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북 제재는 관할권이 매우 광범위해 기업뿐 아니라 인도주의 지원단체들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미 제재 전문가가 밝혔습니다. 미국의 대북 지원단체 관계자는 지난 9월부터 사실상 모든 미국 단체의 방북 승인이 거부되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을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가 미국인뿐 아니라 제3자와 3국 등에 굉장히 포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미 제재 전문가가 말했습니다.
미국 법률회사인 크로웰 앤 모링(Crowell&Moring)의 경제 제재· 수출통제·자금세탁방지 전문가인 디제인 울프 변호사는 최근 서울에서 열린 토론회 뒤 `VOA'에,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에 차이가 크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유엔의 제재는 많은 부문을 금지하지만 제재 대상 인물과 품목에 관련된 게 아니면 금지하지 않는 반면, 미국의 대북 제재는 정의와 대상이 매우 포괄적이어서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녹취: 울프 변호사] “If you are US company or US NGO or US product, everything requires an authorization…”
미국의 대북 제재는 사실상 미국인의 모든 대북 거래를 금지하고 미국산 제품에 대한 제한도 매우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있어 전문적인 지식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울프 변호사는 특히 미국 밖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도 최소한도 이상의 미국산 제품이 함유됐다면 제재 대상에 해당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가령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에 미국산 물질이 10% 이상 포함됐다면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미국인 직원이 없고 미국 은행과 거래가 없는 한국의 대북 지원단체라도 미국산 의료진단용 장비를 구입해 북한에 보내려면 미 당국의 특별허가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북한에서 채취한 타액을 미국으로 보내 분석하는 의료 작업도 허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울프 변호사는 미국의 제재는 인도주의 지원 물자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단체들이 규정들을 잘 이해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울프 변호사] “You gotta really understand these rules because even as a humanitarian organization you are still subject to them….”
울프 변호사는 그러면서 물품 구매를 위해 미 달러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금융 이체와 송금 과정, 고객에 대한 기술적 지원도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전문가의 관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유엔은 인도적 지원 활동에 대해 획일화된 정식 면제 절차가 있지만, 미국은 여러 건의 허가와 면제 과정이 중복돼 있어 조건을 충족하기가 매우 까다롭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미국의 민간단체들은 최근 들어 대북 지원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합니다.
북한에서 40년 넘게 인도적·개발 지원을 하고 있는 미 AFSC(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의 대니얼 제스퍼 담당관은 `VOA'에, 북한에서 활동하는 미국 민간단체들이 제재와 여행 금지 등 두 분야의 규제로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제스퍼 담당관] “US NGOs are facing probably two areas of restriction right now. One…
지원 물품에 대한 제약이 놀라울 정도로 복잡해져 소규모 단체들이 미 정부 승인을 받기 위해 전문변호사를 고용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는 겁니다.
아울러 미 재무부가 규정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단체들과 질의응답을 요구하는 게 빈번해 과거 몇 시간이면 충분했던 절차가 몇 달 이상 걸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지난 9월부터 미국 정부가 모든 민간단체의 북한 출입을 사실상 금지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제스퍼 담당관] “Just a few weeks ago, we have gotten indications that the US now stopping all humanitarian workers…”
미 정부가 지난 9월 1일부터 북한여행 금지 조치를 연장하면서 여러 조건을 강화했고 이후 모든 미국 민간단체의 북한여행 신청이 거부됐다는 겁니다.
제스퍼 담당관은 지난 40년 간 자신의 단체가 북한에서 활동하면서 미 정부가 북한 출입을 금지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 때문에 가을에 계획했던 북한 내 정기적인 분배 감시 평가 작업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고강도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인도주의 지원을 외교적 압박의 추가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제스퍼 담당관] “We are getting indications the United States is increasingly seen humanitarian assistance as a point of leverage within..”
과거 오바마 행정부는 제재의 강도를 점진적으로 강화하고 정부가 대북 인도주의 지원에 기본적인 개입만 했으며 제재를 의회가 주도했기 때문에 활동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많은 게 달라졌다는 겁니다.
제스퍼 담당관은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제재 강도를 급격히 높이고 행정부가 제재를 직접 주도하며 단체들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조치들을 통보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결과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고 단체들에 대한 후원자들의 지원과 관심이 떨어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겁니다.
제스퍼 담당관은 정부와 단체들이 북한 정보에 대해 공유하며 협력할 수 있는 게 많은데, 정부의 일방적인 조치로 이런 협력이 중단돼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제스퍼 담당관은 지난달 31일 서울에서 열린 대북 지원 국제회의 토론회에 참석해 단체들이 겪는 어려움을 분야별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식량과 의약품을 제외하고는 모든 대북 지원에 특별허가를 받아야 하고 전달에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겁니다.
특히 손톱깎이와 장애인용 휠체어, 농사용 삽 등 금속이 들어간 모든 물품에 검열이 이뤄지고 반품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의 최혜경 운영위원장도 인도적 지원이 상당히 위축되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녹취: 최혜경 위원장] “한국에서 인도주의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저희들의 시선에서는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갖고 있는 영향력을 생각할 때 미국의 제재가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요. 북한과의 모든 거래 행위가 아니라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마저 금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가령 북한에 보낼 중국산 밀가루 구매를 위해 중국 업체에 송금을 하려 해도 한국과 중국 은행 모두 달러로 송금되는 절차 때문에 이를 거부해 물품 구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겁니다.
제스퍼 담당관은 `VOA'에 한국의 민간단체들도 지원과 분배 감시에 상당한 주의를 해야 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전 세계가 인도적 지원에 대한 면제 규정을 통합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제스퍼 담당관] “We would like to see perhaps an universal wavier system…"
과거 팔레스타인 사례처럼 민간단체들이 유엔과 협력해 대북 지원에 전 세계가 예외적인 특별 절차를 도입하도록 한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울프 변호사는 승인 절차가 복잡해졌지만 여전히 인도적 지원은 가능하다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조건을 충족하고 물품 면제와 승인 신청서를 일찍 제출하면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