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특집] 3. 미북, 핵·인권 놓고 대치

미국의 북 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성 김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 5월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15년 을미년이 저물어 갑니다. VOA는 올 한 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주요 관심사들을 정리하는 특집보도를 준비했습니다. 남북관계, 북한 내부 권력구도, 미-북 관계, 북한인권 등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보내 드리는 특집보도, 오늘은 세 번째 순서로 진전 없이 평행선을 달린 미-북 관계를 되돌아보겠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과 북한 관계에서 2015년은 냉랭한 기류가 지속된 한 해였습니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반드시 대응하겠다는 바락 오바마 행정부의 원칙은 새해 벽두를 제재로 시작해 12월 제재로 마무리할 정도로 단호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1월 2일 전년에 발생한 소니영화사에 대한 북한의 해킹과 관련해 추가 대북 제재를 담은 행정명령을 발표했습니다. 해킹 주범으로 지목된 북한 정찰총국 등 기관과 단체 3곳, 개인 10 명에게 제재를 가한 겁니다.

백악관은 제재가 “북한 정부의 계속되는 도발과 불안정, 억압적 행동과 정책, 특히 소니 영화사에 대한 파괴적이고 강압적인 사이버 공격에 대한 대응”이라고 밝혔습니다.

성 김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이 제재가 잘못된 행동에 대해 반드시 대응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성 김 대표] “We have made clear that we will respond to the DPRK”s misbehavior……”

미 정부는 이후 3월에 재무부의 북한 관련 금융거래 주의보 발령, 6월에는 기존의 행정명령에 따른 모든 대북 제재들을 연장했습니다. 이어 10월에는 북한업체 두 곳, 11월에는 무기 확산과 불법 금융활동을 이유로 김석철 미얀마주재 북한대사 등 개인 4 명과 조선광업개발회사, 12월 초에는 북한 미사일 개발의 심장부인 전략군 등 단체 4 곳과 개인 6 명에게 추가로 제재를 가했습니다.

이런 지속적인 압박은 오바마 대통령이 올 1월 말 이례적으로 김정은 정권의 붕괴를 처음 언급할 때부터 예고됐었습니다.

[녹취: 오바마 대통령] "Over time, you will see a regime like this collapse. Our capacity to affect…”

오바마 대통령은 1월 말 세계 최대의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인 ‘유투브’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조금씩 계속 높이겠다”며 “시간이 흐르면 북한 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잔혹하고 폭압적인 정권, 심지어 주민들을 제대로 먹이는 것 조차 할 수 없는 정권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무너지게 돼 있다”며 북한의 변화를 압박한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런 강경 발언은 미국인들이 가장 중시하는 수정헌법 1조의 ‘표현의 자유’를 북한이 사이버 공격으로 위협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됐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즉각 미국을 “미친개”라고 비난하며 핵전쟁까지 불사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그 무슨 변화의 방법으로 붕괴시킬 것이라고 공공연히 짖어대는 미친개들과는 더는 마주앉을 용의가 없다고 단호히 공언하시고……”

미국 고위 관리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에 맞춰 비핵화와 인권 개선에 대한 대북 압박 수위를 점차 높였습니다.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은 2월 말 워싱턴의 한 토론회에서 진지한 비핵화 협상 없이 북한의 안보와 번영은 성취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셔먼 차관] “At the end of the day, the North Korea cannot obtain the security, prosperity……”

존 케리 국무장관은 3월 2일 유엔 인권이사회 연설에서 주민들을 노예화하고 공포정치를 일삼는 김정은 정권의 압제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녹취: 케리 장관] “In North Korea, tens of thousands of people live as virtual slaves….”

북한에는 표현과 종교의 자유가 없고 정치적 반대도 용납되지 않으며 수많은 주민들이 사실상 노예로 살고 있고, 김정은 제1위원장은 자신과 견해가 다르거나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을 계속 처형하고 숙청하고 있다는 겁니다.

워싱턴 정가의 대북 인식은 3월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에 대해 북한 당국이 “응당한 징벌”이라고 반응하자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압박으로 일관한 것은 아닙니다. 군사적 억지를 바탕으로 외교와 압박을 병행하겠다는 기조에 맞춰 1월에 대화를 제의했고, 미-한 연합훈련이 끝난 5월에는 이른바 ‘탐색적 대화’를 제의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거듭된 거부로 가뜩이나 차가워진 관계는 더욱 냉랭해졌습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5월 말 담화에서 “비핵화 협상을 망친 것은 미국”이라며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미 정부는 그러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없음을 거듭 밝혔습니다.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성을 보이면 대화의 문은 언제든 열려 있으며, 오바마 행정부의 진정성은 미얀마, 쿠바와의 국교정상화, 이란 핵 협상 타결에서 이미 확인됐다는 겁니다.

시드니 사일러 국무부 6자회담 특사는 사임 전인 지난 7월 서울을 방문해 이런 미국 정부의 입장을 거듭 강조하며 북한의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녹취: 사일러 북 핵 특사] “It demonstrates our flexibility when DPRK makes a decision that it wants to choose….

이란 핵 협상 타결은 상대가 타협 의지를 갖고 있을 때 미국이 어떻게 호응하는지 보여 준 좋은 사례이며, 북한이 다른 선택을 하면 미국도 유연해 질 수 있다는 겁니다.

미 관리들은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등 과거의 적국들과 화해하며 관계를 개선하고 있는 국제정세를 북한이 바로 읽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미국은 그러면서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분명히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9월 워싱턴에서 가진 미-중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두 나라는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오바마 대통령] “We will not accept North Korea as a nuclear weapon state….”

이 회견에서 시진핑 주석도 “한반도에서 긴장을 조성하거나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에 위배되는 어떤 행동에도 반대한다”며 이례적으로 북한을 공개 압박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박근혜 한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하며 북한 정부에 비핵화 결단을 거듭 촉구했습니다.

[녹취: 오바마 대통령] “Pyongyang needs to understand that it will not achive…”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이라고 주장하는 한 북한이 추구하는 경제발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며, 핵 포기에 진지한 자세를 보인 이란을 북한이 직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 정권이 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며 비핵화에 진지한 대화 준비가 돼 있다고 한다면 이란처럼 북한과 공정하게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다음날 성명에서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대항해 핵무기를 포기할 뜻이 없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하나는 핵 무력을 중추로 하는 우리의 자위적 국방력을 강화하여 미국의 핵 위협과 전쟁 도발을 억제해 나가는 냉전의 방법이다. 다른 하나의 방도는 미국이 우리와 평화협정을 체결하는데 응해 나옴으로써 진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수립해 나가는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올해 반미교육시설인 신천박물관을 거듭 방문해 대미 항전을 강조하는 한편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SLBM) 시험 발사, 핵무기의 다종화 소형화, 연말에는 수소폭탄 개발까지 주장하며 핵 억제력을 더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미-북 사이에 이처럼 냉랭한 기류가 계속되자 미국 내 보수파와 대북 협상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공히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했습니다.

보수 진영은 북한의 핵 억제력 주장은 주민이 아닌 정권유지용이라며 김정은 정권의 돈줄을 죌 수 있는 실질적인 제재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협상파들은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더욱 강화해 미 안보에 위협이 가중되고 있다며 적어도 이를 유예하도록 양자, 다자 협상을 조속히 재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 당국자들은 즉각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기존의 대북정책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습니다. 성 김 대북정책 특별대표입니다.

[녹취: 성 김 대표] “That’s the approach the administration has tried to take over the…”

성 김 대표는 지난 10월 말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 몇 년 간 대북정책에서 인내와 일관성을 유지하려 했다”며 “즉각적인 성과를 기대하긴 힘들지만 압박과 외교를 병행할 때 진전을 이룰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비핵화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북한의 핵 확산이나 불법 활동 가담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며 억지와 외교, 압박을 계속 병행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백악관 역시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성을 보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며 기존의 대북 정책 고수 입장을 밝혔습니다.

특히 내년 2016년은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이자 11월에 미국 대통령 선거가 실시됩니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경제 등 국내 사안에 이목이 집중되고 미 정부의 외교적 초점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인 ISIL 격퇴 등 중동과 러시아 등에 맞춰져 있어 북한 문제가 얼마나 관심을 받을지 의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입장 변화 등 전략적 선택을 하지 않는 한 내년에도 미-북 관계는 평행선을 달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VOA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