하게 이들을 북송한 데 이어 국제사회에서 제기되는 북송 탈북자들의 처형설에 대해 기자회견을 통해 적극적으로 반박했습니다.
탈북자가 줄어든 데는 김정은 체제 이후 다소 호전된 북한의 경제 사정도 한 몫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해 탈북한 북한 주민 1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북한에 살 때 하루 세끼를 먹었다’는 응답은 86.9%로 지난해 74.5%보다 12.4%포인트 높았습니다. ‘북한에서 거의 쌀밥을 먹었다’는 응답도 61.4%로 지난해 41.5%보다 높았습니다. 반면 ‘거의 강냉이만 먹었다는 응답’은 10.3%로 지난해 29.9%에 비해 크게 줄었습니다.
실제로 유엔 세계식량계획과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식량생산량은 503만 t으로 최근 20년 사이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2010년 450만 t에서 11.8% 증가한 겁니다.
북-중 접경지역에서 정기적으로 북한의 시장 실태를 조사해온 한국 경상대학교 정은이 교수는 북한에서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생계를 위해 중국을 찾던 북한 주민들이 내수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도 탈북자가 줄어든 원인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통일연구원 김수암 연구관리본부장은 김정은 체제 이후 과거와 달리 북한에서 시장이 확산되고 해외파견 노동자나 밀수 등을 통해 중국 등지에서 생계가 해결되는 상황에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탈북을 감행하는 주민들이 적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