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법원이 탈북 고아 자매에게 처음으로 후견인 지정을 승인했습니다. 이에 따라 자매는 정착지원시설 퇴소 후 쉼터나 기숙형 학교 등 보호시설이 아닌 후견인 가정에서 살게 됐습니다. 서울에서 김현진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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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탈북 청소년 정지혜 (가명, 16살) 양] “그냥 매일 매일 하루 사는 게 재밌어요. 기운이 없다가도, 아무리 기분이 안 좋다가도 엄마만 오게 되면 기분이 좋아져요…”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좋다는 두 자매.
한국에 정착한 미성년 탈북 자매 정지혜와 지연 양은 한국에서 만난 후견인 엄마 가정에서 함께 지낼 수 있게 돼 기쁘고 맘이 편하다고 말합니다.
[녹취: 탈북 청소년 정지혜 (가명, 16살) 양] “후견인 받기 전에는 선생님들도, 아직 후견인 아니지 않냐고 막 그랬는데요, 후견인 되고 나서는 그러지 못했어요.”
한국 대전가정법원 천안지원은 지난달 탈북 자매의 언니인 탈북민 정모 씨가 낸 ‘미성년 후견인 선임’ 요청을 받아들인다고 판결했습니다.
직계가족을 동반하지 않고 한국에 입국한 `무연고 탈북 청소년'이 후견인을 지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양강도가 고향인 세 자매와 친어머니는 지난 2016년 10월 탈북했습니다. 이들은 중국의 한 벌목장에서 은신하며 지내던 중 어머니는 중국 공안에 체포됐고, 자매는 장기밀매범들에게 납치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탈북민 구호단체인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가 자매들을 구출했고, 구금 중이던 자매의 어머니는 김 목사에게 딸들을 잘 키워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녹취: 김성은 목사] “어머니가 우리 딸들이 나보다는 목사님 아빠, 엄마로 살아가는 게 자기는 더 행복하다, 정말 펑펑 울었어요 아이들이 먼저 한국에 도착했을 때…”
무사히 한국에 들어와 하나원에 들어간 자매들은 지난해 5월 퇴소했습니다.
퇴소 후 자신들이 부모로 생각하는 김성은 목사 가정에서 살고 싶다고 하나원 측에 밝혔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무연고 탈북 청소년은 하나원을 나오면 기숙학교나 쉼터 등 보호시설로 가야 한다는 게 하나원 측의 입장이었습니다.
[녹취: 김성은 목사] “고아고 목사님이 데려온 것은 맞지만 이들이 한국에 들어온 이후부터는 권한이 국가에 있다는 거에요. 법은 이 아이들이 무연고이기 때문에 시설로 가야 한다는 겁니다. 앞서 세 차례 아이들을 데리고 왔는데, 저를 아버지로 여기고 많이 따랐는데 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김 목사는 결국 변호사를 선임했고, 이 과정에서 아이들을 입양하거나 후견인으로 신청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녹취: 김성은 목사] “세상에, 통일부 업무지침에 네가지가 나와 있던 거에요. 시설로 보낼 수 있고, 입양할 수 있고, 위탁가정이 될 수 있고, 후견인이 될 수 있고, 그런데 정부는 지금까지 나한테 시설로 가는 방법 밖에 없다고 얘기한 거에요.”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탈북 무연고 청소년 정착지침에 따라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습니다. “무연고 청소년과 관련해서는 퇴소할 때마다 무연고 청소년 지원 협의회를 개최해, 어디로 보낼지 결정한다”는 겁니다.
이어 “갈렙선교회의 경우 처음에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며 개인으로 보내는 경우는 “사후 파악이 어려워 우선 법적으로 인정되는 단체를 선정해 보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후견인 신청을 할 경우 법원 신청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고 이 관계자는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김 목사는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와 법원에 각각 가정위탁과 후견인 신청을 냈고, 5~6개월 재판 과정 끝에 후견인 인정을 받게 된 겁니다.
법원은 김 목사의 부인인 박 에스더 목사를 후견인으로 결정했습니다. 탈북자 출신인 박 에스더 목사는 아이들을 잘 이해하고 돌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 에스더 목사] “처음되서 좀 떨리기는 하지만 친 엄마 만큼 사랑해준다는 보장은 없어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자신은 있는 것 같아요. 같은 북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서로 문화적이나 취향들이 거의 같기 때문에 잘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이 있고, 아이들이 워낙 착하고 바르게 컸어요.”
통일부는 무연고 탈북 미성년 후견인 선임 절차가 법원에서 진행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사건 소송대리인인 이혜선 변호사는 ‘VOA’에, 이번 판결로 무연고 탈북 청소년들이 자유 의지에 따라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밝혔습니다.
[녹취: 이혜선 변호사]
김성은 목사는 이번 판결로 다음 번에 북한 아이들이 들어올 때는 이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성은 목사] “많은 분들이 저한테 문의를 했어요. 북한에 아동들, 같은 민족이니까 입양해서 잘 키우고 싶다. 이런 문의를 많이 받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번 계기로 정부가 미미한 부분들을 개선해 나가길 바랍니다.”
지연 양은 앞으로 소망을 이렇게 말합니다.
[녹취: 정지연 양] “그냥 목사님이랑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행복하지만..”
지혜, 지연 자매는 자신들이 원하는 후견인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많은 다른 무연고 탈북 청소년들은 하나원 퇴소 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일부는 보호시설에서 이탈하거나 아는 사람 집으로 거처를 옮기는 등 유랑생활을 하거나, 20세가 지나 독립해도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일부가 관리하고 있는 무연고 탈북 청소년은 지난해 12월 현재 96명에 달합니다.
VOA 뉴스 김현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