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 비핵화에 대한 점진적인 접근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데 대해 한국에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이 영변 핵 시설에 추가해 농축 우라늄 시설 폐기를 약속한다면 사태 반전이 가능하다는 견해와, 미국의 높아진 요구 수준으로 합의 가능성은 회의적이란 주장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는 11일 서울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북한이 재협상을 통해 영변 핵 시설과 플러스 알파로 나온다면 사태 반전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문 특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하노이에서 영변 핵 시설의 폐기로 제재 완화라는 미국의 양보를 얻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과신했다며 이같이 전망했습니다.
아울러 미국은 북한이 제시한 유엔 대북 제재 중 민수와 민생 부분 해제를 과도한 요구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차라리 김 위원장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갖고 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핵무기뿐 아니라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는 이른바 큰 합의(빅딜)를 제시한 트럼프 대통령의 `과욕'도 회담 결렬의 원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이 제재에 방점을 두거나 ‘선 해체, 후 보상’과 ‘일괄타결’을 계속 주장하면 트럼프 대통령 임기 안에 협상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어 김 위원장이 동창리 등의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협상의 지렛대로 사용하면 북측에 상당한 악수가 되고 미국이 명분 없이 추가 제재를 하면 판을 깨는 것이기 때문에 쌍방이 자제하며 실무 협상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문정인 특보] “만약 그걸 협상의 레버리지로 사용한다면 그건 북측에 상당한 악수가 될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나비 효과같이 사소한 것이 큰 재앙을 가져오는 요런 것은 북측도 좀 피해야 되는 게 아니냐, 그래서 쌍방이 자제를 보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협상을 통해 미국과 북한이 절충점을 찾을지에 대해서는 엇갈린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비건 대표의 발표만으로는 아직 미국의 입장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전망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위성락 전 본부장] “하나의 가능성은 하노이 이후 미국이 목표치를 높게 잡고 한꺼번에 타결하는 방식으로 크게 거래하겠다는 것일 수 있겠고요. 아니면 대통령이 그런 안을 내놓았기 때문에 그것은 아이디얼한 목표이고 실무 협의가 진행되면 여전히 현실적인 방안을 중심으로 해나가면서 그 목표를 향해 접근할 수 있고. 둘 중 어디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자라면 하노이에서 제시된 서로의 요구를 절충할 가능성이 있지만, 전자라면 상당히 무겁고 어려워 협상 자체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12일 비건 대표의 발언으로 미국의 입장이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에서 ‘일괄타결’로 선회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비핵화와 관련한 미국의 입장은 일관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짤막하게 말했습니다.
김성한 전 외교통상부 제2차관은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입장은 분명해졌다며, 중간지대를 없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성한 전 차관] “완전한 비핵화, 또 하나는 완전한 핵 무장화! 그래서 중간 단계를 제거함으로써 미국은 북한이 하루빨리 협상장에 나와서 비핵화 로드맵에 합의하고 뭔가 빠른 속도의 비핵화 열차에 타기를 기대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 전 차관은 북한이 대놓고 이를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협상 압박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며, 그러나 단기간에 핵·미사일 시험을 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과도한 욕심으로 회담이 결렬되고 판세가 바뀌었기 때문에 미국과 국제사회의 기대 수준이 더 높아졌다며, “영변 플러스 알파만으로는 타결이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의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영변 핵 시설에 추가로 우라늄 농축 시설 폐기를 수용하면 타협이 가능할 것이란 게 비건 대표의 발언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위원] “모든 제재를 동시에 해제하고 모든 비핵화를 동시에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미국의 얘기도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요. 비핵화에 대한 완전한 개념 정의, 여기에 따른 신뢰할 만한 로드맵 제시, (영변에 고농축 우라늄 시설 등 플러스 알파 등) 신뢰할 만한 1차적인 실천적 행동을 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협상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어요.”
협상의 주도권이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넘어갔고, 현 국면이 지속되면 김정은 위원장에게 더 불리하기 때문에 결국 북한이 협상에 나서 절충안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조 위원은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패권 전쟁으로 북한을 돕기 어려운 데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노선이 미국 내에서 지지를 받고 있어 양보할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영변에 더해서 추가 우라늄 농축 시설 폐기와 북한이 하노이에서 요구한 유엔의 대북 제재 해제 가운데 한두 개와 금강산·개성공단 재개 등을 상응 조치로 하는 타결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이 영변 외의 우라늄 농축 시설에서 핵 물질을 계속 생산해 싱가포르 회담에서 쌓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신뢰를 깬 것이 하노이 정상회담에 여파로 작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손 전 원장은 미국의 요구는 완전한 비핵화보다는 북한이 핵 물질을 더는 생산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핵·미사일(ICBM)의 시험 중단, 핵 확산 금지에 1차 목표가 있다며, 조만간 수면 아래에서 그런 합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