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드(THAAD)의 한국 배치에 대한 보복을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한국 대통령이 이른바 ‘최순실 국정개입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린 한국 내부 정세를 이용해 한국 측의 정책 수정을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국 배치를 반대해 온 중국 당국이 외국 기업 가운데 유독 한국 롯데그룹의 중국 사업장에 대해 세무조사 등 전방위 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사드 보복 조치가 본격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롯데는 향후 선양 롯데타운 등 중국에서 추진해 온 대형 사업계획 인가 지연 등 불이익을 받을 처지에 놓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롯데는 이미 중국 내 광고 중단에 이어 홈쇼핑 처분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롯데에 대한 표적조사는 중국의 압박전선이 문화 분야에서 경제 분야로 확대되는 게 아니냐는 한국 측의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롯데가 첫 표적이 된 배경에는 지난달 한국 정부에 사드 부지를 제공한 게 구실이 됐다는 관측입니다.
이에 앞서 중국은 지난달 중순부터 중국에서 인기가 많은 한국 연예인 이른바 ‘한류 스타’들의 방송 출연을 금지하는 ‘금한령’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이달 들어 일부 완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한류와 연계된 중국 업체들의 숨통을 틔워주려는 제한적인 조치라는 관측입니다.
지난 10월 중순만 해도 추궈훙 주한 중국대사는 서울에서 열린 재계 주최 강연에서 미-한 관계의 어떤 요소가 중국에 영향을 주면 중국 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게 정상이라면서도 한-중 경제협력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해결해주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사드 갈등 때문에 중국 내 한국 기업이 불이익을 당하진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키는 발언으로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중국이 한국 기업을 겨냥해 공세에 나선 것은 이른바 ‘최순실 국정개입 사건’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처하면서 빚어진 한국 정부의 지도력 공백을 틈 탄 노골적인 사드 포기 압박이라는 분석입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전병곤 박사입니다.
[녹취: 전병곤 박사 / 한국 통일연구원] “중국 입장에선 이번 기회에 한국의 정책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 권력 변동이 생기면 그에 따라서 정책도 변화될 여지가 있는 게 아닌가 이런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광운대학교 신상진 교수는 사드 배치로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 MD에 편입된다고 중국이 인식하고 있는데다 한국의 사드 배치가 다른 중국 인접국가들의 연쇄적인 사드 배치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신상진 교수 / 광운대학교] “한국이 사드 배치를 하게 되면 대만, 필리핀, 베트남 이런 지역까지 사드 배치를 하는 지역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이 중국을 군사적으로 완전히 포위하는 구도로 발전될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이것을 차단하는 게 시급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신 교수는 중국이 내년으로 예정된 사드 배치가 실제 이뤄질 때까지 한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중국의 이같은 공세에 대해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외교부 선남국 부대변인은 6일 정례 기자설명회에서 중국의 조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선남국 부대변인 / 한국 외교부] “외교부로서는 주중 공관 및 관계부처와의 긴밀한 협조체제를 통하여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중국을 포함하여 해외에 투자한 우리 기업들이 규범과 절차에 따라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강구해 나갈 예정입니다.”
이에 앞서 지난 2일 주중 한국 대사관은 중국 기자 20여 명을 대사관에 초청해 두 시간 동안 한-중 관계 현황에 대한 설명회를 열고 사드 배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과 정당성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간담회에 참석한 `신화통신'은 논평에서 한국 측 설명이 ‘변명’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사드 배치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한국 영토와 국민, 그리고 주한미군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밝혔지만 한국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도권이 사드 방어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통일연구원 전병곤 박사는 한국 정부의 지도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이런 공세에 국가적 차원에서 대처하긴 어렵다며, 한국으로선 지도력의 조속한 회복이 절실하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