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상회담서 납북자 등 언급하면 이미지 개선 도움될 것”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지난달 5일 한국 정부 특사로 방북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납북자 문제 등 인권 문제에 전향적 자세를 보인다면 정상국가 지도자로 인정받는 좋은 출발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와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말했습니다. 납북자 가족들은 VOA에 피해자와 가족 모두 고령이라 시간이 남지 않았다며 남북 정상회담에서 사람을 중시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반드시 이 문제를 제기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002년 10월 일본 도쿄 인근 공항. 일본인 5명이 비행기에서 내린 뒤 가족들을 얼싸안고 눈물을 흘립니다.

[녹취: 흐느끼는 소리와 납북자 카오루 씨 목소리] “(일본어) 부모님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쁩니다”

이들은 모두 1970년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됐던 일본인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와 1차 북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를 시인하고 사과한 뒤 감격의 상봉이 이뤄진 겁니다.

북한이 납치를 시인한 일본인 13명 가운데 사망자 8명을 빼고 5명이 돌아왔고 이후 북한에서 결혼해 낳은 자녀와 배우자도 합류했습니다.

1969년 북한의 대한항공 납치 피해자 황원 씨의 아들인 황인철 씨는 당시 일본인 납북자들의 귀환을 부러움과 고통 속에 바라봤다고 말합니다.

[녹취: 황인철 씨]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너무도 힘들었고 너무나 외로웠고 과연 어떻게 된 건지, 미국이나 일본이 행동으로 직접 그렇게 했을 때 저는 너무 부러운 마음에 국가에 대해 바라는 마음도 있겠지만, 이 문제가 진짜 중요하다는 마음이 드니까 저 스스로라도 하나하나씩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저를 더 자극하게 했고 한편으로 너무도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한국 전쟁 때 아버지가 북한에 납치된 뒤 지금까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이미일 한국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의 마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녹취: 이미일 이사장] “우리나라는 경제만 올인했지 정말 의식과 가치는 일본하고는 차이가 납니다. 뭐가 중요한 건지 사람의 가치라든가 우리가 정말로 나라라면 자기 국민의 소중함을 제일 먼저 앞에다 둬야 하는데 아 그것은 맨 나중에 해야 한다고 합니다. 납북자와 인권 문제, 납북자들의 생사확인과 소식, 근황. 그거라도 좀 알아달라고 호소해도 그것은 맨 마지막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니 언제까지 맨 마지막인가요?”

실제로 이정훈 전 한국 외교부 북한인권협력대사는 납북자에 대한 일본과 한국 정부의 접근이 크게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이정훈 전 대사] "일본 정부는 내각 대신을 임명해서 가토 대신이라고 있지요. 정부 차원에서 경찰과 외교부·법무부 총동원해서 50명이 넘는 인원이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 아주 불철주야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납북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좀 비교가 됩니다.”

일본 정부가 납북자 사안을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일본은 해결되지 않은 납북자 진상규명과 송환을 위해 대북 방송국까지 설립하는 등 나라 안팎에서 전방위적으로 지원 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일 정상회담이 열리면 미국 대통령이 일본인 납북자 가족을 만나 위로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해 일본을 방문해 납북자 가족을 만났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Well, I think it's very sad. I look at what's happened, and it's a very, very sad thing.

트럼프 대통령은 회동 뒤 매우 슬픈 이야기들을 들었다며 납북자들의 귀환을 위해 아베 총리와 매우 긴밀히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10일에는 윌리엄 해거티 일본주재 미국대사가 관저로 일본인 납북자 가족들을 초청해 위로하며 이 문제가 미일 정상회담에서 중요한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27일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국인 납북자 문제가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청와대가 이미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 평화 정착을 최우선 의제로 강조했고,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비롯해 진보 정부의 특성상 북한 정권이 껄끄러워하는 사안은 테이블 위에 올리기 어렵다는 겁니다.

실제로 최근 전시 납북자 단체가 청와대에 민원청원을 했지만, 청와대는 즉답을 피한 채 이 문제를 통일부로 돌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일부는 답변에서 “구체적인 의제는 아직 검토단계이며, 남북 간 논의가 진행 중에 있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습니다.

또 “전시 납북자 문제 해결을 포함해 남북관계 현안들을 앞으로 남북관계가 진전해나가는 과정에서 해결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미일 한국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은 그러나 이런 답변은 “옛날부터 듣던 똑같은 대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생존한 납북인사 가족들이 모두 노령이라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가족의 생사확인과 북한의 사과를 받을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미일 이사장] “정상회담에서 의제로 해서 얘기를 해야죠. 저희는 일단 전쟁 납북자에 대한 북한 정권의 인정과 시인. 시인이 가장 첫 단계라고 생각해요. 시인하고 사과하는 것. 북한 정권에 반드시 우리가 먼저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제 더 하겠어요. 저는 이번이 거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들의 연세가 다 많으시잖아요.”

한국 통일부는 올해 통일백서에서 한국전쟁 중 북한에 납치된 한국인은 10만여 명, 전후 납북자는 3천 835명이며 이 가운데 3천 319명이 귀환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말 현재 돌아오지 못한 전후 납북자는 516명, 이중 어선 납북자 457명, 대한항공(KAL) 납치 11명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또 2013년 김정욱 선교사에 이어 2014년 김국기 선교사, 최춘길 씨가 억류돼 있고 한국에 정착했던 탈북민 3명도 납치돼 북한에 억류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납치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납치자들을 “자발적으로 북한에 온 용감한 영웅들”로 묘사하고 있다고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 최종 보고서는 지적합니다.

위원회는 특히 북한에 납치돼 강제실종 된 한국인과 외국인이 1950년 이후 2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며 피해자 거의 전원이 실종 상태로 남아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들과 가족에 대한 인권 침해는 지속되고 있고 이로 인한 충격과 고통은 형언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북한 정권의 이런 납치 행위는 과거 북한에 납치됐던 유명 배우 최은희 씨가 최근 사망하면서 새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최 씨가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할 때 몰래 녹취한 테이프에 최 씨와 남편 신상옥 감독의 납치를 자신이 직접 지시했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목소리가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녹취: 다큐멘터리 ‘연인과 독재자’ 중 최은희씨] “우리가 아무리 자유 세계로 가서 변명하고 얘기해도 누가 우리 진실을 알아주겠냐 그러니까 녹음을 하자” [김정일 위원장] “두 분이 꼭 필요하니까 데려와라.”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의 열악한 영화 제작 환경을 지적하며 “신 감독을 유인하려면 뭐가 필요한가?” 등 납치를 자신이 지시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최은희 씨 부부는 다행히 유럽에서 탈출에 성공했지만, 아직도 많은 납북자는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는 보고서에서 이런 납치와 강제실종은 반인도적 범죄의 일환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정권은 “납치됐거나 강제실종된 사람들의 가족, 출신국에 이들의 생사와 소재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생존자와 이들의 자손이 즉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상국가 지도자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바람이 강한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 납북자와 인권 문제는 가장 매력적인 사안이라고 지적합니다.

한국 이화여대 북한학과 김석향 교수는 김 위원장이 고모부와 이복형을 살해하는 등 잔인한 지도자란 인상이 국제사회에 만연돼 있다며, “정상회담을 통해 인간을 존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석향 교수] “정상적인 국가의 지도자가 되고 싶으니 그래 우리가 그때는 어떤 목적에 의해 데려왔는데 그게 적어도 수단적으로는 옳은 방법이 아니었다. 함부로 납치하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자제하고 방향을 틀어서 공존, 인권을 존중하는 지도자가 돼 보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 교수는 이어 납북자 사안의 범위가 상당히 광범위한 만큼 상징적 차원에서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인들과 1969년 대한항공 납치 문제부터 정상회담에서 제기하는 게 바람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살 때 아버지가 북한에 납치된 뒤 거의 50년째 보지 못 하고 있는 황인철 “대한항공기 납치피해자 송환을 위한 대책협의회’ 대표는 제3국에서라도 아버지를 만날 수 있도록 남북한 정상이 노력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황인철 대표] “제 아버지가 평성시에 살아 계시다는 게 나타났고 제3국에서의 상봉 계획을 국제사회에 호소했는데 정작 (한국) 정부는 단 한마디로 이것에 대해 문의한 것도 없고 관심조차 두지 않는 상황인데요. 반드시 아버지와 저희 가족이 최소한 제3국에서 상봉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국민에게 해 주셔야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