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크리스토퍼 힐 전 차관보] “영변 폐기, 핵 프로그램 종식 아냐…추가 우라늄 시설 공개돼야”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

북 핵 프로그램의 전모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가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단계인지 여부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밝혔습니다. 힐 전 차관보는 26일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영변 핵시설의 완전 폐기를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의 입구로 규정한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이날 발언과 관련해, 영변 외 핵 시설을 감안할 때 그런 결론을 내릴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힐 전 차관보는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되려면 영변 뿐 아니라 추가 핵시설에 대한 전면 공개와 관련 조치가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영변 핵시설 전면 폐기를 북한 비핵화의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정의했는데요. 동의하십니까?

힐 전 차관보) 영변 핵시설을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폐기한다 해도 문제는 북한 핵 프로그램 폐기 여부 입니다. 영변 외 핵 프로그램은 그럼 어디 있느냐는 질문이 남게 되죠. 핵 목록이나 신고가 없는 상황에서 영변 핵 폐기를 핵 프로그램 폐기라고 부를 순 없다는 얘깁니다.

기자) 결국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단계’로 간주할 수 없다는 뜻입니까?

힐 전 차관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한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북한 핵 프로그램 전체를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알 길이 없다는 뜻입니다. 영변이 북 핵 프로그램의 1%를 차지한다면 대수로운 조치가 아닌 것이고 만약 50%를 차지한다면 커다란 조치가 되겠죠. 북한이 2008년 제출한 신고서만 해도 부족하긴 했지만 핵 프로그램 목록을 담고 있었는데, 현재는 그마저도 없는 게 문제입니다.

기자) 최근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보로부터 ‘북한이 영변 바깥에 핵물질 농축 시설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신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워싱턴에선 기정사실화된 정보가 맞죠?

힐 전 차관보) 북한 핵 프로그램에서 플루토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고 영변은 제가 알기론 주로 플루토늄 관련 시설입니다. 아인혼 특보가 존재를 확신한다는 영변 외 시설은 고농축 우라늄 시설이고요. 저는 정보 부문에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영변 외 추가 시설이 있다는 데 워싱턴의 의견은 일치합니다.

기자) 영변 외 시설에 대한 의심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2000년대 중반 북한과 직접 협상하실 때도 똑같은 우려가 있지 않았습니까?

힐 전 차관보) 그렇습니다. 그게 북한과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이유입니다. 북한이 제출한 신고서에는 우리가 확신을 갖고 있는 추가 시설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게다가 고농축 우라늄에 대해선 아예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무엇을 공개하든 그건 충분하지 않다는 견해를 갖게 됐죠. 또한 북한은 당시 신고서에 담기지 않은 시설에 대해선 조사를 불허했고 우리는 그런 제한적 방식에 찬성할 수 없었습니다.

기자) 영변 핵시설은 북한과의 핵 협상에서 너무 작은 부분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까?

힐 전 차관보)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영변은 북한의 모든 플루토늄이 생산되는 곳이고 플루토늄은 북한 핵무기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실태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저는 영변 핵시설을 사소한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겠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북한이 영변 외 시설을 포함한 완전한 신고서를 제출하기 전에는 정확한 분석이 어렵습니다.

기자) 문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 전면 폐기를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단계로 평가하는 동시에, 그런 실질적 진전이 있으면 남북 경제협력과 유엔 제재 완화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미국 정부가 같은 페이지에 있다고 보십니까?

힐 전 차관보) 트럼프 행정부와 공유하고 있는 입장인지 모르겠네요. 저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제 경험상 미국이 이래라저래라 할 일은 아니지만 북 핵 문제에 대해선 미국과 협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대통령으로서 의견을 표출할 권리는 당연히 있지만, 그런 발언을 하기 전에 미국과 협의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미국도 의견이 있을 겁니다.

기자) 실제로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하려면 어떤 단계를 밟아야 합니까?

힐 전 차관보) 우선 북한으로부터 영변 핵시설부터 시작하는 비핵화 수순을 밟겠다는 확약을 받아야 합니다. 현재 그런 모습을 볼 수 없고 그저 영변 관련 조치로 보이는 제안이 있을 뿐입니다. 미국은 이런 제안이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을 이미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영변 시설 외에 추가로 비핵화를 취하겠다는 언급이 없는 상황에서 영변 관련 조치가 중요한 진전인지 아닌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따라서 영변 바깥에 고농축 우라늄 시설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야 하고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의 전면적 공개가 필요합니다. 가령 북한이 무기급우라늄을 공개할 것인지, 이로 인해 플루토늄 생산은 멈춘 건지 등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로부터 영변 핵시설 폐기의 한계와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의 정의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