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보고서, 30여개국 대상 북한 외화벌이 사례 소개…북한 입지 크게 줄어든 정황 담겨

미국 법무부 트레이시 윌키슨 검사가 지난해 9월 로스앤젤레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국적자 박진혁을 사이버 공격 혐의로 기소한 사실을 공개했다. 유엔 안보리 전문가패널이 12일 공개한 새 대북제재 보고서도 박진혁 등의 사이버 범죄 활동을 상세히 기술했다.

올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보고서는 북한의 환적과 불법 무기와 관련된 내용 외에도 각국에서 수집된 대북제재 위반 사례 등을 상세히 담고 있습니다. 유엔이 벌인 광범위한 조사도 함께 공개됐는데, 북한의 해외 사업 등이 큰 타격을 입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함지하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이 12일 공개한 보고서에는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의 외화벌이 방식이 자세히 소개돼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북한의 ‘사이버 범죄 활동’입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북한의 컴퓨터 관련 활동은 군사 기밀을 탈취하는 목적 정도로 다뤄졌지만, 올해 보고서에는 북한이 사이버 공격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구체적인 정황이 담겼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해커들은 지난해 5월 사이버 공격을 통해 칠레 국영은행에서 1천만 달러를 홍콩의 계좌로 이체시켰고, 8월엔 전 세계 28개국 1만4천 개의 ATM 기계를 작동시키는 방식으로 인도의 코스모스 은행에서 1천350만 달러를 탈취했습니다.

아울러 전문가패널은 미국 정부에 의해 기소된 북한 해커 박진혁 등이 저지른 방글라데시 금융기관 공격 사건 외에 추가로 2건의 범죄 행위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며, 북한이 이를 통해 2천만 달러를 불법으로 이체하려 했다고 전했습니다.

또 지난 2017년 전 세계에 약 5억7천100만 달러의 피해를 입힌 ‘워너크라이 공격’과 2016년 7월 한국의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에 대한 북한 정찰총국의 해킹 범죄에 대해서도 지적했습니다.

전문가패널은 북한 정찰총국이 저지른 사이버범죄가 금융제재를 회피하고, 외화벌이로 사용되는 만큼 관련 정보가 대북제재 목록에 추가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어업권 판매를 통해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내용도 이번 보고서에 담겼습니다.

현재 유엔 안보리는 결의 2397호를 통해 북한의 어업권 양도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패널은 2개 유엔 회원국의 자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1월부터 11월 사이 북한의 어업권을 보유한 15척의 중국 선박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한반도와 일본, 중국, 러시아 인근 해역에서 발견됐는데, 한 선박 관계자는 200척이 넘는 중국 어선들이 북한 수역에서 활동 중이라는 사실을 증언했고, 또 다른 관계자도 (북한에) 매월 지불해야 하는 어업 면허 1건당 가격이 5만 중국 위안, 미화 약 7천250달러라는 구체적인 액수를 털어놨습니다.

보고서는 이들 선박들이 북한 깃발을 달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으로 유입이 금지된 사치품과 관련된 사안들도 중점적으로 조사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가패널은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포착된 롤스로이스 팬텀 리무진 차량을 비롯해, 싱가포르와 베이징 등 김정은 위원장의 방문지에서 포착된 다수의 메르세데스 벤츠 차량들에 대한 제재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 전문가패널이 12일 공개한 새 대북제재보고서에 지난해 10월 북한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롤스로에스 팬텀 리무진을 촬영한 사진이 실렸다. 보고서는 사치품 수입을 금지한 유엔 결의 1718호 위반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패널은 싱가포르와 중국 정부에 서한을 보내 이들 차량들이 임시로 운송되는 과정에서 확인된 차량등록번호 혹은 한국 대통령이 동승했던 것으로 알려진 차량에 대한 한국 대통령 경호처의 점검사항 등을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해 12월4일 보낸 답변에서 해당 차량들에 대한 차대와 엔진 번호를 (북한에) 요청했지만, 북한 관리들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이들 정보를 공개하길 거부했다고 보고서는 전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지난해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포착된 렉서스 LX 570 차량에 대해서도 조사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렉서스의 모회사인 토요타로부터 해당 차량이 ‘비공식 경로와 개인간의 거래를 통해 반입됐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번 보고서에는 30여개 나라에서 행해진 북한의 불법활동들도 공개됐습니다.

다만 대부분 과거에 포착됐던 불법활동에 대한 후속조치에 초점이 맞춰져, 더 이상 관련 활동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습니다.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건설 활동을 했던 만수대 창작사에 취재진 조치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알제리의 경우 ‘만수대 해외 프로젝트 그룹’이라는 이름의 회사가 지난해 1월8일부로 문을 닫았고, 관련인들도 출국했다는 사실을 전문가패널에 통보했습니다.

또 나미비아는 만수대 측이 2017년 6월 경매를 통해 모든 차량과 장비를 판매했다고 밝혔으며, 마다가스카르와 짐바브웨, 보츠와나 등도 더 이상 만수대의 사업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아울러 만수대 측이 박물관을 건립한 것으로 알려졌던 캄보디아의 경우, 당시 사업 활동에 연루됐던 북한 국적자 12명의 생체정보를 제공했습니다.

만수대 창작사 외에도 북한 외교관들의 입지가 크게 줄어든 정황 역시 포착됐습니다.

앙골라는 제재 대상 북한 기업인 청송연합 관계자이자 외교관이 2017년 자국을 떠난 사실과 함께 북한 외교관의 숫자가 12명에서 6명으로 크게 줄었다고 전문가패널에 보고했습니다.

그 밖에 이집트와 중국, 수단, 시리아 등도 제재 대상자가 더 이상 자국에 있지 않다고 밝힌 나라들로 소개됐습니다.

아울러 지난 2013년 안보리가 금지한 이중용도 물자에 대한 구매를 시도하다 독일에서 추방됐던 북한 외교관 리윤택은 관련 내용이 유럽연합 회원국들에게 알려지면서 유엔 비엔나 사무국과 불가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 근무를 승인 받지 못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습니다.

전문가패널은 리윤택이 현재 러시아주재 북한 대사관에 근무하고 있다며, 러시아 정부에 관련 사안을 문의한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북한의 불법활동이 적발된 나라들이 적극적으로 관련 사실을 전문가패널에 보고한 점도 눈 여겨 볼 대목입니다.

지난해 군사 기지 건립과 관련해 조선남남협조총회사 소속 노동자들의 활동이 포착됐던 시에라리온은 이들 북한 국적자들이 단 며칠 동안 예비조사에 참여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17만9천900달러의 현금을 신고하지 않은 채 소지한 북한 국적자를 적발했던 러시아 정부도 자국 형사법에 근거해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고 전문가패널 측에 밝혔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