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8년째 이어지는 천안함 진실 공방...유족들 “상처 그만 받고 싶어”

천안함 승조원이었던 故 안동엽 병장 부친 안시영 씨가 25일 VOA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지 오늘(26일)로 8년이 됐습니다. 북한 소행 여부를 놓고 재조사를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유족과 생존 장병들은 이런 논란 자체가 또 다른 상처가 된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함지하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천안함 승조원이었던 아들 고 안동엽 병장을 잃은 안시영 씨는 여전히 후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녹취: 안시영 씨] “해군보다는 육군이 두 발이 땅에 닿고.. 해군 저 정말 반대했어요.”

'제 8주기 천안함 용사 추모식' 행사를 하루 앞둔 25일 'VOA'와 만난 안 씨는 아들이 떠난 지 8년이 지났지만 그 때의 고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의 해군 입대를 끝까지 반대하지 못한 게 후회로 남아있다는 겁니다.

안 병장이 떠날 당시 나이는 23살. 해군 입대 약 1년 만이었습니다.

[녹취: 안시영 씨] “시간이 갈수록 더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옛 사람들이 얘기하기를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살다 보니까 아, 그래서 부모들이 이런 말들을 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안 씨는 최근 삶 속에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천안함 사건이 정치 논리와 이념에 의해 흔들리면서부터입니다. 자칫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아들의 명예가 실추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실제로 안 씨를 비롯한 천안함 유족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최근 한국을 방문한 건 그 중 하나입니다.

유족들은 한국 정부에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한에 대한 공식 해명을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받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천안함 사건 재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최근 높아진 점도 유족들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출범한 '천안함 사건 진실규명 범시민사회공동대책 협의회'는 천안함 사건의 진실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국정조사와 관련자 처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의혹’을 규명할 특별조사위원회 설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2일 한국 청와대에는 '천안함 침몰 사고 재조사 청원'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청원은 '과연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에 의한 것이냐'고 반문하면서, '단 하나라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청원은 7만2천50명이 참여했지만, 청와대의 공식 답변을 필요로 하는 20만 명에는 미치지 못한 채 24일 마감됐습니다.

한국 정부는 천안함 침몰 직후 민군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침몰 원인에 대한 분석에 나섰습니다.

합동조사단은 민간 전문가 25명과 군측 22명, 국회 추천 전문위원 3명으로 구성됐습니다. 여기에 미국과 호주, 영국 스웨덴 4개국 전문가들도 합류해 국제적 신뢰도를 높이려 노력했습니다.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공동단장을 맡았던 박정이 동국대학교 석좌교수가 26일 VOA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당시 합동조사단 공동단장을 맡았던 박정이 동국대학교 석좌교수(예비역 대장)는 26일 'VOA'와 만나, 이런 과정을 통해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냈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정이 교수] “조사 결과에 대한 것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미국 조사단 등 4개국 조사단이 왔지만 항시 그 분들과 만나면서 브레인스토밍을 했고, 4개 분과장들과 계속 토의를 해서… 내용에 있어서 합의점에 이르지 못하면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는 접근 방법으로 하나씩 하나씩 원인을 규명해 나갔거든요.”

박 교수는 외국의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객관적인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게 될 뿐이라는 겁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합동조사단은 인양한 천안함 함미와 함수에 대한 현장과 시뮬레이션 조사 등을 통해 내부 폭발이나 좌초, 피로 파괴 가능성은 낮지만 수중 폭발의 버블효과와 충격파에 의해 선체가 절단됐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후 쌍끌이 어선을 통해 건져 올린 어뢰추진 동력장치에서 추가 증거를 확보하고, 생존자와 초병 진술을 통해 어뢰의 수중 폭발을 최종 확인했다고 박 교수는 밝혔습니다.

전준영 당시 천안함 갑판병.

당시 천안함 갑판병이었던 전준영 천안함 예비역 전우회장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녹취: 전준영 전우회장] “좌초는요, 어디에 암초에 걸려 좌초한 겁니다. 좌초했다면 우리는 46명이 전사하지 않고, 더 많은 인원이 살아남았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느꼈을 땐 좌초처럼 천천히 가라앉는 게 아니라 순식간에 엎어졌고 물이 막 들어왔던 기억이 있거든요. 소리도 엄청나게 큰 쾅 소리를 들었고, 배가 붕 뜨면서 가라앉았었고요. 좌초에 대해 들을 때가 화가 많이 나고. 좌초였다면 제대하고서도 말할 수 있는 환경인데 굳이 숨길 이유도 없고요.”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곳에서 천안함의 진실을 목격했던 유가족들도 북한의 소행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안 씨입니다.

[녹취: 안시영 씨] “그 당시에 암초에 부딪혀서 배가 갈라졌다는 둥, 잠수함이 지나가다가 배를 박았다는 둥 이런 말을 많이 했잖아요. 근데 우리가 2함대사령부에 들어와 있는 천안함을 매년 보잖아요. 밑에서 치는 힘에 의해서 다 꺾여 있어요. 꼭대기 연통은 날아가 버리고… 그 겉을 싼 쇠가 굉장히 두껍더라고요. 그게 휠 정도니까...”

유가족들은 정치적 논리에 따라 이미 결론이 난 천안함 조사가 또 다시 논란거리로 부각된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고 이상희 하사의 아버지 이성우 천안함 유족회장은 남북 화해 분위기가 높아가면서 천안함 희생자 가족들의 소외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성우 회장] “대통령께서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라는 입장 표명을 분명히 국민들에게 밝혀주신다면 이런 남남 갈등은 없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회장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천안함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천안함에 대해 사과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달라는 겁니다.

안 씨 역시 최근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에 반대하진 않지만, 적어도 천안함 문제만큼은 명확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안시영 씨] “앞으로 우리가 언젠가 죽을 거 아니에요. 조금 있으면 죽을 거에요. 제가 67이니까. 20년 안에 죽겠죠. 제가 죽으면 그 때 이게 어떻게 판정될까 저는 궁금해요. 나라가 어떻게 변해서 어떤 판정을 내릴까 궁금해요.”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