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가 ‘해빙’ 분위기를 맞으면서 주한미군의 성격과 규모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 거듭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평화체제 논의와 맞물려 주한미군의 정당성 여부가 제기되고, 워싱턴에선 주한미군 감축 혹은 철수를 시사하는 듯한 고위 당국자의 발언이 잇따르고 있는데요. 주한미군 논란, 각 계기마다 어떤 논리로 이어지고 있는지 안소영 기자가 정리해봤습니다.
한동안 금기어로 간주됐던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철수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였습니다.
[녹취: 트럼프 당시 공화당 경선 후보] “Good luck, folks! Enjoy yourself. If they (North Korea, South Korea) fight, that will be terrible, right? But if they do, they do.”
공화당 경선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그 해 4월, 미군을 한국에 주둔시켜 많은 돈을 잃을 수 없다면서, 남북한이 전쟁을 벌이면 끔찍한 일이 되겠지만 두 나라의 일이라며 미군 철수를 시사했습니다.
주한미군 카드는 일회성 발언으로 끝나지 않고 선거 유세 기간 내내 이어졌습니다.
[녹취: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 “They have to defend themselves, against North Korea, we have a maniac over there, so if they don’t take care of us properly, you know what’s going to happen? Very simple! They have to do it by themselves.”
트럼프 당시 후보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주한미군 비용을 충분히 지불하지 않고 있다면서 미국을 잘 대하지 않으면 ‘미치광이’가 있는 북한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위협이 거세지고 동맹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잠시 가라앉는 듯했던 주한미군 논란은 지난해 7월28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 시험 발사 이후 워싱턴 정가에서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한 이른바 ‘미-중 빅딜’을 제시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
중국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 개발 동결에 협력한다면 중국이 원하는 주한미군 철수를 외교적 거래로 고려해야 한다는 제안이었습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당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게도 이 같은 조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같은 시기 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카드로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한 스티브 배넌 당시 백악관 수석전략가의 발언도 크게 주목 받았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주한미군의 변화 가능성이 다시 고개를 든 데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병력 감축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가 크게 일조했습니다.
미 국방부가 즉각 부인하고,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그런 지시는 없었다고 확인했지만,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직전 발언과 맞물려 일회성 논란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앞서 매티스 국방장관은 지난달 27일 주한미군 문제는 동맹국과 먼저 협의해야 사안의 일부이고, 북한과도 논의할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매티스 장관] "That’s part of the issues that we’ll be discussing in the negotiations with our allies, first and of course with North Korea. So I think for right now we have to go along with the process, have the negotiations, not try to make preconditions or presumptions of how it’s going to go…the diplomats are going to have to go to work now."
매티스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조건으로 주한미군 감축을 제안할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은 것이라는 해석을 낳기도 했습니다.
같은 날 미국 육군지 '아미 타임스'도 '우리는 잔류할 것인가, 떠날 것인가?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시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근 이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6일에는 맥 손베리 미국 하원 군사위원장이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발적이고 영구적이며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면 주한미군 축소를 이야기해볼 수 있다는 뜻을 밝혀 미 정부의 조기 진화에도 ‘주한미군 감축, 철수론’이 수그러들지 않았음을 시사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올해 안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판문점 선언’ 발표 후 주한미군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 올랐다는 분석입니다.
데이비드 맥스웰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입니다.
[녹취: 맥스웰 선임 연구원] “I think Moon Jung In’s foreign affairs articles on Monday is maybe the catalyst for this. He said that if there’s a peace treaty then US forces’ presence is irrelevant, and the Blue House asked him to stop commenting on it so it wouldn’t cause the confusion.”
주한미군 특수작전 사령부 대령 출신인 맥스웰 연구원은 지난 4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군 주둔의 정당성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외교전문지 기고문이 미군 축소 논란의 촉매제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논란이 이어지자 청와대는 곧바로 진화에 나섰습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입니다.
[녹취: 청와대 대변인]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이다.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권 일각에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역할과 성격은 당연히 재검토되는 것이라며 ‘감축론’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맥스웰 연구원은 그러나 주한미군 감축 문제는 협상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맥스웰 연구원] “The importance of US troops contribute to not only the defense South Korea, but also regional stability in Northeast Asia, because we have to keep in mind that any kind of security situation happens in Korean Peninsula it is going to have a global effects.
미군의 중요성은 한국 방어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안정에도 영향을 끼치며,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어떤 종류의 안보 상황도 세계적 파장을 일으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맥스웰 연구원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방위비분담액 증액을 관철시키기 위해 미군 철수론을 제기한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맬스웰 연구원] “Leader can change his views, when he has more information. I think it’s important to emphasize that South Korea pays at least 46% of stationing cost of US forces in Korea, so if we withdrew US forces from Korea and return them to US, we will be paying full costs.”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46%를 부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면 미국은 결국 모든 비용을 책임져야 하며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잘 알고 있다는 겁니다.
맥스웰 연구원은 지도자는 이처럼 더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면 견해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6.25 전쟁 직후 32만 5천명이던 주한 미군은 그 동안 여섯 차례 감축을 통해 현재 2만 8천5백 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