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북한 여행금지 조치'가 북한 내에서 활동했던 70여개 인도주의 단체, 약 2백명의 활동가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방북 허가를 받기 위해 별도의 시간과 비용 부담이 가중됐다며, 대북 인도주의 활동이 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고려해줄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한국계 미국 정치학자로 현재 한국 한양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조셉 이 교수가 최근 대북 인도주의단체 관계자 20여 명을 심층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박형주 기자가 조셉 이 교수를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먼저 어떤 계기로 이런 연구를 했고, 조사는 어떤 방법으로 했는지 궁금합니다.
조셉 이 박사) 사회과학자로서 북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특히 미국의 인도주의단체들이 거기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부터 기독교단체 등 미국 내 대북 인도주의 단체들이 주관하는 각종 강연과 포럼 등에 참여했습니다. 대부분 북한의 평화적인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죠. 그러다 2017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여행금지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많은 활동가에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당장 북한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국 대중들에게 북한이 어떤 곳인지, 지원 단체들이 북한은 물론 미국 내에서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알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번 연구를 위해서는 최근 4년 동안 대북 인도주의 활동 등에 관여한 20여 명을 심층 인터뷰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미국인이고, 기독교 관련 지원단체에 소속돼 있습니다.
기자) 이들의 활동이 북한은 물론 미국에도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
조셉 이 박사) 최근까지 북한에 대한 미국 내 주요 인식은 '사악한 정권, 인권침해국, 자유가 없는 나라'와 같은 이미지가 주를 이뤘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가 미국인들의 여행을 막지 않으면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북한 내부에 대한 미국 내 인식은 주로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형성되곤 했습니다. 비판과 제재를 받아 마땅한 독재국가로 비쳤습니다. 하지만 이들 단체, 특히 종교적 성격을 띠는 지원단체들이 제시한 북한은 묘한 차이가 있는 좀 더 복합적인 이미지였습니다. 특히 북한 정권은 내부의 법과 규칙을 어기지 않는 한 종교 관련 인도주의단체에 좀 더 유연함을 보이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또 북한에서 활동하는 기독교 인도주의단체들은 자신들이 북한의 사회경제적 발전과 종교자유 향상에도 의미 있는 이바지를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인도주의단체들이 북한에 상주하면서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줌과 동시에 외부 세계가 주민들을 신경 쓰고 있다는 메시지를 당국에 주는 역할도 합니다. 이 때문에 자신들의 활동이 안전하고 의미 있는 방법으로 이뤄진다면 미국 정부도 이런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바람이었습니다.
기자) 미국 정부의 여행금지 조치가 대북 인도주의 활동가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까?
조셉 이 박사) 지난해 9월 여행금지 조치가 발표될 당시 2백여 명의 관계자들이 일단 북한을 떠나야 했습니다. 다시 돌아와 활동하기 위해서는 국무부는 물론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시간은 물론 재정적인 부담도 뒤따릅니다. 관련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해야 하고, 법과 제도 안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법률적 조언도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들이 효율적이고 장기적인 지원 활동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평양과기대의 경우, 정상적인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선 1학기, 최소 4개월 간 북한에 거주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게 됐습니다. 지난해 미국의 한 치과 관련 지원단체가 북한 지원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여행금지 조치로 인해 이를 포기하고 베트남 등 다른 지역으로 간 사례도 있었습니다.
기자) 국무부는 지난달 이 조치를 1년 더 연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여행이 미국인들의 신변안전에 위험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 순위로 두는 정부로서는 필요한 조치 아닐까요?
조셉 이 박사) 물론 동의합니다. 인도주의단체들이 여행금지 조치나 대북 제재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복합적인 느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부 관계자들은 다른 접근방식을 지지하기도 합니다. 즉,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 지도자를 만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개혁과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겠죠. 그렇다면 인도주의 활동에도 더 많은 기회가 올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이들 단체는 자신들의 경험, 북한과 관련한 정보 등을 좀 더 많은 미국 대중들과 공유하길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정부가 정책 결정을 할 때 이를 반영할 수 있도록 말이죠.
기자)미국 정부가 '북한 여행금지' 조처를 한 데는 '시민의 안전'뿐 아니라 북한 핵 위협에 대한 '최대 압박'이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접근과도 무관치 않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셉 이 박사) 저는 정치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두 가지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지도자 간의 협상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 정부는 압박작전을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북한과 외부 세계와의 더 많은 인적 교류가 평화적 발전과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지도자들도 과거 미국 등 서방국가의 경험을 통해 현실을 자각하고, 내부 개혁개방을 시도하지 않았습니까? 실례로 고르바초프는 미국 아이오와 농장을 방문해 자본주의사회의 농장 시스템이 자신들보다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가장 성공적인 변화는 외부에 의한 것이 아닌 북한 내부, 즉 주민들로부터 시작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주민들의 변화를 견인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인적 교류와 관여입니다. 인적 교류나 인도주의 활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이끌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기자) 대북 인도주의 지원에는 '현장 접근과 모니터링', 또 당국의 통제가 항상 우려사항으로 제기되곤 합니다. 박사님이 만난 활동가들은 이런 우려를 어떻게 해소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조셉 이 박사) 충분히 타당한 우려입니다. 하지만 초창기의 우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인터뷰한 많은 단체는 '고난의 행군' 때부터 대북 인도주의 지원을 시작한 곳이 많았습니다. 20여 년 동안 북한 관리들과 신뢰를 쌓으며,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관계가 형성되면 단체에 좀 더 많은 재량권을 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 북한 당국도 서방의 지원단체나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죠. 시간이 흐르면서 신뢰와 투명성을 구축할 수 있고,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도록 노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북한이 정말로 달라지고 있는가'라는 물음에는 엇갈린 대답들이 있습니다. 박사님이 만난 활동가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조셉 이 박사) 실제로 지난 2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다고 합니다. 현재 김정은 체제는 과거 김일성, 김정일 시대와 같지 않습니다. 특히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은 북한사회에 큰 변화를 줬습니다. 정부 배급시스템이 무너진 겁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스스로 생존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들이 '장마당, 돈주'와 같은 사실상 자본주의 시스템을 도입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의 과정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외부 세계와의 더 많은 교류와 접촉이 사회경제적 변화를 만들고 정치적 변화까지 견인할 수 있습니다. 과거 1950년대 중국은 한국, 미국 등과 전쟁을 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자리 잡은 중국, 특히 젊은 중국 세대들이 한국, 미국과의 전쟁을 생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이들은 미국과 한국의 최신식 휴대전화에 더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국제사회와의 관여와 교류가 변화를 이끄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도 이런 변화가 나타나길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한국계 미국 정치학자 조셉 이 교수로부터 미국의 대북 인도주의 활동의 역할과 트럼프 정부의 '북한 여행금지 조치'가 이들에 활동에 미친 영향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박형주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