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이 베트남식 개혁·개방 모델을 채택할지에 대해 미 경제 전문가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북한이 시장 경제 노선을 채택하려는 어떤 움직임도 없고 베트남과 달리 개인의 절대 권력 약화에 대한 우려도 있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
마이크 폼페오 장관은 지난 7일 베트남에서 재계 인사들을 만나 북한 최고 수뇌부에 사실상 베트남식 경제 번영의 길을 갈 것을 공개적으로 제안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기회를 잡는다면 북한도 베트남의 경제 기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믿음이라며 거듭 비핵화 결단과 변화 노선을 촉구한 겁니다.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립 샌디에이고 대학의 스테판 해거드 교수는 9일 VOA에 베트남식 개혁·개방 노선을 따르는 것은 북한에 상당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헤거드 교수] “I think it is quite possible for North Korea to follow an economic model like Vietnam’s; indeed, it is more plausible than following the China model because China is such a large economy.
방대한 규모의 중국식 경제 모델을 따르는 것보다는 베트남식 모델이 더 북한에 적합하다는 겁니다.
또 북한은 베트남처럼 역동적인 지역에서 전략적 위치를 점하고 있고 공산당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면서 개혁·개방을 통해 발전한 것도 북한 정부에 매력적이란 겁니다.
헤거드 교수는 그러나 차이점도 적지 않다며 분단국가로 이념적 도전들이 있는 게 주요 걸림돌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습니다.
[헤거드 교수] The main difference is that since North Korea is part of a divided country, there are ideological challenges in pursuing this course. Note that Vietnam only launched its reforms once the country was unified.
게다가 베트남이 통일을 이룬 후에야 개혁을 시작한 것도 지금의 북한과 큰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사회주의 노선을 밟은 뒤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가운데 하나였던 베트남은 1986년 도이머이로 불리는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한 뒤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습니다.
베트남 전쟁으로 적대국이었던 미국과 관계를 트고 1995년에 국교를 정상화했으며 대대적인 투자 유치와 국제기구 가입을 통해 해마다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베트남의 2017년 국내총생산(GDP)은 2천 223억 달러로 세계 45위, 1인당 GDP는 2천 343달러, 외국인들의 직접 투자는 175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베트남과 달리 봉건적인 3대 세습과 체제 안정, 핵 개발에 주력하면서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베트남식 개혁 모델이 북한에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I know they have been studying, I mean they’ve been on various trips Vietnam over the years. The Vietnam model is not new to them…”
북한은 베트남과 잦은 교류와 대화, 행사들을 통해 베트남의 경험을 듣고 공부해 왔다는 겁니다.
하지만 북한과 베트남은 경제와 정치 구조에서부터 대외 관계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커 이를 그대로 북한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뱁슨 전 고문은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핵심은 베트남과 중국이 모두 사회주의에 기반한 시장 경제 노선을 공식적으로 채택해 국제사회와 수월하게 협상했던 반면 북한 정부는 전혀 그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게 중요한 차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They never say publicly that they really brace the idea of becoming a market economy, the way that both China and Vietnam….”
뱁슨 전 고문은 북한 정부가 이런 시장 지향적 개혁 노선을 정책적으로 채택하지 않고 있고 국제통화기금(IMF)과 협력해 국가 통계의 투명성도 확보하지 않아 해외 투자 유치를 스스로 가로 막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실태를 볼 때 북한의 최고 수뇌부가 진정으로 개혁 의지가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란 겁니다.
아울러 베트남이 시장 경제 노선을 채택한 뒤 미국의 많은 민간 기업들이 미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제재와 규제 해제 등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며 로비를 했지만, 북한에는 그런 움직임이 거의 없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뱁슨 전 고문은 말했습니다.
미 전문가들은 또 독재 권력의 약화 혹은 유연성 여부가 베트남과 북한의 큰 차이라고 지적합니다.
베트남은 집단지도체제를 계속 유지하면서 수뇌부를 개혁 성향의 인물로 교체하는 변화를 시도해 경제 성장이 가능했지만, 3대 세습을 통해 수령 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북한은 절대 권력의 약화 우려 때문에 개혁에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미 조지타운대학의 윌리엄 브라운 교수는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며 지금은 김정은 위원장이 베트남식 모델을 채택할 상황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실질적인 개혁 노선을 채택할 수밖에 없도록 트럼프 행정부가 대화를 통해 압박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I think if we continue to talk with him and apply pressure, I think he will see there is really no way out for him except the true reform…”
브라운 교수는 또 김정은 위원장이 당장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개혁은 물가를 장마당 물가로 통합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장마당 물가와 국가의 공식 물가가 50%도 아니고 무려 50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앞으로 북한 경제와 주민 생활에 큰 혼란과 불만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겁니다.
브라운 교수는 모든 국가의 주요 일군들이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반면 장마당에서 수익이 만들어지는 게 북한의 현실이라며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주민들을 행복하게 하려면 이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They get paid almost nothing. It’s the people in market places that are making money…”
브라운 교수는 또 중국의 덩샤오핑이 집단농장을 가족 단위로 전환했던 것처럼 북한도 시험적으로 운영하는 포전제(농가책임생산제)를 완전한 가족농으로 전환해 스스로 생산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