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반도 분단으로 잊힌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쟁 포로와 납북자 문제인데요. 한국에 사는 전쟁 귀환 포로들은 한국 정부가 미국에 비해 전쟁 포로와 실종자 송환 의지가 적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에 있는 전우 한 사람이라도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015년 가을 워싱턴 인근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
낙엽이 수북이 쌓인 가로수 사이로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탄약 마차가 나타납니다. 마차 안에는 성조기로 덮인 관이 보입니다.
마차가 도착하자 미 의장대와 군악대의 북소리가 이어지고 3발의 예포, 이어 트럼펫 연주가 엄숙하게 묘지에 울려 퍼집니다.
[녹취: 예포 소리와 트럼펫 연주 소리]
6·25 한국전쟁 중 실종됐다 65년 만에 신원이 확인된 로버트 마이어스 상병의 안장식.
미 국방부는 이렇게 전쟁에서 포로가 됐거나 실종된 미군을 끝까지 찾아내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을 사명이자 중요한 임무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신은 결코 잊히지 않았다”는 구호 아래 해마다 9월 19일을 ‘전쟁포로 실종자의 날’로 정해 대규모 기념식을 하고 가족들을 초청해 다양한 위로 행사도 갖습니다.
이런 전통에 대해 한국전쟁유업재단 이사장인 한종우 미 시러큐스대 교수는 국가와 군인들 간의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녹취: 한종우 교수] “유종의 미를 맺는 것이 상당히 참 잘 돼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소홀히 한다면 어느 누가 언제 어디서든지 전쟁을 해야 하는 미 국가적 현실에 부응해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까? 희생하지 않겠죠. 그런 면에서 국가와 군인들 간에 신뢰 관계가 상당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교수는 그런 차원에서 27일 열릴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한국군(국군) 포로 문제도 제기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한종우 교수] “이 정상회담이 굉장히 중요하고 이를 통해 저희들이 얻을 수 있는 게 많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 국군들 유해라든가 송환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전초가 마련되는 것이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분명히 그런 부분들을 얘기하실 것으로 믿고 있고 또 정상회담의 성공을 통해서 그런 부분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한 국가라면 국가에 속한 국민들이 실종되거나 전사하거나 이런 분들의 유해를 정확하게 반환 받아야 하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보고를 보면 한국군 실종자는 8만 2천여 명에 달합니다. 하지만 휴전 때 포로 교환으로 돌아온 군인은 불과 8천 3백여 명. 남은 한국군 포로들은 대부분 탄광 등 열악한 지역으로 배치돼 적대계층으로 살다가 숨졌습니다.
한국 국방부는 국군 포로들이 대부분 노령으로 숨졌고 500여 명이 남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1994년에 북한을 탈출해 복귀한 조창호 씨를 시작으로 모두 80명이 자력으로 입국했지만, 51명이 숨지고 현재 29명만이 생존해 있습니다.
북한에서 47년을 보낸 뒤 지난 2000년 한국으로 복귀한 유영복 전 귀환국군용사회장은 16일 VOA에 전쟁 포로에 대한 미국과 한국 정부의 태도는 크게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유영복 전 회장] “대조적이죠. 미국에서는 유해까지 찾아오려고 노력하지만, 여기는 살아있는 국군포로들도 중국까지 왔던 분들도 데려오지 못해 도로 북송된 경우도 있었잖아요. 그런 의지도 보이지 않고 어느 분도 그 문제에 대해 적극 나서는 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28일 미리 열렸던 국군의 날 행사에서 별도로 유영복 회장 등 전 한국군 포로 8명을 잠시 만났었습니다.
한국 국방부는 당시 문 대통령이 국가에 대한 이들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며 국군 용사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예우를 다해 용사와 가족의 안정적인 국내 정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다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는 그러나 북한에 남아있는 전쟁 포로나 유해 송환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대선 공약에서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송환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자세한 해법은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에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서도 “이산가족·국군포로·납북자 문제의 근본적 해결 추진”,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는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한 다양한 해결책을 마련”하겠다는 기존의 원칙만 되풀이했습니다.
국회의원을 지낸 박선영 물망초재단 이사장은 한국군 포로 문제가 국제법 위반이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녹취: 박선영 이사장] “[녹취: 박선영 전 의원] “국군포로와 전시 납북자 문제는 국제법 위반 사항입니다. 둘 다 제네바협약 위반이구요. 전쟁범죄이기 때문에 시효가 없습니다. 시효가 없다는 것은 행위자가 죽었던지 살았던지 간에 그 문제가 지속되는 한 우리는 국제법에 따라 이 문제를 풀 의무가 있고 권리도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도 최종보고서에서 한국군 포로 문제를 제기하며 이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국제인도법은 적대 행위 뒤 전쟁포로를 바로 석방하고 송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런 국제법상 의무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은 수많은 한국군 포로를 송환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추후 송환 가능성에 대해서도 분명히 제시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위원회는 특히 과거 북한과 소련, 중공 지도자들이 나눈 대화 기록을 지적하며 김일성이 한국군 포로를 송환하지 않고 조선인민군 부대에 강제 편입해 존재와 행방을 감췄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북한에 남겨진 한국군 포로들은 본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가장 극심한 차별 대상 가운데 하나로 차별과 멸시를 받았다고 귀환 용사들의 증언을 통해 밝혔습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한국군 전쟁 포로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어 남북한 사이에 협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 전쟁 때 사망한 쌍방 군인들의 유해 발굴과 송환에 관해서만 과거 협의가 있었습니다.
유영복 전 회장은 한국에서 일제 강점기 위안부 문제는 국가적 사안으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국군 포로는 정부조차 의지가 없어 보인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녹취: 유영복 전 회장] “대응하는 의지가 좀 보이지 않아요. 그저 우리가 제기하면 그저 그런가 하는 정도이지. 솔직히 위안부 할머니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강력히 제기하지만, 국군 포로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의지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미 하원은 지난 2011년 북한에 한국전쟁 포로와 실종자·납북자의 송환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한국 국회도 지난 2013년 정전 60주년을 맞아 국군포로를 조속히 송환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자력으로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귀환한 국군 포로와 가족들에게 별도로 특별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이란 우선순위에 밀려 한국군 포로나 유해 송환에 대해서는 공개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영복 전 회장은 귀환국군용사회가 청와대에 남북 정상회담에서 국군포로 문제를 제기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에 남아있는 한 사람이라도 데려왔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유영복 전 회장] “이번에 정상회담이 열리면 국군포로가 몇 명이 살아있는지는 몰라도 이런 문제를 제기해서 다만 한 사람이라도 데려왔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죠. 김정은에게는 왜 국군포로들을 부려먹을 대로 다 부려먹고 이제는 정말 폐인이 되다시피 한 분들을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