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일 실시되는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합니다. 이들은 과거와는 달리 보수정당 후보뿐 아니라 다양한 성향의 후보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VOA' 방송의 한국 대통령 선거 특별기획, 서울에서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달 26일 한국 국회 정론관. 한국 내 4개 탈북청년단체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녹취: 남북현대사산책 김영호 대표] “우리는 김일성 왕조가 지배하는 독재체제가 싫어 남쪽으로 내려온 탈북 청년들입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탈북 청년들은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 더불어 사는 따뜻한 공동체를 세우겠다는 문재인 후보에게 희망을 걸어봅니다.”
한국 내 탈북민들은 대개 북한 정권에 강경책을 주장하는 보수 후보를 지지한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진보적 대북 노선을 내세우는 문 후보를 지지하는 이날 행사는 매우 이례적으로 비쳐졌습니다.
이날 회견에서 남북현대사산책의 김영호 대표는 북한의 변화를 위해 유연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영호 대표] “우리 탈북 청년들은 그 누구보다도 김정은을 싫어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김정은을 만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전략의 문제이지 사상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 4일에는 탈북민 1호 박사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등 탈북민 4백여 명이 국회에서 역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안 소장은 ‘VOA’에 문 후보가 탈북민 지원기구인 남북하나재단을 탈북민 중심으로 개혁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탈북단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거의 유일한 후보라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문재인 후보의 더불어민주당은 탈북민 공약을 과학적으로 우리 요구를 받아들여 내놨습니다. 그래서 탈북민들은 과거 보수정권에서 실망했기 때문에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민주당을 지지하게 된 겁니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을 더 압박해 북한 주민들이 자유를 누리도록 해야 한다며 보수 성향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강력합니다.
탈북자집단망명추진위원회라는 단체는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탈북민 3천 명이 해외로 망명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내 탈북 여성 박사 1호인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장은 과거 한국의 진보 정권이 남북관계 개선을 이유로 탈북민들의 북한인권 개선 활동을 탄압했다며,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애란 원장] “북한인권 운동이 엄청 압박을 당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존권 문제가 있고, 또 하나는 우리만 한국에 와서 먹고 살면 안 되는데, 실질적으로 북한의 자유와 주민들의 인권 문제를 위해 싸워야 하는데 (문 후보가 되면) 도저히 싸울 상황이 오는 거 아닙니까? 그럼 우리가 여기(한국)에서 살 이유가 없어지는 거죠”
그런가 하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탈북민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지 13년이 된 30대 탈북 청년 소명 씨는 북한 정권이 바라는 남한의 분열이 아닌 단합을 위해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녹취: 소명 씨] “저는 당연히 안철수 입니다.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도 입장인데, 저는 북한보다 이 곳 대한민국의 안정이 더 중요하고 경제, 안보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내 자국이 건강해야 나중에 북한도 막을 수 있는데 여기가 먼저 혼란스러우면 북한 정권은 항상 대한민국의 정치적 혼란과 분열을 원하기 때문에, 또 미국과 대한민국 사이 분열을 원하기 때문에 나는 그런 거 원하지 않습니다”
아기를 키우는 가정주부로서 북한인권 운동을 병행하고 있는 김은주 씨는 한국 정착이 오래된 탈북민들일수록 후보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높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김은주 씨] “오래되신 분들은 좀 더 객관적으로 많이 따져서 대한민국 일반 국민들처럼, 무조건 우가 좋다기 보다는 지금 실제 상황을 따져보고 저도 그렇지만 나와 북한 동포들 뿐 아니라 내 자식, 대한민국에 살아가야 하는 내 자식의 미래 등 그런 부문들을 다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탈북청년단체인 통일시민아카데미의 김성렬 대표는 탈북민들이 북한처럼 획일적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녹취: 김성렬 대표(기자회견 중)] “우리는 한국사회에 다양성이 존재하듯이 탈북자 사회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국에 와서 대학교육을 한 우리는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기초로 한다고 배웠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존중 받을 수 있는 사회,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을 기초로 우리는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동유럽 폴란드 출신으로 한국 연세대학교에서 인권을 가르치는 요한나 호사냑 북한인권시민연합 부국장은 탈북민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곧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라고말합니다.
[녹취: 호사냑 부국장] “It’s freedom of speech right? It’s freedom of opinion…”
특정 탈북민들이 다수를 대변하지 않고 각자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인 표현과 견해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란 겁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일부 탈북민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줄서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또 새 대통령이 성향에 따라 통일과 탈북민 정책에서 부침이 심했던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균형을 유지하도록 탈북민들이 기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그럼에도 이 곳 한국의 탈북민 3 만명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게 있습니다. 김은주 씨와 소명 씨는 지지 후보는 다르지만 북한에서 누리지 못한 참정권을 누리는 기쁨은 탈북민 모두가 같을 것이라며, 꼭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은주/소명] “저는 되게 특권처럼 느껴지더라구요. 물론 내가 뽑은 사람이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는 기회?” “북한은 모든 국민들이 자유롭게 투표할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후보도 국가가 지정한 사람으로 제한돼 있잖아요. 대한민국은 모든 성인 국민은 다 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에 저도 한 사람의 유권자로서 이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데 잘 선택해서 뽑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와서 맘놓고 투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그런 권한을 나한테 부여해 주셔서 바른 대통령을 뽑을 수 있어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