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해설] 북-러 정상회담은 비핵화 협상에 대한 북한의 입장 변화 신호

  • 윤국한

지난 2일 북한 평양의 만수대 의사당에서 열린 북-러 고위급 회담 테이블에 놓인 러시아 국기와 북한의 인공기.

다음주 열릴 전망인 김정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대한 북한의 달라진 태도를 보여 주는 상징적인 움직임이라는 지적입니다. 한반도 현안을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는 `뉴스 해설’, 윤국한 기자와 함께 합니다.

진행자)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지난해부터 줄곧 가능성이 거론돼 왔는데요, 지금 시점에 성사된 배경이 있겠지요?

기자) 하노이 정상회담의 여파입니다. 결렬로 끝난 이 회담을 계기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대한 북한의 기대와 관심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신호라는 겁니다. 러시아가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한 건 지난해 5월이었습니다. 당시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푸틴 대통령의 초청 의사를 김 위원장에게 직접 전했습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방문을 줄곧 미뤄왔습니다. 비핵화 협상에 집중하는 한편, 미국의 `오해’를 사지 않으려는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습니다.

진행자) 북한이 앞으로 미-북 협상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의 태도 변화는 김정은 위원장의 최근 시정연설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한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세계 모든 평화애호 역량과 굳게 손잡고 나아가겠다”는 겁니다.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쏠렸던 외교의 무게 중심을 러시아와 중국 등으로 옮기겠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대립하며 북한의 입장을 지지해 온 러시아를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첫 해외 방문국으로 택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진행자)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미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볼 수도 있겠지요?

기자) 네. 러시아는 북한의 전통 우방이면서, 미국과 군사적, 외교적으로 첨예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무역 분쟁 등 경제적 이유로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중국과는 입지가 다릅니다. 게다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대북 제재 완화와 북 핵 문제의 단계적 해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힘겹게 비핵화 협상을 진행 중인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에서 러시아 방문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대북 제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보려는 현실적인 목적도 있지 않을까요?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의 대외교역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합니다. 그동안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한 대북 지원 역시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경제협력이 확대되고, 러시아가 대북 인도적 지원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있습니다.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 체류 문제도 북한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반면, 러시아에게 북한은 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장을 위한 좋은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진행자) 김 위원장의 이번 러시아 방문이 중국에 주는 메시지는 뭔가요?

기자) 미국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대북 지원에 적극 나서달라는 겁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3월 이후 네 차례나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는 등 공을 들였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가 없습니다. 미국과 무역분쟁 중인 시진핑 주석이 미국의 심기를 살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네 차례 방중에도 불구하고 시 주석의 평양 방문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배경인데요, 김 위원장의 이번 러시아 방문이 시 주석의 방북을 재촉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진행자) 북한이 앞으로도 미-북 비핵화 협상과는 동떨어진 행보를 계속할까요?

기자) 전문가들은 비핵화 해법에 대한 미국의 입장 변화가 없는 한 북한이 먼저 움직일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실무 회담이나 고위급 회담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진행자) 끝으로, 러시아 당국이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 시기와 장소를 발표하지 않은 이유가 뭔가요?

기자) 북한의 입장을 감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보안과 경호상 이유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동선이 사전에 노출되는 것을 극히 꺼립니다. 이 때문에 북한 최고지도자의 해외 방문은 대부분 마지막까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왔습니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이번 정상회담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며, 김 위원장은 전용열차 편으로 이동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반도 현안을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는 `뉴스 해설’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