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무부가 싱가포르와 중국 기업 등을 대상으로 제기한 자금 몰수 소송장에는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 돈세탁을 하고 제재 회피를 시도하는지 자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20개가 넘는 회사를 동원해 단순 거래를 복잡하게 만들고, 동떨어진 사업을 하는 기업들끼리 돈을 주고 받도록 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이번 몰수 소송은 북한 정권을 비롯한 제재 위반자들이 사용한 주 거래 화폐가 미국 달러라는 점이 주요 근거가 됐습니다.
법무부가 26일 중국과 싱가포르 소재 3개의 회사에 대한 자금 몰수 소송을 제기하면서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북한은 해외 고객이나 해외 회사와 거래를 하면서 미국 달러를 주고 받았습니다.
다만 북한의 은행들은 미국과 유엔의 제재 대상인 만큼, 해외 지점의 대리인들을 통해 위장 회사를 설립했는데, 이 역시 미국 달러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소장은 설명했습니다.
법무부는 이후 북한의 위장 회사들이 상품 거래업자나 또 다른 위장회사 관계자, 허가를 받지 않은 자금 송금책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 달러를 거래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달러가 거래에 이용됐다는 건 직간접적으로 미국의 금융망이 이용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과 미 애국법 311조 등을 적용해 법원이 몰수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소송이 제기된 배경입니다.
북한의 불법 거래에 적지 않은 회사가 동원된 점도 주목됩니다.
이번 몰수 대상에 오른 회사는 3개에 불과하지만, 실제 소장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25개의 회사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거래를 20여개의 회사가 동원된 복잡한 거래로 만들어 자금을 세탁하고, 궁극적으론 미 금융망 접근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소장에 등장한 회사 중 7개는 북한 은행들이 만든 ‘위장 회사’입니다.
법무부는 이들 위장회사들의 실명 대신 1~7번까지 번호를 붙여 불법 거래 방식을 낱낱이 공개했습니다.
이중 ‘조선무역은행(FTB)’을 포함한 북한의 은행들이 이용했다고 명시된 ‘1번 위장회사’의 경우 지난해 싱가포르의 한 회사로부터 두 차례 60만 달러의 돈을 송금 받고, 또 다른 싱가포르 회사에 3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보낸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어 비슷한 시기 ‘2번 위장회사’를 통해 35만 달러를 건네 받는데, 이 ‘2번 위장회사’는 당시를 전후해 또 다른 회사 2곳과 125만 달러를 주고 받는 거래를 합니다.
또 ‘3번 위장회사’는 이미 1번과 2번 위장회사와 거래를 했던 회사에 돈을 보내고, 이후 이번에 몰수 소송을 당한 중국의 ‘에이펙스 초이스’와 이 회사의 관계사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약 30만 달러를 이체 받기도 합니다.
북한의 위장 회사 3곳이 여러 회사를 이용해 서로 돈을 옮기면서 각종 물품에 대한 구매 대금을 지급한 겁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위장회사가 본래의 사업 목적과 관계 없는 거래를 여러 차례 했다는 사실도 소장에서 확인됐습니다.
음식 첨가물 취급 회사로 알려진 ‘4번 위장회사’는 북한산 석탄 거래로 제재 명단에 오른 ‘단둥즈청 금속회사’와 임업회사인 ‘위안이 우드’ 등으로부터 15차례 돈을 지급 받았고, 수산물 회사인 ‘6번 위장회사’도 ‘위안이 우드’로부터 자금을 이체 받았습니다.
그 밖에 미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은 한 중국 국적자의 경우 ‘2번 위장회사’ 등으로부터 ‘파라핀 왁스’를 구매했다고 증언했지만, ‘2번 위장회사’는 왁스를 판매하지 않는다고 소장은 명시했습니다.
실제 물품을 주고 받지 않은 상태에서도 돈 거래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미 재무부의 제재 명단에 오른 회사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점도 이번 소장을 통해 드러난 새로운 사실입니다.
특히 ‘단둥즈청 금속회사’는 지난 2016년 7월18일 ‘벨머 매니지먼트’에 18만9천980달러를 이체한 뒤, 같은 해 9월27일과 11월9일 각각 23만 달러와 14만 달러를 추가로 송금합니다.
중국 회사인 ‘단둥 즈청’은 북한산 석탄을 사들여 미 재무부의 제재 대상으로 지정되고, 동시에 법무부로부터 몰수 소송을 당한 기업입니다.
반면 싱가포르 소재 ‘벨머 매니지먼트’는 북한을 대신해 러시아 정유를 구입해, 북한에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두 회사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운영되고, 각기 다른 사업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금전 거래가 이뤄진 겁니다.
이는 북한에 석탄 구매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단둥 즈청’이 북한이 아닌 ‘벨머 매니지먼트’에 이 금액을 전달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벨머 매니지먼트’는 북한으로부터 석유 판매 대금을 지급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별도로 미 정부가 기소한 싱가포르 국적자 탄위벵이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위총 주식회사’ 역시 사업 분야가 다른 ‘에이펙스’나 ‘위안이 우드’ 등과 돈을 주고 받은 사실이 소장에 명시됐습니다.
현재 미 법무부가 대북제재를 위반한 해외 기업에 대해 자산 몰수 소송을 제기한 건 총 4건으로, 전체 금액은 최소 1천424만 달러에 이릅니다.
이중 벨머 매니지먼트에 제기된 금액이 699만9천925달러로 가장 높고, 이어 단둥 즈청이 408만 달러, 이번에 소송이 제기된 3개 기업 316만7천783달러 순입니다.
지난 2016년 북한과 5억 달러 규모의 무역 거래를 한 혐의로 피소된 단둥 훙샹은 구체적인 금액이 명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 내 계좌 25개가 몰수 대상으로 명시됐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