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무부 기소장, 대북제재 대상 불법행위 상세 기술…자산몰수·형사고소 병행

미국 법무부 트레이시 윌키슨 검사가 6일 로스앤젤레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국적자 박진혁을 과거 소니 영화사 등에 대한 사이버 공격 혐의로 기소한 사실을 공개했다.

최근 미국 정부의 북한 관련 제재 조치에는 미 법무부의 몰수 절차가 뒤따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법원 기소장을 포함한 관련 서류들에는 이들 제재 대상자들의 불법 행위 방식이 공식 발표보다 훨씬 상세히 담겨있는데요. 북한이 현금 확보와 사이버 공격 등을 목적으로 어떤 시도를 해왔는지, 함지하 기자가 미 법원 기소장을 들여다 봤습니다.

지난해 8월 미 법무부는 단둥 즈청금속회사(단둥 즈청)와 이 회사의 소유주 치유펑의 자금을 몰수해 줄 것을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합니다.

몰수 근거에는 미국의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과 ‘대북제재와 정책 강화법(NKSPEA)’, 미 애국법 311조, 돈세탁 위반 혐의 등이 망라됐습니다.

당시 법무부는 소장을 통해 치유펑이 부인인 쟁빙과 함께 단둥 즈청을 설립한 뒤 최소 4개의 유령회사를 동원해 북한과의 불법 거래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치유펑은 단둥 즈청을 통해 북한산 석탄을 수입한 뒤, 이를 자신의 유령회사와 거래하는 방식으로 넘겼으며, 이후 또 다른 회사에 판매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석탄을 사들인 제 3의 회사는 휴대폰이나 사치품목, 설탕 등을 거래하는 기업이었는데, 단둥 즈청에 건넬 수수료를 제외한 원 석탄에 대한 대금은 이후 북한에 각종 물품을 넘기는 방식으로 대신했다는 내용도 기소장에 명시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여러 개의 회사가 동원된 복잡한 거래 방식을 통해 대북제재 품목을 북한과 사고 팔았다는 설명입니다.

이처럼 미 법무부가 연방법원에 제출한 소송장에는 대북제재 대상자들이 어떤 방식을 이용해 미국의 법을 어겼는지가 공식 발표 문건보다 훨씬 상세히 기술돼 있습니다.

현재 대북제재 위반과 관련해 미 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은 치유펑을 포함해 모두 5건.

대부분 치유펑 사건처럼 몰수의 근거가 되는 구체적인 사실과 함께, 수사당국이 파악한 불법 자금의 규모 등이 담겨 있습니다.

단둥 즈청 역시 석탄 거래 대금으로 유령회사 등에 건네진 미화 약 408만 달러가 몰수돼야 할 액수로 포함됐습니다.

그러면서 단둥 즈청이 중국의 상거래 웹사이트인 ‘알리바바’ 등을 통해 북한산 석탄과 조개탄, 흑연 등을 거래한다고 광고했는데, 거래 화폐를 달러로 명시했던 회사라고 소개했습니다.

미국의 금융기관이 연계된 거래인 만큼 미국 법에 근거한 자금 몰수 대상이라는 겁니다.

지난 19일 미국 정부의 제재 명단에 오른 러시아 태생의 남아공 국적자가 연루된 ‘벨머 매니지먼트’ 역시 현재 미국 정부에 피소된 기업 중 하나입니다.

싱가포르 회사인 ‘벨머 매니지먼트’는 ‘트랜스애틀랜틱 파트너스’라는 업체와 함께 지난해 8월 미 법무부에 의해 고소됐습니다.

조사를 담당한 미 연방수사국(FBI) 수사관이 작성한 소장에 따르면 벨머 매니지먼트는 지난해 2월27일 정유회사인 ‘IPC’에 190만7천 달러를 송금한 뒤 6차례에 걸쳐 20만 달러에서 137만 달러 사이의 금액을 추가로 보냅니다.

이렇게 송금한 금액만 모두 685만3천 달러.

그런데 조사 결과 벨머 매니지먼트는 몇 개월 뒤 중국인이 운영하는 홍콩소재 회사로부터 119만9천975달러를 이체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후 이 회사로부터 109만 달러와 99만 달러를 받은 벨머 매니지먼트는 북한 은행의 유령회사와 트랜스애틀랜틱, 싱가포르 소재 기업 등 3개의 회사로부터 6차례에 걸쳐 600만 달러에 가까운 금액을 추가로 수령합니다.

결과적으로 벨머 매니지먼트는 북한 정권과 연계된 회사를 대신해 정유를 구입했고, 이후 이 금액을 수령하는 방식으로 돈 세탁에 연루됐다는 게 미 사법당국의 판단이었습니다.

그 밖에 지난 2016년 중국 기업으론 사실상 처음으로 대북제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단둥 훙샹’과 이 회사 관계자 마샤오훙 등도 연방법원에 피고소된 상태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몰수돼야 할 단둥 훙샹과 관련 회사의 중국 내 계좌 25개가 소장에 명시됐다는 사실입니다.

단둥 훙샹은 지난 2016년 북한과 5억 달러 규모의 무역 거래를 한 혐의를 받던 기업입니다. 당시 미국과 별도로 중국 정부 역시 자국 기업을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조사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았었습니다.

소장은 미 법원이 이들 25개의 계좌의 모든 금액을 몰수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이 소송은 다른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미 재무부가 제재한 싱가포르인 탄위벵은 미 연방정부로부터 형사 고소된 인물입니다. 따라서 탄위벵의 기소장에는 그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가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앞서 미 재무부는 지난달 25일 탄위벵과 그가 주주로 있는 무역회사 ‘위총 주식회사’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탄위벵에 대한 연방수사국(FBI)의 지명수배 사실을 공개했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탄위벵은 북한 정부와 각종 계약을 맺은 뒤 실제로 현금을 북측에 전달했다는 등의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 법무부는 기소장을 통해 탄위벵의 자산을 압류해줄 것과 더불어 국제긴급경제권한법 위반과 은행사기, 돈세탁 등의 혐의에 대한 적절한 처벌을 내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탄위벵의 기소 사실은 10월에 공개됐지만, 법원 기록에 따르면 법원의 기소는 이미 올해 2월 이뤄졌습니다.

앞서 탄위벵이 소유한 ‘위총 주식회사’는 지난해 FBI의 수사소식을 접한 직후 이를 막기 위한 소송을 미 연방법원에 제출했다가 올해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정부로부터 형사 기소된 인물 중에는 사이버 범죄에 연루된 북한 국적자 박진혁도 있습니다.

올해 6월 작성돼 9월 일반에 공개된 기소장에 따르면 박진혁은 ‘소니 영화사’와 방글라데시 금융기관, 랜섬웨어인 ‘워너크라이’ 등 다수의 해킹 공격에 연루됐습니다.

박진혁의 범죄 방식과 혐의를 입증하는 내용이 담긴 이 기소장은 179쪽에 이를 정도로 방대합니다.

특히 박진혁이 각종 해킹 공격을 감행할 당시 이용한 약 100개의 이메일 계정을 공개하고, 어떤 방식으로 악성소프트웨어를 다른 컴퓨터에 감염시켰는지 등 범죄 과정이 상세하게 담겼습니다.

이에 따르면 박진혁은 미국의 지메일과 핫메일, 페이스북 계정은 물론 한국의 ‘다음’과 ‘한메일’ 등의 여러 계정을 자신의 해킹 범죄에 활용했습니다.

소니 영화사 공격의 경우, 자신이 남부캘리포니아대학(USC)의 한 여학생이라고 소개하는 가짜 이메일을 소니 영화사 관계자에게 보내 ‘이력서’ 페이지로 이어지는 링크를 누르도록 했다고 기소장은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링크는 소니 영화사를 공격할 수 있는 악성소프트웨어가 담겨 있었고, 결과적으로 해킹을 가능하게 했다는 겁니다.

미국 법무부가 북한 국적자 박진혁 기소장에 첨부한 이메일. 박진혁은 소니 영화사에 보낸 이메일에서 자신을 남부 캘리포니아대 여대생 '크리스티나 카스턴' 으로 소개하고 악성소프트웨어로 연결되는 링크를 '이력서'로 속여서 누르게 했다.

​미 법무부는 이런 방식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의 제조사인 ‘록히드마틴’이나 한국 정부와 군, 사설회사 등에 대한 공격을 시도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기소장에는 박진혁이 북한의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고, 여러 종류의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를 습득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후 박진혁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중국 다이롄 소재 ‘조선엑스포 합작회사’에서 근무했지만, 소니 영화사 해킹 사건 이전인 2014년을 전후해 북한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보인다고 수사 당국은 밝혔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