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함경도 소녀가 한국에서 이룬 물리치료사의 꿈

15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남북하나재단 '2018년 북한이탈주민 정착경험사례 발표대회'가 열렸다.

한국에 정착한 3만 2천여 명의 탈북민은 ‘남북 통일의 마중물’ 혹은 ‘먼저 온 통일’로 불립니다. 이들의 한국 정착 경험사례를 나누는 행사가 서울에서 열렸는데, 함경북도 샛별군 출신의 물리치료사 노은경 씨 이야기가 많은 공감을 받았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녹취: 노은경 씨] “저는 함경북도 샛별군에서 사랑이 넘치는 부모님의 외동딸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께서 국군포로였기 때문에 저희 가족에게는 삶의 희망이라곤 없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살기 위해 목숨을 건 탈북을 했고…”

분홍빛 드레스를 입고 긴 생머리를 뒤로 넘긴 평범한 한국 청년 노은경 씨가 “목숨을 건 탈북’ 이야기를 꺼내자 많은 청중이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녹취: 노은경 씨]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어린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이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10시간 이상을 공부하였고 주말에는 교회 언니 오빠들에게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 과외를 받으며 피나는 노력 끝에 중학교 1년, 고등학교 1년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15살의 나이에 가족과 함께 새로운 조국 한국에 정착해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은 어엿한 물리치료사가 된 노은경 씨.

노 씨가 지금과 같은 성공과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힘들 때마다 주위에서 따뜻하게 격려하고 도와줬던 여러 한국인들, 그리고 딸을 위해 헌신한 부모님 때문이었습니다.

[녹취: 노은경 씨] “공부를 하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대학원 공부할 때도, 사회복지사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말 포기하고 싶어 조금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제가 한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응원오신 엄마였습니다.(울음)”

아버지는 국군포로인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3형제 가족이 모두 한국에 왔지만,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어머니는 명절 때면 부엌 한쪽에서 북의 가족을 그리워하며 울고 계셨다는 겁니다.

노 씨는 그 어머니의 눈물을 보며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합니다.

[녹취: 노은경 씨] “어렸을 때 그 장면을 보며 마음이 찢어졌습니다. 우리 엄마는 나 때문에 희생을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런 결심을 했어요. 엄마에게 정말 자랑스런 딸이 되고 싶다.”

두렵고 절박한 도전의 나날들을 거쳐 어엿한 전문인이 된 노은경 씨. 내년 봄에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라며 애인과 함께 찍은 사진까지 보여주며 자랑하기에 바쁩니다.

노 씨는 최근 서울에서 열린 탈북민들의 정착 경험사례 발표대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눠 대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탈북민들의 정착 지원을 담당하는 남북하나재단은 5년 전부터 탈북민들의 경험사례를 통해 다른 탈북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재단의 고경빈 이사장입니다.

[녹취: 고경빈 이사장]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우리 사회에서 꿋꿋하게 정착해 가는 북한이탈주민의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입니다…이 분들의 이야기가 하나원생들에게 정착 의지를 높이는 계기가 되고 다른 분들에게는 북한이탈주민들을 이해하고 가까운 이웃으로 다가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한국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현재 3만 2천 147명의 탈북민이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정착금과 임대아파트, 취업장려금, 교육지원비 등 여러 혜택을 받지만, 북한과 판이하게 다른 문화와 체제로 인해 초기 정착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탈북민들이 북한에서 겪은 인민반 생활의 특징을 최근 책으로 펴낸 이화여대 대학원 북한학과 김석향 교수입니다.

[녹취: 김석향 교수] “인민반 속에서 눈에 띄지 않는 구성원으로 살아남는 게 북한 주민들에게 굉장히 큰 일이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규칙을 적극적으로 지키거나 아니면 따라가면서 어쩔 수 없이 지키거나 그런 선택의 폭은 있는데 규칙은 안 지키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랬던 사람들이 한국에 오는 거죠. 그랬더니 아무도 규칙을 제시해 주지 않아요.”

가령 쓰레기 분리 수거는 북한의 인민반장처럼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한국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시민의 의무이지만, 탈북민들은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무시를 받을 때가 자주 있다는 겁니다.

[녹취: 김석향 교수] “북한처럼 인민반장이 쫓아 나와 감시도 안 하고. 그런데 이걸 잘못 분리 수거를 하면 예의 없는 사람이 되거나 환경의식이 떨어진 사람이 되거나 아주 뒤떨어진 사람, 아주 몹쓸 사람이 되거나. 그러니까 이 사람한테 연습이 안 돼 있는 거예요. 누가 와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면 자기가 잘 할 텐데. 왜 아무도 내게 얘기도 하지 않고 갑자기…”

물론 하나원 등에서 미리 교육을 받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것을 이론을 통해 다 습득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이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는 겁니다.

이날 심사위원을 맡은 북한 출신의 현인애 남북하나재단 이사는 다행히 탈북민들의 정착 역사가 길어지면서 갈수록 안착하는 탈북민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현인애 이사] “정착이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탈북자들이 살아가다 보면 나날이 해가 거듭될수록 정착을 더 잘한다고는 걸 탈북자의 한 사람으로서 아주 자랑스럽게 느낍니다. 작년이 다르고 금년이 다릅니다.”

‘희망의 빛이 그대에게 하는 말’이란 주제로 열린 이날 정착 경험사례 발표 행사에는 예선을 통과한 9명의 탈북민이 나와 한국에서 겪었던 성공과 실패, 좌절, 희망, 열정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국의 가톨릭계에서 운영하는 생태마을에서 일한 지 4년 만에 과장으로 승진한 주창덕 씨는 정착 초기에 겪었던 어려움을 나누며 “조급해하지 말자”고 당부했습니다.

[녹취: 주경배 씨] “탈북민들이 그토록 바라는 통일을 만들어 가는 시작은 우리가 대한민국에 잘 정착해 살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착도 하나의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성실한 자세로 진심을 다해 일한다면 어디든지 이 땅에서 우리의 재능을 펼칠 자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수소리)”

올해 만 70세인 조정숙 할머니는 12년 전 입국한 뒤 성실하게 일해 북한의 가족 8명을 한국으로 데려온 경험을 나눠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녹취: 조정숙 씨] “오전에 한 집, 오후에 한 집 가사도우미로 일했고 모텔청소, 식당 설거지, 환자 간병인 일을 하면서리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번 돈을 갖고 저희 가족 8식구를 몽땅 한국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박수소리)”

가족이 자신에게 영웅 칭호를 줬다며 기뻐하는 조 씨는 은퇴한 뒤 여러 악기를 배워 예술단원으로 봉사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녹취: 조정숙 씨] “저의 인생 2막을 살게 해 주고 우리 가족 모두를 한 품에 안아주신 대한민국에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날 행사를 후원한 통일부의 천해성 차관은, 탈북민은 “먼저 온 통일”이기 때문에 이들의 경험은 통일을 위한 기록이자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천해성 차관] “'탈북민은 먼저 온 통일이다' 란 말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누구도 가 보지 못한 통일의 길에 먼저 온 사람들이란 뜻일 겁니다. 그만큼 힘들고 어렵고 외로운 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탈북민들의 우리 사회 정착 경험은 개인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분단사이고 통일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 차관은 모든 탈북민이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하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