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동서남북] 평양은 강온파 노선투쟁 중?

  • 최원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이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의 충격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과의 협상 재개에 대비해 인사와 조직을 정비하는 한편 친서를 통해 워싱턴에 손짓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정상회담이 결렬되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회담 직후 나온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발언입니다.

[녹취: 최선희]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 조-미 거래에 대해 의욕을 잃지 않으셨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초 북한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 시설과 제재 해제를 맞바꾸려 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변 핵 시설을 폐기할 테니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5개를 풀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과 비밀 핵 시설 등 5곳의 핵 시설 모두를 폐기하도록 요구해 회담은 아무런 합의 없이 끝났습니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에서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다시 60 시간 이상 기차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제재는 풀리지 않았고, 개성공단도 금강산 관광도 재개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한국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하노이 회담 실패로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권위가 크게 흔들렸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 갈 때 외교안보 라인을 대규모 대동하고 실시간으로 미리 보도를 했는데, 결과가 없었죠, 제재 완화를 기대했던 장마당 세력과 북-미 협상에 대해 기대를 했던 엘리트 양측이 실망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북한 수뇌부는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의 책임을 물어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해임했습니다.김영철은 지난 2년 간 핵 협상과 대미, 대남 관계를 총괄해왔는데 자리에서 물러난 겁니다. 다만 노동당 부위원장직은 그대로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김영철은 지난 20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환영 행사 등에 모습을 드러내 건재를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김영철의 위상은 크게 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금수산영빈관에서 열린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에 김영철은 배석하지 못했습니다. 김영철은 앞선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2차례의 미-북 정상회담, 4차례의 북-중 정상회담에 줄곧 배석해왔습니다.

미-북 실무 협상을 담당했던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도 종적을 감췄습니다. 이와 관련 미 `CNN' 방송은 김혁철이 살아있지만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와 관련해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반면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의 위상은 오히려 격상됐습니다. 김여정은 지난 12일 판문점에 한국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 김 위원장의 조화와 조문을 전달하기 위해 나타났습니다.

김여정은 이번 시진핑 주석 환영 행사에도 고위 간부들과 함께 서 있어 위상이 올라갔음을 보여줬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주도해온 통전부가 힘을 잃으면서 뒷전에 있던 외무성이 북한 외교의 전면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제1부상은 지난달 2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에서 북측 배석자로 참석했습니다.

이용호 외무상은 20일 순안공항에서 열린 환영 행사에도 앞줄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맞은데 이어 금수산영빈관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도 배석했습니다.

게다가 북한 외무성은 4월부터 10여 차례에 걸쳐 담화와 기자문답을 통해 미국과 한국을 겨냥한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북한 수뇌부는 미국과의 관계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등이 맡고, 대남 관계는 장금철 신임 통전부장이 담당하도록 교통정리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정상화되는 거죠. 대외 문제는 외무성이 맡고, 대남은 통전부가 맡는데, 대남담당 비서와 통전부장이 분리하는 그림이 그려진 것같아요.”

한편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평양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이 진행 중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과거 미 중앙정보국 (CIA)에서 북한을 담당했던 로버트 칼린 스탠포드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 연구원은 최근 북한전문 매체인 ‘38 노스’ 기고문에서 북한 내부에서 강온파가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칼린 연구원은 `노동신문'에 게재된 몇 개의 논설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강경파들은 5월과 6월 `노동신문' 특별논설을 통해 핵 개발과 자주노선을 주장했습니다.

5월20일 `노동신문' 1면에 게재된 ‘자주노선은 위대한 승리와 번영의 기치이다’라는 제목의 논설은 ‘제국주의자들의 핵 위협을 핵으로 종식시키야 한다는 전략적 결단’을 언급하며 자주노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6월12일은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 1주년이었습니다. `노동신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전쟁은 외교나 구걸이 아니라 강력한 물리적 힘으로써만 막을 수 있다’며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강력한 전쟁억제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논설은 또 경제발전 노선을 비난했습니다. 논설은 ‘다른 나라의 기술과 자금에 매여있는 경제, 하청경제는 바람 앞의 등불’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추구하는 비핵화와 경제건설 총력 노선을 비판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앞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4월 평양에서 노동당 전원회의를 열고 ‘핵-경제 병진 노선’ 대신 경제건설 총력 노선을 채택했습니다.

반면 온건파는 과거 핵 협상에서 공을 세운 인물들을 조망하며 미국과의 협상을 옹호했다고 칼린 연구원은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노동신문'은 5월 8일 ‘위인의 품속에서 영생하는 충실한 혁명전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2015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양건 전 통일전선부장을 추모하는 글을 게재했습니다.

6월 10일자에는 1990년대 미-북 제네바 핵 합의를 이끌어 낸 강석주를 집중적으로 추모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또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본 내 친북단체인 조총련의 기관지 `조선신보'는 11일 김 위원장의 2012년 4월 연설을 재인용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당시 김 위원장은 김일성광장에서 행한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했는데, 이를 다시 강조한 겁니다.

칼린 연구원은 온건파들이 일본에서 발행되는 `조선신보'까지 동원해 경제발전을 강조한 것은 김 위원장이 추진하는 노선이 수세에 몰려 있다는 얘기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북한에도 비핵화와 경제 문제 등을 둘러싸고 여러 엘리트 그룹이 각자 다른 노선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In this case he is right because the issue..”

평양 내부에서 비핵화와 경제 문제를 둘러싸고 실제로 논쟁이 벌어졌는지, 또 이 논쟁에서 누가 이겼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친서를 주고 받으며 3차 정상회담을 모색하고 있다는 겁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6월10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낸 데 이어 16일 또 다시 친서를 보냈습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답장을 보내자 북한은 23일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읽어보시고, 훌륭한 내용이 들어있다며 만족을 표시하시었습니다.”

이날 `노동신문'은 1면 상단에 김정은 위원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친서를 읽고 있는 사진을 공개하며 관련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활용해 자신의 정치적 위신을 높이려는 시도라고 한국의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지적했습니다.

[녹취: 강인덕] ”자신의 위신을 올려보려는 노력이고, 전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나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렇듯 북한은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의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서울 방문이 미-북 3차 정상회담으로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VOA 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