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대화 중 핵·미사일 시험 등 전략 도발을 유예하겠다고 밝힌 것은 긍정적인 움직임이라고 미 전문가들이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비핵화 전제 조건으로 내세운 것들이 과거와 다르지 않다며 비핵화 의지에 관한 진정성에 의구심을 나타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
미 전문가들은 비핵화 의지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밝혔다는 한국 특사단의 발표를 일단 긍정적인 진전으로 평가했습니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는 “이번 합의에 놀랐다”며 긍정적인 움직임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아인혼 전 특보]“I was surprised by it. I think it’s a positive step. But…”
특히 대화를 지속하는 동안 추가 핵과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등 전략 도발을 유예하겠다고 밝힌 것은 가장 긍정적인 성과란 겁니다.
아인혼 전 특보는 그러나 북한 정권이 진정으로 비핵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는 어떤 확신도 이번 발표에서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핵 포기 조건으로 내세우는 미국의 적대주의 정책 철회를 다시 반복하고 있고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국 특사단은 앞서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밝혔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북한 정권의 이런 입장은 과거에도 많이 듣던 소리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아인혼 전 특보]“We hear this very often. From North Korea, we’ve heard many times over the years and we have asked North Koreans…”
북한 정권은 미국이 주한미군과 미-한 안보동맹조약, 한국과 일본에 대한 핵우산 정책을 제거하면 그제야 안전을 더 체감하고 비핵화를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반복했다는 겁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그러나 이번 남북 대화를 통해 미-북 간 탐색적 대화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대화에 여전히 의구심이 많지만, 비핵화에 관한 평양의 입장과 의도, 준비 자세, 공통분모가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핵화 의제를 절대로 테이블 위에 올리지 않겠다던 북한 정권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에 대해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압박 캠페인이 작동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풀이했습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는 북한 정권이 비핵화에 진정성을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미-한 동맹의 균열을 노리는 것인지 판단이 힘들지만, 분명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제재 압박을 완화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버시바우 전 대사] “certainly, to relieve pressure of sanction and that’s part of their goals.”
버시바우 전 대사는 그러나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지금까지 행태와 비교하면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핵·미사일 시험을 유예한 것은 주목할 만한 행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아니라 북한 정권으로부터 직접 진정성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인혼 전 특보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압박 캠페인이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김정은의 목표는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압박을 해제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인혼 전 특보는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한 연합군사훈련이 4월부터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나타냈습니다.
[녹취: 아인혼 전 특보]“until now, kim jong-un has said that this joint-drills are prelude to invasion and now he is saying that he understands the need to carry out those drills…”
연합훈련이 북한 침략을 위한 서곡이라고 주장하던 김정은 위원장이 갑자기 훈련의 필요를 이해한다고 말했다는 것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아인혼 전 특보는 한국 정부의 발표가 정확했기를 바란다며 김정은 위원장이 더 이상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이는 좋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든 창 변호사도 한국 정부가 아니라 북한 정부로부터 입장을 직접 듣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고든 창 변호사]“I’m not so sure this is what North Koreans actually said to the South Koreans…”
특히 북한이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약했다는 한국의 발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원하는 것으로 북한이 실제로 그런 말을 한국 특사단에 했는지 확신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창 변호사는 그러면서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의식해 북한이 현 동력 유지를 위해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미 전문가들은 북한 정권의 비핵화 의도에 많은 의구심을 나타내면서도 이번 남북 합의로 미-북 대화의 문턱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패트릭 크로닌 신안보센터(CNAS) 아시야태평양 안보소장은 미-북 탐색적 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북한 정권의 의도를 시험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녹취: 크로닌 소장] “I think this is about testing those intentions and testing them way of…”
북한이 미-한 동맹을 균열시키는 게 아니라 동등하게 대화 상대로 마주하는지를 시험할 좋은 기회이며 어디까지 비핵화 협상을 할 수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아인혼 전 특보는 김정은 위원장이 미-한 합동군사훈련의 연기 혹은 최대 압박 수위를 낮춰야 미국과 대화할 수 있다는 요구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북 간 탐색적 대화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습니다.
아인혼 전 특보 등 전문가들은 그러나 과거에도 이런 상황을 겪어봤기 때문에 너무 흥분하거나 낙관하지 말아야 한다며 차분하게 한 걸음씩 북한 정권의 의도를 확인하며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