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 전 국방장관 “대화만이 유일한 해법…북 핵 동결 조건으로 협상 나서야”

윌리엄 페리 전 장관이 13일 조지 워싱턴 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등이 개최한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거듭 강조했습니다. 북 핵 동결을 조건으로 미국 등이 북한과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북한 정권이 지난 수 십 년 간 굳건히 유지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페리 전 장관은 13일 조지 워싱턴 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등이 개최한 행사 기조연설에서, 북한이 무자비하고 무모할지 모르지만 정신 나간 정권은 아니라면서 이같이 밝혔습니다.

[녹취: 페리 전 장관] “They are ruthless, they are reckless, but they are not crazy…”

북한 정권이 김 씨 왕조를 유지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며,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목표 아래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북한은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위협은 하겠지만, 실제로는 핵을 사용하지 않을 때 협상 등의 이유로 가치가 높다는 점을 북한 정권이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페리 장관은 미국과 한국이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미국에게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을 만큼의 당근이 많은 상태, 즉 협상에서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페리 전 장관은 지난 1990년대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북 핵 문제를 담당하면서, 북한의 핵 동결 조치에 대해 단계적 보상과 체제를 보장하는 내용의 ‘페리 프로세스’를 제안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날 페리 전 장관은 자신이 핵 협상에 나섰던 1999년에는 북한에 핵무기가 없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현재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미국이 지불해야 할 값도 과거보다 더 높아졌다는 지적입니다.

[녹취: 페리 전 장관] “So, I think the most ambitious goal we can have…”

이 때문에 페리 전 장관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 확실한 현 시점에서 미국의 가장 야심적인 목표는 북한의 모든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을 동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핵무기 완전 폐기가 아닌 동결을 목표로 협상에 나서야 북한이 응할 것이고, 실제 효과도 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날 페리 전 장관에 앞서 기조연설자로 나선 미 시카고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도 같은 주장을 폈습니다.

[녹취: 커밍스 교수] “I still think that the Perry Process and the Kim Dae-jung’s initiatives represent the best practicable way to go forward…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일종의 제한을 두는 조건으로 워싱턴과 평양의 관계 정상화 등을 추진한 ‘페리 프로세스’와 김대중 전 한국 대통령의 대북 접근법이 가장 현실적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페리 전 장관과 커밍스 교수의 주장은 현 미국 정부의 입장과는 크게 다른 것입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지난 4월 공영라디오 `NPR’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올바른 의제로 대화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며, 단순히 (핵.미사일 개발을) 현 수준에서 몇 개월 혹은 몇 년 간 멈췄다가 다시 재개하는 건 올바른 의제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이 “핵 동결”이 아닌 “핵 포기” 의사를 분명히 하는 게 미-북 간 대화의 조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겁니다.

미 국무부 역시 ‘VOA’에 북한과의 대화 조건에 대한 미국의 입장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알리시아 에드워즈 대변인] “The United States remains open to credible talks on th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however conditions must change before there is any scope for talks to resume.”

알리시아 에드워즈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신뢰할만한 대화에 변함없이 열려있지만 북한과 어떤 범위의 대화라도 재개되기 위해서는 사전에 조건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