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북한인권법이 발의된 지 11년 만에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로써 한국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일관되고 체계적인 북한인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 안팎에서는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북한인권법으로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의 북한인권 개선 노력에 동참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법이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위한 한국 정부의 책무를 포괄적으로 규정한 최초의 법률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외교부 이정훈 인권대사는 미국보다 12 년, 일본에 비해 10년이나 늦게 북한인권법이 만들어졌지만 지금이라도 인류보편적 가치인 북한 주민들의 인권 보호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정훈 외교부 인권대사] “한국에서 북한인권법 통과가 10년 넘게 지체된 것은 인권대사로서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면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한반도에서 반인도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음에도 같은 민족으로서 한국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조차 되지 못하는 것을 국제사회에서도 이해를 못했습니다. 이번 북한인권법 제정으로 한국 정부가 보다 떳떳하게 북한인권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 됐다는 것 만으로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북한인권법은 지난 2003년 유엔 인권위원회가 북한 인권 문제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최초로 채택하고, 이듬해 미 의회가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면서 2005년 8월 처음 발의됐습니다.
하지만 법안의 실효성과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등을 둘러싼 여야 간 입장 차로 10년 넘게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가 직접 당사국임에도 북한인권 문제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2014년 2월 ‘북한 내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 침해가 자행되고 있다’고 결론 내린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 COI 보고서 발표가 한국 내에서 북한인권법 제정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합니다. 한국 통일연구원 이규창 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이규창 연구위원] “북한인권법 제정의 배경은 우선 대외적인 요인으로는 2014년 2월 COI 보고서 발표를 계기로 한국 내에서도 국제사회의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연대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북한 내부 요인으로는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의 폭압적이고 잔인한 인권 실태들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커진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번 북한인권법 제정은 한국 정부가 향후 일관되고 체계적인 북한인권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 한국 정부와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한국 국가인권위원회 정책교육국장을 지낸 원재천 한동대 교수입니다.
[녹취: 원재천 교수] “이번 법안은 북한 주민의 인권이 대한민국 국민 정도의 수준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을 전세계에 천명한 것으로 그동안 한국 내 일각에서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북한인권법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번 북한인권법 제정을 계기로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개선돼야 한다는 국민적인 합의가 이뤄졌다고 봅니다.”
실제로 새로 제정된 북한인권법안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한국 정부의 책무로 규정했습니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가 3년마다 북한인권 증진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했습니다.
또 북한 내 인권 침해 사례를 수집하는 북한인권기록센터와 북한의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정책을 개발하는 북한인권재단을 통일부에 설치하도록 명시했습니다.
이와 함께 북한과의 인권대화 추진을 한국 정부의 의무사항으로 규정했습니다.
한국 정부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북한인권기록센터를 설치해 공개처형이나 고문 등 북한 당국의 조직적이고 반인도적인 범죄 행위를 체계적으로 기록, 보존함으로써 직간접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인권 보호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수집된 자료는 통일 이후 가해자들을 처벌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 지도층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담겨 있다는 것이 한국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정현 교수입니다.
[녹취: 조정현 교수] “정부 차원에서 북한의 인권침해 기록을 수집 보존하는 것은 인권 침해 가해자들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를 줌으로써 인권 침해 예방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또 통일 후 사회통합 과정에서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이나 피해자 보상 등을 위한 법적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통일 이후를 준비한다는 차원에서도 상당히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봅니다.”
통일부 산하 북한인권기록센터에서 수집된 자료는 3개월마다 법무부로 이관됩니다.
한국 정부는 이와 함께 북한인권재단을 통해 북한인권과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비롯해 한국 민간단체들의 북한인권 개선 활동을 지원하게 됩니다. 한국 외교부 이정훈 인권대사입니다.
[녹취: 이정훈 인권대사] “북한인권법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또 다른 이유는 북한인권 개선 활동을 하는 민간단체를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이 책정됨으로써 그 동안 미국 북한인권법에 따라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재원에 의존했던 북한인권NGO들의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입니다.”
한국 통일부에 등록된 북한인권 단체는 33곳으로, 한국 정부는 북한인권재단을 통해 연간 2천여만 달러를 출연할 예정입니다.
북한인권 단체에 정부 예산을 직접 지원하는 미국과 달리 재단을 거쳐 간접 지원하는 형식을 택한 것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됩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한국 북한인권법의 경우 미국이나 일본의 북한인권법에 비해 내용 면에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조치들을 담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한국 통일연구원 김수암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김수암 선임연구위원] “이번에 통과된 한국 북한인권법의 경우 미국 북한인권법과 비교해볼 때 정부 차원에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북한인권기록센터와 북한인권재단을 별도로 신설하는 등 북한인권 개선을 실행하기 위한 제도나 조직 면에서 훨씬 구체적으로 강하게 담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북한인권기록센터가 전문적인 범죄수사기관인 법무부가 아닌 남북대화의 주무부처인 통일부에 설치되는 것과 법안에 북한 주민의 정보접근권과 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북한인권 교육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점은 개선돼야 한다고 한국의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올바른 북한인권법과 통일을 위한 시민모임 ‘의 김태훈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인권특별위 위원장의 지난 2일 기자회견입니다.
[녹취: 김태훈 대한변협 북한인권특별위원장] “서독도 1961년 11월 잘츠기터에 법무부 소관 중앙법무기록보존소를 두고 동독의 인권 침해를 효율적으로 억제한 바 있다. 절충안처럼 법무부가 통일부의 수집자료에만 의존케 하는 것은 북한인권기록센터의 기능이나 역할을 절름발이로 만들고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의 주무부서인 통일부의 기능마저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인권법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통일부와 법무부 등 유관 부처 간의 긴밀한 협력체계 구축과 함께 북한인권단체들의 전문성과 경험을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와 함께 북한인권법 제정으로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보다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문도 나옵니다.
북한인권기록센터를 통해 파악된 북한 내 열악한 인권 실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통로로 유엔 북한인권 현장사무소를 적극 활용할 필요도 있습니다.
북한인권법은 한국 정부가 북한인권 증진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위해 외교부에 북한인권 대외직명대사를 두도록 명시했습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북한인권법 제정은 헌법에 따라 한국 국민인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 궁극적으로는 통일의 길을 열어가기 위한 제도적 토대가 될 것이라며 북한도 인류보편적 가치인 주민들의 인권 보호를 위한 노력에 적극 동참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