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방문했다 혼수상태로 풀려난 뒤 사망한 미국인 오토 웜비어의 치아에 물리력이 가해졌다는 의학적 소견이 제출됐습니다. 식중독이 사인이라는 북한 의료 당국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검시 결과도 첨부됐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웜비어가 북한에 억류되기 전 그를 진료했던 치과 의사들은 웜비어의 아랫니 2개의 위치가 크게 바뀌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오하이오에서 치과 의사로 활동하는 타드 윌리엄스 박사는 지난 10일 워싱턴 DC의 미 연방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웜비어의 부검 당시 촬영된 스캔 촬영본을 확인한 결과 24번과 25번 치아가 치조골 중심에 자리하지 않았다며 이 같이 밝혔습니다.
2014년부터 웜비어를 진료했던 윌리엄스 박사는 과거 웜비어의 치아가 찍힌 엑스레이 사진과 웜비어의 아랫니가 드러난 사진을 첨부하면서, 과거 이 치아들은 아래 정중앙에 위치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웜비어의 사망 이후 촬영된 사진에선 이들 치아들이 입 안쪽, 즉 치아가 있어야 할 위치에서 뒤쪽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윌리엄스 박사는 웜비어를 마지막으로 진료했던 2015년 5월27일 이후 어떤 ‘힘(force)’이 작용한 것이 분명하다는 게 전문의로서의 견해라고 기술했습니다.
아울러 해당 사진은 뼈가 손실됐다는 증거 또한 보여주고 있다며, 이전까지 젊고 건강한 치아를 가졌던 환자에겐 매우 드문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웜비어의 치과 주치의였던 머레이 도크 박사 역시 같은 주장이 담긴 소견서를 제출했습니다.
도크 박사는 웜비어의 부검 당시 사진을 비교해 본 결과 아래쪽 4개의 중간 치아의 위치가 북한 여행을 전후해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24번과 25번 치아가 북한을 여행하기 이전에 비해 혀쪽으로 밀린 채 자리하거나, 입 안쪽을 향해 움직였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변화는 어떤 충격(impact)에 의해 발생하는 게 가장 일반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위치가 크게 바뀐 24번과 25번의 양 옆 치아, 즉 23번과 26번 치아도 가운데 쪽으로 이동했음을 관찰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에 비춰볼 때 빈 공간으로 치아가 이동하는 데는 수 개월 혹은 1년이 넘게 걸린다고 강조했습니다.
웜비어의 치과 주치의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웜비어는 북한에 머물 당시 어떤 물리력에 의해 치아가 손상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치아 2개가 뒤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이후 빈 공간으로 양 옆의 치아가 옮겨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웜비어가 북한에 머물 당시 폭력이나 고문에 노출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게 합니다.
웜비어의 모친인 신디 웜비어와 부친 프레드 웜비어는 지난 4월 북한 정부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하면서, 웜비어가 북한의 고문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 역시 지난 18일 뉴욕에서 개최된 한 행사에서 미국인 학생 오토 웜비어가 고문으로 사망했으며, 그것은 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번 치과 의사들의 소견서는 웜비어 부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문서 형태로 제출됐습니다.
웜비어는 지난 2015년 12월 북한 여행길에 올랐다가 북한 당국에 체포돼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후 지난해 6월 혼수상태로 미국으로 돌아온 뒤 엿새 만에 숨졌습니다.
당시 북한은 웜비어가 식중독의 일종인 ‘보툴리누스균’에 감염됐고, 이후 수면제를 복용한 뒤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의식 불명 상태의 웜비어를 진료했던 신시네티 대학 메디컬센터의 데니얼 캔터 박사는 이 같은 북한 의료 당국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캔터 박사 역시 지난 10일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웜비어에겐 보툴리누스균 중독 환자가 일반적으로 보이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보툴리누스균에 감염된 환자들에겐 근육과 근육 접합부 등에 영구적인 변화가 생기고, 이는 근전도검사(EMG)에도 나타나지만, 웜비어의 경우 정상으로 판명됐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이는 북한에 있을 당시 호흡 부전을 일으킬 만한 보툴리누스균에 감염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캔터 박사는 그러나 보툴리누스균 중독은 매우 느리게 진행돼 쉽게 치료할 수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또 균에 노출될 경우 24~48시간 후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 때 호흡 곤란을 겪을 수 있지만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캔터 박사는 웜비어의 나이와 과거 병력, 이후 자신의 관찰 등을 토대로 볼 때 웜비어의 사인은 뇌 손상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웜비어의 당시 상태로 볼 때 뇌 손상은 저산소성 허혈성으로 인한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캔터 박사는 뇌는 혈액이 운반하는 산소를 필요로 한다며, 만약 호흡 중단이나 심장 마비와 같은 혈액 순환을 감소시키는 요인이 발생할 경우 웜비어에게 발생한 뇌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인의 경우 심장마비가 가장 흔한 뇌 손상 요인이지만, 웜비어의 과거 병력으로 볼 때 심장마비 가능성은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캔터 박사는 이런 설명을 토대로 웜비어의 뇌 혈액 공급은 5분에서 20분간 멈추거나 현저히 떨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손상이 매우 심한 점으로 볼 때 부상 당시 웜비어를 소생시킬 만한 의료진이 없었던 것 같다고 추정했습니다.
캔터 박사는 당시 웜비어의 뇌 상태가 심각하고, 회복 불가능한 상태라는 점을 최종 진단했다며, 이후 가족들은 웜비어를 ‘완화 치료 병동’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웜비어는 인위적인 영양섭취와 의료 지원 없이는 연명할 수 없었다면서, 그가 2017년 6월19일 사망했다고 명시했습니다.
신경과 전문의인 캔터 박사는 지난해 웜비어를 치료한 의료팀을 이끈 인물입니다.
진술서에 따르면 캔터 박사는 웜비어가 후송되는 과정에서부터 국무부 의료진과 교신을 하며 상태를 확인했고, 병원에 입원한 6월13일부터 본격적인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웜비어는 ‘무반응 각성’ 즉 깨어 있으면서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태였지만 움직임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다만 후송 당시 등이 굽고, 팔다리를 쭉 펴고 있었으며 혈압과 심장 박동에 따라 고통 섞인 소리를 내는 등의 문제가 있었는데, 이는 꽉 찬 방광을 비워주면서 해결됐다고 캔터 박사는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후송에 참여한 의료진으로부터 북한에 있을 당시 체내에 삽입해 소변을 뽑는 기구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명시했습니다.
또 캔터 박사는 석방된 웜비어의 코에 음식물 섭취를 위한 튜브가 꼽혀있어 놀란 사실도 진술서에 담았습니다.
미국에선 ‘비중격’ 손상의 위험성 때문에 그렇게 긴 시간 코에 관을 삽입하지 않으며, 대신 수술을 통해 위에 직접 음식물을 공급한다는 겁니다.
한편 캔터 박사는 북한이 2016년 4월과 7월에 각각 촬영된 뇌 촬영 사진과 함께 여러 검사 자료 등을 보냈지만, 세부 내용이 부족하고 제대로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의사나 간호사의 소견 없이 단순히 자료만 전달됐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촬영일자가 정확한 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2016년 4월 뇌 촬영 사진에는 뇌 손상이 명확히 나타나며, 이후 손상이 악화되는 모습이 관측됐다고 전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