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주한미군 방위분담금 합의, 1년 유효기간이 동맹에 큰 불씨”

지난 2016년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미한연합군사훈련이 시작된 한국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주한미군 장병과 차량이 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이 합의한 올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정은 1년이란 유효기간 때문에 앞으로 미-한 동맹에 큰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한국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계속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면 동맹의 갈등이 심화되고 한국 내 반미정서가 고조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미국과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합의를 한 것은 다행이라고 평가하면서도 1년 유효기간에 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한국군사문제연구원의 김열수 안보전략실장은 지난해 10차례나 공식 회의를 통해 진통을 겪은 사례를 지적하며, 짧은 유효기간이 앞으로 미-한 동맹의 갈등을 구조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김열수 실장] “1년짜리로 했다는 것은 한-미 동맹의 갈등 구조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할 것으로 봅니다. 매년 싸워야 하잖아요. 매년 싸워야 한다는 것은 협상 실무자 차원을 넘어서 정부와 정부 차원으로 비화될 수밖에 없거든요.”

동맹은 빈틈없는 공조가 관건인데 잦은 협상으로 계속 서로 부딪히면 갈등을 재생산하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두 나라는 앞서 10일 지난해 보다 8.2% 인상된 1조 389억원, 미화로 9억 2천 380만 달러에 달하는 제10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에 가서명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991년 방위비분담특별협정 체결 이후 거의 5년마다 이뤄지던 유효기간을 1년으로 못 박아 당장 몇 달 뒤 협상을 시작해야 합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마지노선으로 주장했던 10억 달러에서, 한국은 다년 계약 요구에서 각각 양보한 겁니다.

전문가들은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미-한 동맹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대북 협상을 하겠다는 의지가 이번 합의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신범철 안보통일센터장은 이런 배경 때문에 서로 불만족스러운 봉합 수준의 합의가 이뤄졌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전략적·장기적 차원에서 한국 정부가 좀 더 큰 틀에서 한-미 관계의 선순환을 생각하는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게 아쉽다” 말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차라리 조금 증액을 해주고 그 밖의 이슈에 있어서 한국이 관세 부분 등에서 미국의 배려를 받고 장기 계약으로 가자. 안정적인 동맹이 중요하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이었는데…”

“즉흥적인 결정을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 협상이 감정싸움으로 확산돼 한-미 간 동맹 문제로 악화되면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는 겁니다.

김열수 실장도 미국의 요구대로 분담금을 증액하더라도 유효 기간을 늘리고 반대급부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기회를 놓친 게 조금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열수 실장] “최초부터 10억 달러를 주면서 3년 단위로 하고 예를 들어 한-미 원자력협정의 개정 문제라든지, 잠수함! 북한이 3천t급 SLBM 달고 다니면 우리가 감시해야 할 텐데, 디젤 기관으로는 안 된단 말이죠. 그래서 핵추진 잠수함이 필요할 텐데…그런 데 대한 일정의 양해를 반대급부로 얻을 수 있는, 서로가 윈-윈 할 수 있었거든요.”

일부 익명의 전문가는 이런 발상이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에 유익이 될 수 있지만, 분담금을 늘려야 한다는 발언 자체가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침묵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그런 발상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무리한 요구가 오히려 미-한 동맹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세종연구소의 홍현익 외교전략연구실장은 주한미군의 존재가 미국의 국익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트럼프 행정부가 무시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현익 실장] “한국이 있기 때문에 코앞에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고 우리가 방위분담금을 사실상 70%를 대주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값싸게 전략적 위치에서 세계적인 경쟁 대상을 견제하고 있는데, 미국 측에서 (방위비 분담 늘리지 않으면) 자꾸 (미군) 철수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보고, 미군이 철수한다고 할 때 한국 정부가 그동안 고마웠는데 안녕히 가십시오 한다면 아마 철수 안하리라 봅니다.”

홍 실장은 북한에 대해 한국의 군사력이 우세하기 때문에 열세인 핵과 미사일에 대해 미국이 핵우산만 확실히 보장하면 된다며, 그것도 거부하면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큰 혜택을 주는 것처럼 많은 것을 요구하고 주한미군 철수 협박을 한다면 한국 내 반미정서만 커질 수 있다는 겁니다.

[녹취: 홍현익 실장] “거의 8% 이상을 올려줬는데 또 1년 뒤에 상당한 증액을 요구하는 듯이 미국이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자칫 한국 내에서 반미감정이 굉장히 분출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 행정부가 조금 더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일부 급진적인 진보단체가 이번 방위비 분담금 합의에 항의 시위를 했을 뿐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입니다.

신범철 센터장은 이에 대해 시기가 위중하고 한국 국민이 안보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우리 국민도 한-미 동맹이 중요한 걸 알아요. 그래서 1조원이 넘었는데도 아무도 문제 제기를 안 하잖아요. 아주 진보적인 단체 말고는. 그러니까 문제의식을 (국민이) 갖고 있다고 봐요. 상당히 한-미 동맹 관리가 중요한 시기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넘기려는 겁니다. 1조원이 넘었더라도 상황이 중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수용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홍영표 원내대표는 11일 “당초 미국 정부가 1조 4천억원 이상 증액 요구를 한 점을 감안할 때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협상이 이뤄진 것”이라며 이번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 달 비준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조속히 처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한-미 동맹에 부담을 안기는 상황을 조기에 타결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를 8.2% 인상하고도 유효기간을 대폭 양보하는 실책을 범한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밝혔습니다.

윤 대변인은 매년 갱신해야 하는 방위비 협상은 동맹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국익을 위해 지혜를 찾아 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전쟁에 180억 달러의 전비를 지출하고 각종 경제와 군사 원조를 제공했습니다.

특히 미국은 1953년 10월 미-한 동맹의 근간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뒤 한국의 근대화와 경제발전 노력을 지원했으며 주한미군 주둔 비용도 독자적으로 감당했습니다.

이후 한국의 비약적인 국력 신장과 민주화 정착에 따른 역할 증대론에 따라 1991년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특별협정을 체결해 지금까지 10차례에 걸쳐 분담금을 계속 늘려 왔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