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만나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시간입니다. 아프가니스탄 통역사 출신 푸드트럭 운영자,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두번째 순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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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역경을 뒤로하고 이제는 미국인의 한 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 ‘나는 미국인입니다’. 안녕하세요? 김현숙입니다.
워싱턴 DC의 거리 곳곳엔 점심시간만 되면 각종 먹거리를 파는 푸드트럭이 등장합니다. 세계 각지의 음식을 파는 푸드트럭들 사이에 중동 음식을 파는 ‘페르시아의 맛’이라는 푸드트럭이 있는데요. 오늘의 주인공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씨가 동업자와 함께 운영하는 푸드트럭입니다.
[현장음: 워싱턴 DC '페르시아의 맛' 푸드트럭]
미국에 온 지 3여 년 밖에 안된 모함마드 씨가 이렇게 능숙한 영어로 손님들의 주문을 척척 받을 수 있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모함마드 씨는 전쟁이 한창인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과 연합군의 영어 통역사였기 때문이죠.
[녹취: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미국에 오겠다는 건 정말 중대한 결정이었습니다. 평생을 살던 곳을 떠나 전혀 모르는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당시 통역사들은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극단세력의 표적이었습니다. 아프간 정부나 해외 연합군을 위해 일하는 통역사들을 살해하거나 납치하는 경우가 무척 많았죠. 내가 누구인지 또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지면 저뿐만 아니라 제 가족까지 위험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려운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함마드 씨는 아프간 정부군이나 미국 정부를 위해 일한 아프간인 중 난민이 될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미국 정부가 허락한 특별비자(SIVs)를 통해 2014년 9월, 미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현장음: 모함마드 집]
모함마드 씨가 사는 아파트. 온 가족이 모여 앉아 TV를 보고 있습니다. 미국에 입국할 때만 해도 아이가 둘이었는데, 지금은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됐습니다.
[현장음: 모함마드 집]
모함마드 씨 가족은 아프간에서 인기 있는 오락 방송을 보고 있었는데요. 어린 자녀들의 입에선 이제 영어가 더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녹취: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처음엔 아이들도 힘들어 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와 헤어져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아이들은 적응이 빠르잖아요. 학교에 가서도 잘 적응하고 지금은 평범한 미국 아이 같아요. 저도 비교적 빨리 미국 사회에 적응했습니다. 아프간에 있을 때 미군들과 일했기 때문에 미국사람이나 문화가 그렇게 낯설진 않았거든요. 더군다나 아프간에 있을 때 워낙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다 보니까 그렇게 큰 충격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함마드 씨의 아내는 미국에 와서 일종의 문화 충격을 경험했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녹취: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데 있어서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더 어려움을 겪는 것 같습니다. 특히 중동 여성이 미국과 같은 서구사회에 정착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죠. 저희 아내는 미국행을 결심했을 때부터 아주 불안해 했습니다. 전 아내를 안심시키면서 직장도 찾을 수 있고, 영어도 금방 배우게 될거고, 또 생활이 안정되면 나중에 아프간에 계시는 부모님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줬어요. 하지만 아내는 미국 정착 초기에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미국에 적응하는 게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아프간에 있는 가족들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모함마드 씨는 미국에 와서 가장 힘든 점이 바로 이런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마음 아프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점만 제외하곤, 미국에서의 삶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녹취: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아프간에 있을 땐 폭탄 공격이나 총격을 무수히 목격했어요. 저는 특히 군인들을 위해 일했기 때문에 제가 타고 있던 트럭이 공격을 받기도 했고요. 제 눈앞에서 아프간 군인과 민간인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들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선 그런 공격이나, 폭발, 납치 등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으니까요. 물론 제가 생각했던 것과 좀 다른 부분은 있지만, 미국에서 삶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현장음: 모함마드 씨 아파트]
모함마드 씨가 사는 워싱턴 인근의 아파트엔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와 난민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퇴근 후 저녁 시간, 동네에서 같은 고향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는 건 모함마드 씨의 큰 기쁨이죠. 이렇게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녹취: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아프간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영어를 배웠어요. 저는 영어에 관심이 많아서 학교 수업 외에 영어 센터라고 하는 영어 교육 기관에 가서 수업을 또 들었죠. 그러면서 영어 실력이 많이 좋아졌어요. 사실 통역사가 되기 위해 영어를 배운 건 아니었습니다. 저는 컴퓨터를 공부하고 싶었거든요. 영어를 잘하면 컴퓨터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결국 통역과 번역 일을 하게 된 거죠.”
모함마드 씨는 영어 덕분에 아프간에서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었고 또 결국엔 이렇게 미국에까지 오게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영어를 잘했기 때문에 미국 이민에 대한 기대가 더 컸고, 이로 인해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녹취: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 가족이 이렇게 특별 비자를 받아 미국에 올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고,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통역사 출신들은 미국에 와서 일자리를 찾으면서 일종의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 것 같아요. 통역사들은 일단 영어를 잘하니까 미국에 오면 아무래도 좋은 직업을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게 되죠. 하지만 직장을 찾는 데 있어서는 미국 정부 차원의 도움이 전혀 없으니까요.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또 영어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서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모함마드 씨, 그렇다면 혹시 미국에 온 것을 후회하고 있진 않을까요?
[녹취: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아니요,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미국에 온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기대했던 것에 아직 오르지 못한 거지요. 저는 앞으로 이룰 목표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요. 또 꼭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미국 생활 3년, 아직은 미국에서의 살아갈 날이 훨씬 더 길기에 모함마드 씨는 매일 자신의 꿈과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고 합니다.
[녹취: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저의 목표는 공부를 계속하는 겁니다. 대학에 진학해서 과학 기술 분야를 전공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렇게 식당이나 푸드트럭이 아닌 제가 꿈꿔왔던 컴퓨터 관련 사무직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아프간에서 연합군과 아프간 군인을 위해 8년간 일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아주 민감하고도 중요한 일을 했죠. 미국에서도 언젠가 그런 의미 있을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제 꿈을 펼치기 시작했으니까 열심히 달려나가야죠.”
네, 미국에 정착한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통역사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씨의 두 번째 이야기와 함께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또 다른 난민의 아메리칸 드림을 들어보려고 하는데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김현숙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