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이 3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VOA는 ‘탈북민 3만 명 시대’를 맞아 이들이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의 명암과 한국 정부의 탈북민 정책의 현주소를 짚어 보는 특집을 다섯 차례로 나눠서 보내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신세대 탈북민들의 한국사회 정착 과정을 살펴봅니다. 서울에서 한상미 기자가 보도합니다.
인터넷 BJ, 인터넷 브로드캐스팅 자키로, 인터넷으로 제작해 배포하는 방송 영상 속 진행을 맡은 사람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인터넷 BJ들의 활동이 활발한데요. 탈북민 최초로 인터넷 BJ에 도전장을 내민 청년이 있습니다. 바로 23살의 탈북민 이평 씨입니다.
[Effect-인터넷 방송 중인 이평 씨]
카메라가 연결된 컴퓨터 앞에 앉아 자신의 탈북 체험을 이야기하는 이 씨. 온라인 상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립니다. 컴퓨터 접속을 통해 이 씨의 방송을 보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실시간으로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겁니다.
[녹취: 이평 / 인터넷 BJ, 탈북민] “인터넷 방송에는 북한 사람이 없다라고 (하고), 대부분 북한 사람은 화면상에 나오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 (그렇다면) 이 스타트를 내가 끊어야겠다 해서 방송을 하게 됐습니다.”
전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영상들이 올라오는 유튜브, 이 곳에서 ‘아는 언니’라는 제목으로 북한 이야기를 하는 4명의 탈북 여성들이 있습니다.
[Effect-‘아는 언니’ 방송 사운드]
모두 함경북도 청진 출신인 ‘아는 언니’ 방송의 선화 씨, 유나 씨, 진옥 씨, 설아 씨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진옥 씨의 설명입니다.
[녹취: 진옥 / 탈북여성 ] “많은 분들이 볼 거라는 기대도 없이 시작했는데 그래서 저희들이 다 방송에 어느 정도 나갔던 친구들이에요. 그동안 못다했던 얘기들, 인터넷방송으로 좀 더 편하게 풀고 싶어서 이렇게 했던 건데 너무나 많이 봐주시고 그래서 댓글도 바로 바로 그 때 많이 올라와서…”
10대 청소년 시기에 한국에 입국해 한국에서 자란 신세대 젊은 탈북민들의 적극적인 정착 사례들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방식을 추구하는 젊은층이 늘고 있는 겁니다.
이들은 지금까지 한국사회에 수동적으로 정착해온 중장년층 탈북민에 비해 훨씬 더 적극적으로 한국사회에 적응해 나가고 있습니다.
한국 통일부에 따르면 한국 입국 당시를 기준으로 20~30대 젊은층은 전체 탈북민의 58%로 절반이 넘습니다.
또한 이들의 탈북 동기나 유형 역시 과거 북한 당국의 핍박이나 굶주림 때문이 아닌, 자유에 대한 동경이나 북한체제에 대한 불만, 한류에 대한 동경 등 다변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과감히 한국행을 선택하고 있는 겁니다.
‘아는 언니’ 방송의 설아 씨는 기성세대들이 방송에서 북한에 대해 너무 안 좋은 점, 아픈 부분만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게 편치 않았다고 말합니다.
북한도 한국처럼 사람이 사는 곳이고 좋은 일이나 슬픈 일 다 있을 수 있으며 또 북한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한국 시청자들에게 부담 없이 들려주고 싶다는 겁니다.
[녹취: 설아 씨 / 탈북민] “저희가 어두운 캐릭터가 아니고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편이라서… 너무 아프게 이야기하기 보다는 그래도 나름 저희가 살았던 고향이니까 하니까 아련한 추억도 이야기하고 편안하게 다가가는 게 목적이었어요. 거부감이 없이. 아, 사람 사는 데는 다 거기서 거기네, 뭐 이런…”
신세대 탈북민들의 이러한 솔직하고 자신감 넘치는 방송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이평 씨의 설명입니다.
[녹취: 이평 / 인터넷 BJ, 탈북민] “하면서 재미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궁금해 하거나 한국 분들이 갖고 있는 북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나 이런 것을 좋은 쪽으로 가고 궁금해하는 것을 제가 아는 한에서는 답해드리고 풀어드리니까 오히려 그런 것에 고마워하시는 분들도 있고. 궁금해서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고…”
진옥 씨 역시 한국 젊은이들과의 소통이 즐겁습니다. 특히 이들이 거부감 없이 북한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게 진옥 씨의 목표입니다.
[녹취: 진옥 씨 / 탈북민] “젊은층들, 언니, 누나 하면서 댓글 다는 분들도 많고 이걸 통해 북한에 대해 관심 갖게 됐다, 멀게만 느껴졌는데 그렇게 저희를 봤을 때 낯설지 않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북한 하면 어렵고 못살고 그것을 많이 생각하다 보니까 거리감 느껴지고 그 곳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닌 그렇게 느껴지던 것을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가고 싶은 그런 게 있어요.”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도지인 교수는 젊은 탈북민들이 새로운 정착모델을 만들어 가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정착의 조건과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겁니다.
도지인 교수의 설명입니다.
[녹취: 도지인 연구교수 /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이제 탈북의 역사도 오래되고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까 젊은 학생들이 여기 와서 자기 스스로 개척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고. 그 사람들이 열심히 해서 탈북 정착의 새로운 모델을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 가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지난 2013년 서울대학교 로스쿨에 탈북민 1호로 합격해 화제를 모았던 임철 씨 역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습니다.
15살에 한국에 온 임 씨는 북한과 중국 그리고 한국사회를 모두 경험하면서 법 제도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법조인의 꿈을 키우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통일한국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녹취: 임철 / 탈북민, 서울대 로스쿨 재학] “앞으로 북한사회가 열리고 북한사회가 변화할 때 제일 먼저 필요한 게 사회 뼈대인 법 체계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법치주의만이 다시는 북한 같은 독재가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국사회가 걸어 왔던 법치주의 발전 이런 것들을 북한에 이식하고 더 발전시키는 그런 역할들을 하고 싶은 거죠.”
신세대 탈북민의 등장은 배고픔과 생활고, 정치적 박해를 못 이겨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던 기존 탈북민에 대한 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남과 북, 어느 곳에서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이들에게는 없습니다. 이들은 이제 거리낌 없이 새 터전에서 자신들의 삶을 가꾸어 가는 신세대입니다.
‘탈북민은 먼저 온 통일’이라는 말이 이들에게서 증명이 될지 한국사회는 눈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한상미입니다.
한국 내 탈북민 3만명 시대를 맞아 보내 드린 기획보도, 오늘 순서를 끝으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