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주요 뉴스의 배경을 살펴보는 '뉴스 인사이드'입니다. 북한에서는 최근 열린 7차 노동당 대회를 통해 최룡해, 황병서, 박봉주가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는데요. 김정은 체제를 떠받드는 이른바 ‘삼두체제’가 구축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3인의 면면을 박형주 기자가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지난 10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는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렸습니다.
제 7차 노동당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자축하는 자리였습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당대회 결과를 보고하는 것으로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당 대회에서 조선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주석단 중심에 자리했습니다. 그 옆에는 좌우로 최룡해 당비서, 박봉주 내각 총리 그리고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서 있습니다.
김 제1위원장과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함께 이번에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에 이름을 올린 인물들입니다. 정치국 상무위원은 노동당 내 최고 의사 결정 기구 입니다.
이들은 각각 당과 내각, 군부를 대표하며 ‘김정은 체제’를 끌고 나갈 핵심 3인방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최룡해 당비서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5년 2월 이후 처음입니다.
최룡해는 2013년 장성택 숙청 이후 북한의 실세로 불려왔습니다. 2012년 4월과 2015년 2월 사이에도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숙청설, 신변이상설 등이 끊임 없이 제기됐습니다. 한국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2월 “최룡해가 백두산 청년 발전소 부실 공사의 책임을 지고 지방 농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과거 2004년에도 최룡해는 비리 혐의로 협동농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은 뒤 복귀했습니다. 그보다 앞선 1994년에도 같은 혐의로 강등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좌천 이후 1년 3개월 만에 권력의 정점인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다시 복귀한 겁니다.
이처럼 거듭된 부침에도 불구하고 그가 권력의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출신 성분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최룡해는 김일성 주석의 항일 빨치산 동료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로, 빨치산 2세대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북한에서 김일성 혈통 다음으로 높은 것이 빨치산 혈통입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빨치산 2세대를 완전히 배제하고 가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세계북한연구센터 안찬일 소장입니다.
빨치산 2세대인 최룡해가 소원해진 북-중 관계를 복원시킬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라는 점도 그가 중용된 요인으로 꼽힙니다. 다시 안찬일 소장입니다.
최룡해는 지난해 9월 김정은 제1위원장을 대신해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바 있습니다.
북한은 4차 핵실험 등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와 고립의 위기 속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대외관계의 핵심인 북-중 관계 회복은 중대한 과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 통일부는 최룡해가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재진입한 것은 88세로 고령인 김영남 위원장의 퇴진에 대비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향후 김영남을 대신해 명목상의 국가수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번 7차 노동당 대회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박봉주 내각총리의 중용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올해 77세인 박봉주는 당 대회 전까지만 해도 고령인 점을 감안해 일선 후퇴가 예상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정치국 위원에서 상무위원으로 지위가 격상되면서 북한 경제사령탑으로 지위를 굳건히 했습니다.
북한의 대표적인 경제 관료이 내각의 책임자인 박봉주가 정치국 상무위원에 기용된 것은 경제 강국 건설을 위한 경제발전 5개년전략에 더욱 힘을 싣겠다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의도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박봉주는 북한 내에서도 다소 개혁적인 성향의 인사로 분류됩니다.
지난 2003년에서 2007년까지 내각총리를 지내면서 시장경제의 요소를 일부 도입한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추진했습니다. 기업경영 자율화, 당의 사회적 노력동원 금지, 시장활성화 등 파격적인 경제개혁안을 밀어붙였습니다.
하지만 당의 이권을 둘러싸고 당과 군부 보수 강경파의 반대와 저항에 직면했습니다. 그러다 2007년 실각하고 평남 순천비날론사업소 지배인으로 좌천됐습니다.
이후 북한 경제가 급속히 후퇴하고, 다시 일정부분 시장경제 요소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박봉주는 2010년 당 경공업부 제1부부장으로 전격 복권됐습니다.
그리고 2013년 4월 다시 6년 만에 내각총리에 임명된데 이어, 이번에는 정치국 상무위원에 까지 발탁된 겁니다.
특히 경제 관료출신인 박봉주가 이번에 당 중앙군사위원회에도 이름을 올린 점은 더욱 주목됩니다.
그 동안 당 중앙군사 위원에는 군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 등 주로 군부 인사가 발탁됐습니다.
‘경제통’인 박봉주가 당 중앙군사위원으로 진출한 것은 김정은 정권이 이번 7차 노동당 대회에서 천명한 ‘핵-경제 병진노선’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내각총리로서 경제와 민생을 챙기는 것은 물론, 군사력과 군수공업 강화 등 군사력 증강을 내각 차원에서 지원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국 통일연구원 박영자 부연구위원입니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가 ‘핵-경제 병진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살리기를 위해 박봉주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일 것이고, 그것은 또 나중에 좌천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군부 서열 1위인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은 이번에도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지켰습니다. 2015년 2월 이미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임명된 황병서는 김정은 집권 이후 승승장구 한 인물가운데 한 명입니다. 최룡해 당비서와 번갈아 가며 2인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2014년에는 한동안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아 ‘와병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곧 모습을 비추며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황병서가 약진할 수 있었던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과 인연 덕분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황병서는 김 제1위원장의 생모인 고영희의 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 김정은 후계 체제 구축에 앞장섰고 장성택 처형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황병서가 김 제1위원장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북한 매체를 통해 자주 드러난바 있습니다. 이번 당 대회에서도 김 제1위원장 옆에서 무릎을 꿇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대화하는 모습이 비춰지기도 했습니다. 또 김정은 제1위원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앞서게 되자 움찔 뒤로 물러나는 모습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군 조직지도부에서 오랫동안 군 인사의 개입해 왔고, 총정치국장으로 군을 장악해오는데 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유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북한은 이번 7차 당대회를 통해서 당과 내각, 군부 등 전문분야별로 핵심 인사들을 배치하는 인적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부여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확실하게 묻는 이른바 ‘김정은식 시스템 통치’를 하겠다는 의도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이것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부족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역량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국방연구원 김진무 박사입니다.
ACT 5 [녹취: 김진무 박사 / 한국 국방연구원] “김정일은 30여 년 동안 통치하면서 자기가 독단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김정은은 아직도 모든 국정을 책임질 수 있는 개인적 능력이 안되니까 핵심 엘리트들에게 해당 분야를 총괄 책임지게 만들어서 잘 안되면 책임을 묻겠다, 그런 책임정치 같은 것을 해서 당과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기하려는 게 아니냐 그렇게 보여집니다.”
최룡해 당비서, 박봉주 내각총리,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3명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중용함으로써 각각 당과 내각, 군에서 중심을 잡고 김정은 체제를 떠 받치라는 겁니다.
하지만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 만큼 기대하는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 동안 보여 온 숙청정치가 상황에 따라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