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 “북한 상당한 화학무기 보유...광범위한 위협 대비”

지난 2013년 4월 한국 의정부에서 미군 23화학대대 소속 군인들이 화생방 방호 시범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상당한 규모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미 국방부가 ‘VOA’에 밝혔습니다. 북한의 화학무기 역량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암살된 김정남 씨 시신에서 독성화학물질인 VX가 검출됐다고 밝히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제프 데이비스 미 국방부 대변인은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의 많은 위협이 핵과 미사일로 이뤄져 있지만 화학무기도 오랫동안 잘 알려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데이비스 대변인은 이날 김정남 암살에 사용된 VX 에 관한 질문에 대해 “북한이 보유한 치명적인 화학무기들에 대해 미국은 잘 인지하고 있다”며 이런 화학무기가 포탄 등 다양한 무기에 장착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보유한 화학무기의 규모나 종류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은 채 국제 규범들을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북한 정권이 이를 또 위반했다는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미 국방부의 게리 로스 동아태 대변인도 이날 ‘VOA’에 “북한 정부가 상당한(significant)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이 동맹인 한국과 함께 잠재적인 화학물질의 사용 등 북한이 제기하는 광범위한 위협에 대비하고 있다”고 짤막하게 말했습니다.

미 국방부가 지난해 미 의회에 제출한 북한의 군사안보동향보고서는 북한의 화학무기 위협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북한이 오랜 기간 신경, 수포, 혈액, 질식 작용제를 생산하는 화학무기 프로그램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관련 화학무기 비축량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규모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어 “포탄이나 탄도미사일 등 다양한 재래식 무기들을 개량해 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보고서는 또 북한군이 정규적으로 화학 방어작전 훈련을 하는 등 오염된 환경에서 작전을 수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화학무기금지협약(CWC) 가입국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척 헤이글 전 미국 국방장관은 재임 시절인 지난 2013년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엄청난 양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경고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화학무기 위협과 대응에 관해 한국 국방장관과 장시간 협의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미 국방부는 당시 이런 위협을 반영해 2004년 한국에서 철수했던 제23화학부대를 9년 만에 주한미군 2사단에 재배치했습니다.

한국 국방부는 국방백서와 지난해 국회 보고에서 북한이 1980년대부터 화학무기를 생산하기 시작해 현재25개 종류의 화학무기 2천 500에서 5천t을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국방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북한 내 화학무기 관련 시설을 16개로 추정했었습니다.

이 연구원의 권양주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의 화학무기 위협이 제기된 2013년 언론 매체 기고에서 북한이 화학무기 비축량을 모두 포탄용으로 만들면 최대 125만 발까지 만들 수 있어 서울시 면적의 4배를 오염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었습니다. 게다가 화학무기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투발과 투입이 가능하고 테러용으로 손쉽게 전용할 수 있어 핵무기 못잖은 심각한 위협이라고 주장했었습니다.

미 태평양사령부는 웹사이트에서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이런 북한의 화학무기 위협에 대응해 해마다 실전훈련을 분기별로 실시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미군은 특히 지난해 3월, 23화학부대가 비무장지대 인근에서 유사시 북한에 들어가 화학무기를 확보하는 실전훈련을 수행했다고 밝혔습니다.

23화학대대장인 애덤 힐브로 중령은 훈련 중 ‘워싱턴포스트’ 신문에 유사시 북한에서 확보한 생화학무기 표본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측근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화학무기는 아주 적은 양으로도 엄청난 인명을 죽일 수 있어 국제사회가 강력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국제 화학무기금지협약을 감독하는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아흐메트 위쥠쥐 사무총장은 지난해 9월 한국을 방문해 북한의 화학무기 운용에 대해 강하게 경고했었습니다.

[녹취: 위쥠쥐] “It’s particularly important because…”

공개된 자료를 보면 북한이 고도로 발전된 화학무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우려가 크다는 겁니다.

위쥠쥐 총장은 특히 화학무기금지기구가 두 가지 미완의 임무가 있다며 “첫째는 화학(무기) 테러 공포를 없애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이 운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프로그램의 폐기”라고 지적했습니다.

화학무기금지기구는 192개국이 가입해 있으며 유엔회원국 가운데 북한과 이집트, 이스라엘, 남수단 등 4개 나라만 가입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