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무기 동결과 감축에 대한 실질적 조치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버시바우 대사는 VOA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역할론을 언급하면서,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제시했던 조치 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러시아주재 대사를 거쳐, 2005년부터 3년 간 주한대사를 역임한 버시바우 전 대사를 안소영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미-북 비핵화 협상에 진전이 없는 가운데, 25일 북-러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버시바우 대사) “김정은 위원장은 앞서 중국의 지원을 얻으려 했던 것처럼, 이제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려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미국에 우리에겐 동맹인 러시아가 있다, 다른 옵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제재 완화를 압박하려는 것 같습니다. 제재와 관련한 우리의 요구를 계속해서 거부하지 말라, 이런 것이죠. 특히 북-러 정상회담은 북한의 최근 신형 전술유도 무기 사격시험과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의 교체를 요구하는 성명 등이 발표된 이후 이뤄지는 겁니다.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미국을 계속 압박하는 연장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자) 러시아가 어떤 입장을 보일까요?
버시바우 대사) “푸틴 대통령은 대북 제재 완화를 지지하는 입장일 겁니다. 그러면서도 북 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에 반기를 들지는 않을 겁니다. 국제사회 여러 문제에 있어 미국에 반대 입장을 취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북한의 비핵화는 북-러 양국이 공통적 이해를 갖고 있는 사안이니까요. 또한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핵 확산에 강하게 반대해왔고,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도 충실히 이행해왔습니다. 어쩌면 러시아는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내부 정치용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사회에서 소외된 것을 만회하는 동시에 국제사회의 큰 문제에 러시아의 영향력이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기자) 푸틴 대통령이 미-북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버시바우 대사) “러시아는 김 위원장에게 더욱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비핵화와 관련해 반드시 ‘전략적 선택’을 보여야 한다는 점을 말입니다. 이 ‘전략적 선택’은 ‘리비아 모델’처럼 한꺼번에 완전히 비핵화를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김 위원장이 영변 핵 시설과 관련해 하노이 회담에서 한 약속보다는 더 많은 조치를 취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핵무기와 운반시스템의 동결, 감축과 관련한 실질적 조치에 나설 것을 촉구해야 합니다.”
기자) 러시아가 어떻게 북한의 이런 약속을 유인할 수 있을까요?
버시바우 대사) “러시아는 북한에 협상 진전에 따라 경제적 지원을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비핵화 할 실질적 준비가 돼 있고, 또 관련 움직임을 확인하면 러시아는 북한과 철도, 에너지 파이프라인 연결 등 인프라 프로젝트를 할 수 있고 경제적 지원을 할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는 북 핵 협상에서 가장 큰 지렛대는 아니지만 효과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이행하더라도 결국 핵을 폐기하도록 러시아가 힘을 보탤 수 있길 바랍니다.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미-북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 현명한 선택을 하기 바랍니다. 국제사회나 내부 선전용으로 보지 않고 말입니다.”
기자) 단계적 비핵화 조치를 언급하셨는데요.
버시바우 대사) “저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유일하고도 현실적인 방법은 단계적 조치뿐이라고 봅니다. 미국은 계속해서 단계적 비핵화 조치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특히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일괄타결식 ‘빅 딜’을 강조하고 있죠.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얼마 전 ‘단계적 비핵화’를 언급하면서, 좀 더 유연한 입장을 내비친 것 같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미국이 일찌감치 제재를 통한 대북 영향력을 포기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겁니다. 제재를 너무 쉽게 풀면,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기자) 북한은 폼페오 국무장관 교체를 요구하고 볼튼 보좌관을 비하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버시바우 대사) “북한이 여전히 실무진 등 낮은 단계에서의 관여는 피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협상하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미-북 정상회담은 이제 피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무진 간 많은 만남이 이뤄진 뒤에 두 정상이 마주 앉아야 합니다. 하노이 회담에서 미-북 양측이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합의문을 채택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제 생각에 트럼프 대통령도 이제 이 부분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3차 정상회담의 시기와 장소를 발표하기 전에 훨씬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말입니다.”
지금까지 주러 미국대사를 거쳐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주한대사를 지낸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대사로부터 북-러 정상회담의 전망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안소영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