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동서남북] 북한 ‘비핵화’ 언급 않는 까닭은? 김정은에게 "정치적 다이너마이트"

  • 최원기

지난 3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연설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오는 27일 판문점에서 한국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5월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비핵화 문제를 논의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아직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고 있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무력 충돌로 치닫던 한반도 핵 위기에 돌파구가 마련된 것은 지난달 5일이었습니다.

당시 평양을 방문한 한국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한반도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발언을 끌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입니다.

[녹취: 정의용] “북측은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용의를 표명하였습니다.”

북한이 비핵화 용의를 밝히면서 한반도 정세는 급반전을 시작했습니다. 남북한은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5월 중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의용 실장이 지난달 8일 백악관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녹취: 정의용]President Trump appreciate the briefing and said to see Kim Jung-un by May…

그로부터 한 달 간 한반도에는 많은 일이 진행됐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3월27일 베이징을 전격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고, 한국의 유명 가수들과 태권도시범단의 평양 공연이 열렸습니다.

주목되는 것은 북한 당국자나 관영매체가 지난 한 달 간 단 한 번도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실제로 지난달 6일자 `노동신문'은 1면에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 특사단을 접견한 기사와 사진을 게재하면서 “수뇌 상봉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전해 듣고 만족한 합의를 봤다”고 전하면서도, 비핵화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정의용 실장의 발표도 남북 공동성명이 아니라 북측의 말을 정리한 ‘언론발표문’이었습니다.

지난 3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베이징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또 지난달 27일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습니다. 중국 관영매체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남한과 미국이 평화 실현을 위해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취하면서 우리의 노력에 선의로 응답하고, 평화와 안전의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는 중국 관영매체의 전언일 뿐 북한 언론 어디에서도 비핵화에 관한 언급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의 보도입니다.

[녹취: 중방]”첫 외국 방문의 발걸음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가 된 것은 너무도 마땅한 것이며, 이는 조-중 친선을 대를 이어 목숨처럼 귀중히 여기고 이어나가야 할 자신의 숭고한 의무로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북한의 이런 입장은 지난달 29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고위급 회담에서도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이날 한국의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북한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은 판문점 통일각에서 정상회담 의제와 날짜를 논의했지만 끝내 ‘비핵화’를 의제로 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한국 조명균 통일부 장관입니다.

[녹취: 조명균]“ 정상회담 의제에 대해서 양측 간에 충분한 의견 교환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런 것들은 정상 간 논의될 사안이기 때문에 저희가 시간을 갖고 충분히 협의해…”

한국의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 당국이 지난 한 달 간 단 한번도 자신의 입으로 ‘비핵화’를 언급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강인덕] “단 한 번도 북한은 지난 한 달 간 비핵화를 특히 김정은 위원장 입으로 말한 적이 없죠.”

북한이 이처럼 비핵화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두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 내부정치적 요인으로 최고 지도자가 비핵화를 언급하기 곤란하다는 겁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동안 ‘핵-경제 병진 노선’에 따라 핵과 미사일 개발에 주력해 지난해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습니다. 또 2012년에는 헌법에 핵 보유국을 명시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 지도자가 비핵화를 하겠다는 것은 정치적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워싱턴의 북한 전문가인 미 해군분석센터의 켄 고스 국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켄 고스] “Political dynamite…”

또 다른 해석은 북한이 앞으로 열릴 미국과의 핵 협상을 염두에 두고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강인덕 전 장관은 미국이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 등 구체적인 보상책을 내놓을 때까지 북한은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강인덕]”군사적 위협이 없어지고, 북한의 안전보장이 확보된다면, 이 두 가지 조건에 대한 답이 있어야 북한이 얘기하겠죠, 그 때까지는 입을 봉하고 있는 거죠, 회담장에서 자신들의 본심을 얘기하면 되니까.”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서만 언급을 꺼리는 것은 아닙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결정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의 공식 매체는 아직 이런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 해군분석센터의 켄 고스 국장은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아직 미-북 정상회담 소식을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켄 고스] "Probabaly that’s true…"

미국과 한국의 전문가들은 오는 11일 평양에서 열릴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과 5월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리는 이 회의에서 핵과 미-북 관계에 대한 중요한 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