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전문가들 “하노이 회담 결렬로 김정은 위상에 타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공식친선방문을 마치고 지난 2일 하노이에서 평양행 전용열차를 타기 전 군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한국 내 일부 전문가들은 2차 미-북 정상회담의 결렬로 북한 내부적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상에 타격이 예상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미-북 양측이 앞으로 실질적인 협상을 할 기회가 생겼다는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서울에서는 다양한 분석과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로의 입장을 분명히 확인한 만큼 실질적인 협상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도 있지만, 북한 정부가 상당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협상이 조만간 재개될 가능성은 적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황준국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 회담 뒤 엄청난 고민에 빠졌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름 영변이란 큰 핵 시설의 폐기까지 결단하며 전략과 게임 플랜을 세웠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정면에서 거부했기 때문에 충격에 빠졌을 것이란 겁니다.

[녹취: 황준국 전 본부장] “자신들이 짜고 있던 전략, 게임 플랜에 결정적 차질이 생긴 겁니다. 자기들이 하려는 게임에 조금 더 주고 덜 주는 차원에서 게임 플랜을 짰는데, 전혀 다른 계산법, 자기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어떻게 보면 미국이 훨씬 더 강하게 나온 거죠. 미국이 저렇게 강하게 나오면 돌파할 힘과 수단이 없어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기자들에게 미국의 계산법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는 겁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가 무엇인지 확인했고 심지어 자신들이 숨겨놓은 다른 핵 시설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김 위원장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황 전 본부장은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결렬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다른 우라늄 시설을 확인하며, 미국이 이를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북한 대표단이 놀란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황 전 본부장은 김 위원장에게 있어 이번 협상 결렬은 그리 간단한 사안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황준국 전 본부장] “게임 플랜이란 게 자기들은 작고 가난한 나라이니까 단순히 조금 손해 보고 이익 보고 그런 차원이 아니라 체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중대한 차질이 (김 위원장에게) 생긴 겁니다.”

황 전 본부장은 이런 상황에서 북한 수뇌부가 어떤 해법을 모색할지 매우 불투명하다며, 한국의 중재 역할도 제한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도 이번 협상 결렬로 김정은 위원장의 권위가 크게 실추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태 전 공사는 4일 서울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공산국가에서 지도자의 위상은 체제 유지를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젊은 지도자가 모든 게 가능한 것처럼 폼을 잡고 나섰다가 크게 위상이 흔들린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도 비슷한 지적을 했습니다.

[녹취: 전성훈 전 원장] “수령은 무오류의 존재입니다. 북한에서. 그 무오류의 존재가 66시간을 기차 타고 가서 트럼프 만나 사실은 뺨 맞고 온 거 아니에요. 이것은 북한 지도자의 위상에 절대적 타격이 될 겁니다. 이 사실이 북한 내부에 알려지면 불안 요소들이 생길 수 있고 그런 것을 차단하기 위해 김정은은 희생양을 찾을 겁니다.”

전성훈 전 원장은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가 우리와 다른 것 같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난 회담이었다고도 말했습니다.

[녹취: 전성훈 전 원장] “이번에 미국이 핵을 포함한 WMD와 미사일 폐기를 요구한 것은 미국의 독자적 요구가 아니라 유엔 안보리의 결의 사안입니다. 그걸 받겠다 하겠다고 한마디만 했으면 되는 겁니다. 어차피 프로그램 해체를 하려면 단계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지만, 정상회담에서는 정상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와야죠. 그게 북한에서 모든 결정권을 가진 김정은을 만나는 의미가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이번 회담 결렬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소장은 미-북 서로의 입장이 명확해졌기 때문에 실질적인 협상을 할 기회가 생긴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백학순 소장] “문제를 좀 더 확실하게 노출시켜서 이제 이것을 본격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진전이 없겠구나 하는 게 명확해졌기 때문에, 또 트럼프와 폼페오도 계속 회담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당연히 김정은 위원장도 마찬가지 입장을 취하리라 봅니다.”

협상은 기본적으로 타협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이고 건설적으로 중재에 나설 기회가 주어졌다는 겁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도 5일 서울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중재 노력을 부탁한 것을 지적하며, 문재인 정부가 “한-미 워킹그룹처럼 북-미 워킹그룹을 적극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그러나 미-북 협상의 판은 깨지지 않았지만, 상당한 내상을 입었기 때문에 이런 불신이 김정은 위원장의 과감한 비핵화를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모두발언에서 영변 핵 시설의 완전한 폐기와 부분적 제재 해제, 미-북 연락사무소 설치 등이 논의된 것을 하노이 회담의 큰 성과로 꼽았습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나 군사훈련 강화 등 대북 압박 의사가 없다고 확인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조속한 미-북 실무회담 재개를 위한 한국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라종일 전 영국대사는 그러나 남북한의 지속적인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너무 서두르지 말 것을 주문했습니다.

[녹취: 라종일 전 대사] “너무 조급하게 뭐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어떡하든지 북한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방향으로 해야 하는데, 저는 김정은 위원장이 자기가 바라는 것을 못 이뤘으니 상당히 충격을 받았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김정은에게 나쁜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북한은 계속 핵 물질을 생산하고 있고 남한과 북한은 아주 중요한 합동군사연습도 중지했잖아요. 북한에는 상당한 이점이예요.”

라 전 대사는 이번 하노이 회담을 통해 드러난 미-한 공조의 균열을 회복하고, 한국 중심이 아니라 북한 정권에 있어 경제보다 핵무기가 왜 더욱 중요한지를 고민하면서 접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