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분야에 국한됐던 북한경제의 시장화 현상이 생산 분야로 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한국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습니다. 시장에 내다 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중국에서 재료나 부품을 들여 오는 민간 생산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은 최근 ‘2015년 북한경제 종합평가와 2016년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경제의 시장화가 유통 분야에서 생산 분야로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탈북자들과의 인터뷰 등을 토대로 작성된 이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시장화가 종전엔 유통 분야 가운데서도 대외무역의 발달에서 비롯된 측면이 컸고 이 때문에 생산력 증대를 수반하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북한 내 자원이 대부분 고갈되고 국내외 산업 연관효과도 거의 파괴된 상태에서 시장의 확대가 북한 자체 생산을 자극하는 효과가 제한적이었지만 김정은 시대 들어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보고서는 무엇보다 중국을 왕래하는 북한 상인들이 중국산 완제품 보다는 북한에서 가공해 완제품을 만들 수 있는 소재와 부품 분야에 더 관심을 돌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종전엔 상인들이 종합시장에서 바로 팔 수 있는 완제품을 들여왔지만 지금은 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천이나 상표, 소규모 개인사업자들로부터 주문 받은 전자부품 등을 주로 수입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산업연구원 이석기 박사입니다.
[녹취: 이석기 박사 / 산업연구원] “몇 년 전만 해도 중국산 완제품이 북한 시장에 직접 들어와서 판매돼 그것이 북한의 시장화를 이끌고 나갔다고 하면 요즘은 점차 중국산 완제품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반제품 또는 부품을 사서 북한 내부에서 완제품을 생산해서 시장에 판매하는 비중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북한의 개인 수공업자와 신흥자본가로 불리는 ‘돈주’들이 소비제품의 생산 즉, 내수용 제조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빚어진 결과로, 북한경제의 시장화가 유통에서 제조업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징후로 보고서는 분석했습니다.
보고서는 또 민간 생산이 증가하면서 맹아적 형태이긴 하지만 수입대체 효과도 내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일례로 최근 북한에서 생산된 오리털 동복 등 겨울용 외투가 중국산보다 가격은 절반 수준이지만 품질 면에선 중국산에 뒤지지 않아 중국인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과거 북한의 외화벌이 기관이나 돈주들은 중국 저장성 등 인건비가 싼 지역에서 생산된 저가 소비품을 대량으로 수입해 북한 내부에 유통시켰는데 이런 저가 제품들은 일부 경제력이 생긴 북한 주민들의 기호나 소비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와 함께 국영기업이 만든 경공업 제품보다 개인들이 모방해 만든 모조품이 더 경쟁력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보고서는 민간 제조가 늘어나는 이유로 종합시장 발달 등 공산품 판매 경로가 크게 증가했고 북한 주민들의 구매력이 높아진 점을 꼽았습니다.
또 개인이 돈벌이를 위해 운영하는 버스 또는 화물차를 일컫는 이른바 ‘써비차’의 등장으로 물류가 개선되면서 중국산 제품보다 가격경쟁력도 높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지난해 북한 시장화의 최대 특징으로 북한 정부가 시장화를 주도 또는 견인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종전에는 시장을 없애느냐 살리느냐가 북한 당국의 최대 고민이었지만 지금은 시장을 현실로 인정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는 대신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북한 정부의 책임 아래 주민들이 자릿세를 내고 합법적으로 장사할 수 있는 이른바 ‘공식시장’의 수도 크게 늘어났다고 분석했습니다.
앞서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한미연구소는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북한의 공식시장이 2010년 200여 개에서 2015년 10월엔 406개로 5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났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