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부가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대집단 체조 공연을 이달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강제 동원해 혹사하는 이 공연은 북한이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위반으로 야만적이란 지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지난 26일 새롭게 단장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인 ‘인민의 나라’를 6월부터 10월 중순까지 진행한다고 보도했습니다.
[녹취: 북한 노래 ‘인민의 나라’] “사랑하는 나의 조국 인민의 나라. 햇빛도 밝은 나의 조국 자유론 인민의 나라. 원수님 높이 모신 영광 이 땅에 차고 넘쳐라…”
북한 전문 해외 여행사들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10만명 이상이 동원된 “놀랍고 신명 나는 집단체조극이 돌아왔다”며 평양 관광 상품 판매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고려여행사는 올해 공연 관람료로 귀빈석은 800유로, 미화로 893달러, 1,2,3등석은 각각 500, 300, 100유로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북한 정부와 여행사들의 홍보에 국제 인권단체들과 탈북민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집단 체조를 이렇게 홍보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해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체제 선전까지 제대로 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겁니다. 문제는 이런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너무나 많이 고생하는 북한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화려하고 완벽한 집단 체조극 뒷면에는 몇 달을 고생하고 훈련한 학생들의 노고가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어린이와 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강제 동원과 노역이 일상화돼 있지만, 이는 국제 인권법을 위반하는 심각한 유린 행위란 겁니다.
실제로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는 최종보고서에서 대집단 체조는 북한이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위반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집단체조에 뽑힌 어린이들의 연습이 일 년 내내 진행되고 훈련과 연습이 가혹하며 체벌까지 이뤄진다며, 이는 어린이들의 건강과 행복에 위험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착취는 어린이들이 휴식과 여가를 즐길 권리, 교육 방해나 건강에 해로운 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명시한 유엔아동권리협약 31조와 32조를 위반하는 행위라고 밝혔습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미국과 한국 등 많은 나라는 정부가 어린이 등 미성년자를 강제로 국가 행사에 동원하는 것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정부가 어기면 부모들의 반발로 소송을 당하고 당국자는 징계를 받기 때문에 행사 동원은 자원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 때문에 여러 유엔 회원국은 지난 9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열린 북한에 대한 보편적 정례검토(UPR) 회의에서 어린이 강제 노동에 우려를 나타내며 북한 정부에 아동권리협약 이행을 촉구했습니다.
탈북민들은 북한의 이런 집단체조 공연에 더욱 분노를 표시합니다.
태영호 전 북한주재 영국대사는 지난주 노르웨이에서 열린 오슬로자유포럼에 참석해 기자들에게 집단체조 공연은 “아동 착취”라며 유럽인들이 이런 비인간적인 공연 관람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태 전 공사는 자신의 저서(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재임 시절 영국 외교부 과장으로부터 “당신의 아이가 추위에 떨며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텀블링을 한다고 상상해 보라”는 질문을 회고하며 반성의 글을 썼었습니다.
평양에서 아이들의 집단체조 훈련을 자주 봤지만 잘못됐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태 전 공사는 그러나 오슬로 행사에서 두 아들을 노예의 사슬에서 끊어주고 싶어 탈북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태영호 전 공사] “As a father, I think it is my last mission to cut the chain of slavery because I thought that the life, as a diplomat and the life of children of the diplomat of North Korea, is nothing but slavery.”
태 전 공사의 두 아들은 바람대로 한국에서 원하던 공부를 하며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인권 단체들은 여전히 수많은 아이가 북한에서 집단체조뿐 아니라 다양한 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북한 교원 출신으로 미국에 살고 있는 탈북 난민 레베카 씨는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서방세계 국민들이 북한 정부에 돈을 내고 집단체조 공연을 보는 것은 “인간의 양심을 져버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레베카 씨] “보러 가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그 누구도 저는 집단체조를 보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보는 사람이 있으니까 아이들이 그런 고생을 하죠.”
북한 ‘노동신문’은 그러나 30일 논평에서 “량심(양심)과 의리는 인간의 고유한 미덕”이라면서도 기본은 “수령에 대한 숭고한 도덕 의리심”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기본적 권리가 북한에서는 “천만이 총폭탄이 되어 수령을 결사옹위하자”란 구호처럼 수령의 노예에 불과하다는 게 탈북민들의 지적입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