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깊이 보기] "트럼프 ‘중국 역할론’으로 북한 입지 오히려 강화될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해 강조하는 ‘중국 역할론’이 오히려 북한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한국 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매주 한반도 관련 뉴스를 심층분석해 전해 드리는 ‘뉴스 깊이 보기’,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북 핵 문제 해결과 관련해 중국의 역할과 책임을 한층 강조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던 전임 바락 오바마 행정부의 북 핵 접근법에서 더 나아가 중국이 북 핵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중국 책임론’을 펼 것이란 관측입니다.

그러나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 구도에서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중국이 북한의 안정 대신 비핵화를 택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입니다.

지난달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전략연구실장의 발언 내용입니다.

[녹취: 박병광 동북아전략연구실장] “트럼프는 중국을 이용해 북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이는 과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중국 역시 자국의 국가이익에 의해 북한과 한반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언컨대 중국은 북한 정권의 안정과 비핵화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분명 북한 정권의 안정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중국이 레토릭상으로는 북한의 핵 개발에 반대하며 북한을 향해 얼굴을 붉힐 수는 있지만 북한을 향해 등을 돌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미-중 간 갈등이 격화될 경우 북한의 입지가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경우 중국이 인식하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드의 한국 배치로 북 핵 문제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협력을 얻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중국 정부 초청으로 방중한 북한 리길성 외무성 부상(왼쪽)이 지난 1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지난달 28일 중국을 방문한 리 부상은 류전민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만나 공통 관심사를 논의한 데 이어 왕이 부장과도 회담을 가졌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달 28일 리길성 북한 외무성 부상을 초청하고, 회동 내용을 공개한 것도 ‘중국은 북한을 버리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미국과 한국을 향해 던진 것으로 한국 외교가는 보고 있습니다.

경상대 박종철 교수는 사드 배치와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책은 북한에게 일종의 기회를 제공한 셈이라며,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지렛대로서 북한을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종철 경상대 교수] “중국 대북정책의 핵심은 역사적으로 미-중 관계와 한반도에 대한 안정적인 분할관리입니다. 이러한 한반도 분단의 국제관계 관성과 구조를 감안할 때, 중국 정부는 향후 트럼프 정권과 차기 한국 정부와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재검토할 가능성이 높고, 무엇보다 트럼프 정권과 사드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북한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됩니다.”

여기에다 오는 11월 시진핑 집권 2기 출범을 선포하는 19차 당 대회를 앞둔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이 미국의 강경 행보에 쉽게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을 것이란 지적도 나옵니다.

세종연구소 정재흥 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정재흥 연구위원] “시진핑 주석의 행보를 볼 때 올해 시진핑 주석을 중심으로 한 1인 지배체제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진핑 주석으로선 자신의 권력 공고화를 위해 대외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고, 미국과의 경쟁 갈등 구조 속에서 최고지도자로서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만일 ‘강한 중국’ 과 ‘차이나 드림’을 얘기하는 시진핑 주석이 대외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일 경우 내부적으로 반발이 있을 것이고 권력 강화측면에서도 타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중국이 형식적으로는 유엔 안보리 제재를 이행하면서도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하며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려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8일 중국 왕이 외교부장의 기자회견은 이 같은 관측에 무게를 더하고 있습니다.

왕이 부장은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 병행 추진을 제안하며, 한반도 긴장 해소를 위해 북한의 핵 미사일 발사 중지와 미국과 한국의 대규모 군사훈련 중단을 촉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이 대화를 모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과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 수준을 감안할 때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과거에 비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서강대 김재천 교수입니다.

[녹취: 서강대 김재천 교수] “오랜 강 대 강 국면이 지나가면 결국 협상 국면이 도래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모라토리엄 얘기가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북한의 경우 핵 보유국 지위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핵실험을 유예하겠다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럴 경우 한국 정부는 물론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협상장에 나오도록 노력해야겠지만 미국의 정책 결정 추이만 지켜볼 것이 아니라 협상국면에 대비해 보다 능동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통일연구원도 최근 발간한 ‘북한의 IRBM실험 발사 평가와 미-북 관계 전망’ 보고서에서 미국의 압박 증가와 중국의 적극적인 협조로 북한의 저항 능력이 단기간에 심각하게 훼손될 경우 북한이 핵 모라토리엄 선언이나 극히 제한된 수준의 핵 사찰을 허용하며 미-북 대화를 희망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보고서는 또 미국 역시 중국의 제재 강화 노력에 대한 대가로 북한과의 대화에 좀더 적극적으로 임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외교가는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 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만큼의 외교적, 정치적 자산을 투입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감수하면서 ‘세컨더리 보이콧’이나 ‘하나의 중국’ 원칙 등의 카드를 쓸지 여부가 관건이라며, 다만 북 핵 문제에 대한 한국 차기 정부의 입장이 북 핵 문제 향배에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