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이 이달로 3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VOA는 ‘탈북민 3만 명 시대’를 맞아 탈북민들이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의 명암과 한국 정부 탈북민 정책의 현주소를 짚어 보는 특집을 다섯 차례로 나눠서 전해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순서로, 탈북민들이 한국사회 정착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문제점, 그리고 정책 개선 방향에 대해 살펴봅니다. 서울에서 한상미 기자가 보도합니다.
많은 북한 주민들이 자유와 행복을 찾아 한국행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북민의 한국 생활은 녹록지 않습니다.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들이 겪는 가장 힘든 점은 경제적인 어려움입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김성경 교수의 설명입니다.
[녹취: 김성경 교수 / 북한대학원대학교] “일단 취업이 제일 어려운 것 같고요. 왜냐하면 최근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북에서 배웠던 교육 이런 것들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 내려와서 안정적인 취업을 하기 쉽지가 않다, 이런 이야기가 제일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일단 경제적으로 자립이 돼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까. 거기서 오는 어려움이 가장 큰 것 같아요.”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은 1인 1세대 기준으로 미화 약 6천 달러의 기본금과 1만1천 달러 상당의 주거지원금을 받습니다.
하지만 북한을 탈출한 이들 중 상당수가 탈북 브로커를 통해 한국으로 오는 만큼, 정착지원금 가운데 상당액이 브로커 사례비로 나가는 게 현실입니다.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북한 출신이라는 꼬리표와 낯선 자본주의사회의 무한경쟁 속에서 탈북민의 취업은 쉽지 않습니다.
한국 통일부의 ‘심화교육 취업실태 조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탈북민 중 경제활동 참가율은 55%였고 전문직 탈북민 가운데 관련 분야에 취업한 사람은 10%에 그쳤습니다.
이에 따른 생계급여 수급률은 25%로, 4명 가운데 1명은 생계급여를 받아 생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탈북민들에 대한 한국 주민들의 차가운 시선도 이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경남 창원에 사는 탈북민 김태희 씨의 경우에도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차가운 시선이었습니다.
[녹취: 김태희 씨 / 탈북민] “탈북민이라고 하면 다르게 보는 눈길? 일자리를 잡을 때도 그렇고 면접 갔을 때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시민들이 대할 때도 그렇고 탈북민은 조선족보다도 어떻게 보면 더 차등대우를 받는… 그런 것을 많이 느끼고 살아가죠. 피부로 많이 체험을 하고 있는 현실이에요, 그게…”
탈북민 출신 세계북한연구센터 안찬일 소장도 탈북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이들의 한국 정착 과정에 큰 걸림돌이라며 전반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박사 /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아직도 뭔가 이 사회의 차가운, 흡수력이 약한, 아직도 냉대를 느끼고 있다고 봐야죠. 그 차가운 인식의 변화를 제일 원합니다, 탈북민들은. 북한에서도 차별이 싫어서 탈북한 사람들인데…”
더 큰 문제점은 이 같은 탈북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탈북민 김혁 씨는 의사소통이 안 되는 답답함이 폭력으로 나타나고 이는 결국 탈북민의 범죄율로 연결된다면서 대화와 소통 방법을 몰라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김혁 씨 / 탈북자] “사장이 이런 얘기 하고 저런 얘기 하는데 내가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그럼 서로 답답한 거죠. 결국 갈등이 일어나는 거죠. 보통 6개월 이내에 취업했던 사람의 63%가 그만 둡니다. 대화가 안되고 소통이 안되니까 탈북자들끼리 모이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범죄가 재생산되는 거죠.”
아울러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해야 임금도, 전문성도 높아지는데 소통의 부재로 회사를 자주 옮기게 되면 연속성이 떨어지고 임금도 초임으로만 받게 돼 빈곤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김 씨는 덧붙였습니다.
탈북민이 저지르는 범죄와 함께 또 다른 문제는 탈북민을 상대로 한 범죄입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탈북민은 한국 주민에 비해 5배 이상 범죄에 노출돼 있으며 특히 사기 피해 건수는 4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저런 이유와 여건으로 최근에는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가운데 제3국으로 이민을 가는 경우도 크게 늘고 있습니다.
한국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이후 이민으로 출국한 탈북자는 33명, 제3국에 위장 망명을 신청해 보호가 중지된 탈북자도 53명이나 됐습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김성경 교수입니다.
[녹취: 김성경 교수 / 북한대학원대학교] “최근에 제일 관심 갖는 게 탈남 현상일 거예요. 이민으로 가는 사람도 많거든요. 남한에서 이렇게 무시 받고 살 바에는 어차피 똑같은 상황이라면 외국에 나가서 사는 게 훨씬 낫지 않냐, 그리고 자기 자녀들은 외국으로 보내겠다 라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아요.”
탈북민이 성공적으로 한국사회에 정착하는 데 중요한 현안 가운데 하나는 여성에 대한 배려입니다.
조재희 대구하나센터장은 지역사회의 경우 20~40대의 여성 탈북민 비중이 절대적이라며 출산과 육아를 감당해야 하는 탈북 여성들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는 이들을 지원하는 별도의 체계도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녹취: 조재희 센터장/ 대구하나센터] “지역사회 같은 데는 78%까지 여성분들이 많으세요. 대부분이 함경도 출신이시고 여기 오시는 거주하시는 연령대도 20-40대가 제일 많으셔서 사실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을 이야기할 때 취업이 어렵다 얘기하시지만 20-40대의 출산, 육아 과정을 겪고 계신 북한이탈주민이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기에는 다른 사회적 지지망도 없고 안전체계도 없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배려와 함께 또 한 가지 탈북민들이 겪는 어려움은 정체성 문제입니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오경섭 박사는 한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탈북민들의 정체성 확립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오경섭 박사 / 한국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부센터장] “탈북자들이 한국사회에서 동등한 기회를 제공받고 또 차별을 받지 않도록 정책적으로 차별 방지를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뤄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탈북자들이 한국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의 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김성경 교수는 탈북민 3만 명 시대를 맞은 지금,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정치적 색채를 지닌 채 탈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서 한국사회가 북한 출신자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방법을 장기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정준희 대변인 / 한국 통일부] “앞으로도 탈북민 3만 명 또 4만 명, 5만 명이 되겠지만 이 분들이 한국사회에 잘 정착함으로써 남북통일에 기여하게 되는 초석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한국 통일부 당국자의 말처럼 탈북민이 한국사회에 잘 정착해 통일에 기여하는 초석이 되려면 이들을 위한 보다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정착 지원책이 마련돼야 할 시점입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한상미입니다.
한국 내 탈북민 3만 명 시대를 맞아 준비한 기획보도, 내일 이 시간에는 네 번째 순서로 탈북 청소년 교육 문제에 대해 전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