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억류 미국인들에 대한 영사 접견을 전례 없이 오랫동안 차단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미국의 영사 업무를 대행하는 현지 스웨덴 대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평양주재 스웨덴 대사관 관계자가 북한에 억류돼 있는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를 유일하게 방문한 건 지난 3월2일이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국무부의 한 관리는 2일 ‘VOA’에 북한이 그 날 이후 웜비어 씨에 대한 스웨덴 대사관 관계자들의 영사 접견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3월 접견 외에 웜비어 씨 재판에만 참관할 수 있었던 스웨덴 대사관 측이 지금까지 8개월 넘게 그의 수감 생활과 건강 등을 직접 점검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웜비어 씨는 지난 1월 북한 내 숙소인 호텔 제한구역에서 선전물을 훔쳐 북한 형법 60조에 규정된 ‘국가전복음모죄’를 저지른 혐의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또 다른 억류 미국인 김동철 씨에 대한 북한 당국의 처우는 더욱 가혹합니다.
지난해 10월 2일 라선경제무역지대에서 체포된 김동철 씨는 1년 1개월 동안 스웨덴 대사관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영사 접견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의 국무부 관리는 2일 김동철 씨 상황을 묻는 ‘VOA’의 질문에 “미국 시민 한 명이 10년 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았다는 언론 보도를 알고 있다”는 기존 설명을 되풀이했습니다.
지난 1974년 제정된 미국의 ‘개인정보보호법(Privacy Act)’에 따라 미국 정부는 억류 미국인들이 평양주재 스웨덴대사관 관계자와 만나 이 권리를 포기한다는 서명을 하지 않는 한 이들의 신원과 구금 현황을 언론 등에 공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무부가 김동철 씨 실명조차 언급할 수 없는 건 억류 1년이 넘도록 북한이 김 씨의 영사 접견을 차단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는 2012년 북한에 억류됐다가 2년 만에 풀려났던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씨에 대한 영사 방문이 허용되지 않았던 4개월을 훨씬 뛰어넘는 최장기 공백으로, “우리 민족끼리”를 내세우는 북한이 유독 한국계 미국인 인질을 가혹하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외국인 가운데 북한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735일 동안 갇혀 있던 케네스 배 씨는 노동교화소와 병원 등에서 12차례 영사 면담을 했습니다.
1963년 체결된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는 체포, 구금된 외국인이 자국 영사의 면담을 요구할 경우 즉시 해당국 정부에 이를 통보하고 영사 접견을 보장하도록 돼 있습니다.
토르켈 스티에른뢰프 평양주재 스웨덴 대사는 1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스웨덴 대사관은 억류 문제와 관련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토르켈 스티에른뢰프 평양주재 스웨덴 대사] “We are constantly working almost on a daily basis with these cases. It’s really high on our agenda.”
스웨덴 대사관에게 억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의제이고, 거의 매일 매일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스티에른뢰프 대사는 지난 9월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의 측근이 이끄는 미국의 민간 방문단을 만난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과 북한 당국 간의 대화에 대해선 방문단 측에 직접 문의하라며 말을 아꼈습니다.
앞서 리처드슨 전 주지사가 설립한 비영리단체 ‘리처드슨글로벌관여센터’의 미키 버그만 씨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9월24일부터 27일까지 북한을 방문해 미군 유해 발굴 작업 재개와 홍수 피해 지원 가능성, 북한 억류 미국인 석방 등 인도적 이슈에 대해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당국은 미-북 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따라 미국인 인질들의 영사 접견을 불규칙하게 허용하고 수시로 차단해왔습니다.
2009년 3월 17일 북한에 억류됐던 유나 리, 로라 링 기자는 같은 해 8월 4일 석방될 때까지 평양주재 스웨덴대사와 4차례 만났습니다.
다음해 1월 25일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 북한 당국에 체포됐던 아이잘론 말리 곰즈 씨는 8월27일 귀환하기 전까지 최소 5차례 스웨덴대사관과 접촉했습니다.
2014년 4월 10일 북한 입국 과정에서 억류된 매튜 토드 밀러 씨는 11월 8일까지 8개월 간의 수감 기간 동안 5월 9일과 6월 21일 두 차례만 스웨덴대사관 측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또 같은 해 5월 7일 성경책 유포 혐의로 체포된 제프리 파울 씨에게는 10월 21일 석방일 까지 5개월 반 동안, 6월 20일 단 한 차례의 영사 접견만 허용됐습니다.
미 국무부는 억류 미국인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북한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바로 그렇게 하고 있다며, 미국인을 즉각 사면 석방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