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제재를 위반하며 북한과 합작 사업을 벌이고 있는 개인과 기업이 3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언론이 입수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의 보고서에 담긴 내용인데요, 북한이 불법 '해상 밀수'를 은폐하기 위해 어떤 수법을 쓰고 있는지도 상세히 기록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20일 자체 입수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패널의 중간보고서 내용 일부를 공개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보고서는 북한 금융 브로커들이 해외에서 사실상 아무런 제한 없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했습니다.
또 중국과 러시아 등의 약 300여 기관과 개인이 유엔 제재를 위반하며 북한과 합작 사업을 진행한 의혹도 담았습니다.
이 중 북한 대외건설지도국 산하 건설회사인 젠코(Genco)와 러시아 국적자가 러시아 사할린에 있는 한 건설회사를 공동 소유한 증거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특히 전문가패널들은 '석유 해상 밀수'를 북한이 사용하는 가장 "노골적이며 효과적인" 제재 회피 수단으로 지적했습니다.
실례로 지난 4월 북한 유조선 완흥 11호가 해상에서 러시아 유조선 패트리어트로부터 석유를 옮겨 실어 북한 남포항에 하역하는 모습은 미국 정찰 위성에도 포착됐습니다.
이 보고서를 자체 입수한 워싱턴포스트도 20일 북한과 관련된 "은밀한 해상 거래"를 자세히 보도했습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미국과 동아시아 국가 정보 당국이 중국 황해 등에서 포착한 불법 환적 사례만 모두 148차례.
약 80만에서 140만 배럴의 정유 제품이 거래된 것으로 추산됐는데, 정보 당국자들은 그 규모에 "깜짝 놀랐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습니다.
전문가패널은 여기에 연루된 중국과 러시아 기업 130곳, 선박 40척을 보고서에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방 외교관들은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비핵화 조치에 진전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이 기간 중국, 러시아가 제재 이행에 소홀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습니다.
보고서는 불법 활동을 벌인 북한 선박들이 추적을 피하려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상세히 담았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정제유를 들여오는 북한 유조선 안산 1호는 '시에라리온' 국적의 '호프 씨(Hope Sea)'라는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갑판에 페인트칠로 가짜 이름을 새긴 이 배는 지난 6월 남중국해 해상에서 선박 간 불법 환적 방식으로 석유를 받아 북한으로 들어갔습니다.
또 호스를 갑판 아래로 숨기고 일반 화물선으로 '변장'을 하는 것도 한 수법입니다.
석탄 운반선인 칼마호는 식별번호와 목적지를 허위 신고했을 뿐 아니라, 운항 중 위치 추적을 피하고자 '교란 신호'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위치를 숨기기 위해 '전자추적장치'를 끄고 운항하는 사례가 계속 늘고 있다고 전문가패널은 지적했습니다.
140여 쪽 분량의 대북제재위원회의 중간보고서는 애초 계획과 달리 아직 공개되지 않은 채 언론을 통해서 일부 내용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과 러시아가 보고서 내용과 관련해 신경전을 벌이며 공개를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지난 17일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최근 러시아가 전문가패널을 압박해 중간보고서 내용을 수정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녹취: 헤일리 대사] “Apparently, Russia threatened to prevent release of the report unless its demand to hide the evidence of its violations was met. To our deep regret, the Panel agreed.
대북제재위원회 보고서 초안에는 러시아의 제재 위반 내용이 포함됐지만 이후 러시아의 요구로 관련 내용이 수정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미국은 러시아의 간섭으로 보고서가 "더럽혀졌다"면서, 공개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