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무부 “미국인 암호화폐 전문가, 재무부 허가 없이 북한에 기술 유출”

미국 워싱턴의 연방 법무부 건물.

대북 제재 위반 혐의로 최근 기소된 미국인 가상화폐 전문가는 북한에 국가 기밀과 기술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미국 법무부가 밝혔습니다. 미 언론들은 이번 사건의 용의자가 받고 있는 혐의 중 적국을 이롭게 한 죄, 즉 이적죄 논란에 대해 집중 보도했습니다. 조상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 법무부는 2일 보도자료를 통해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미국인 버질 그리피스 씨를 대북 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해 기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법무부는 보도자료에서 그리피스 씨가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의 허가 없이 북한에 재화, 용역, 기술을 유출하는 행위를 금지한 국가긴급경제권한법(IEEPA)과 대북 제재 행정명령 13466호를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존 데머스 법무부 국가안보 담당 차관보는 그리피스 씨가 “미국의 최대 적국인 북한을 방문해 대북 제재를 회피할 수 있는 암호화폐 기술을 유출했다”면서 “이번 기소는 정의를 구현하는 과정의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법무부는 또 그리피스 씨가 국무부의 승인 없이 지난 4월 중국을 거쳐 북한을 방문해 ‘평양 블록체인 가상화폐 회의’에 참석했다며, 미국 시민의 사전 승인 없는 북한 여행을 금지한 국무부 조치를 위반했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지난달 29일 미 뉴욕 맨해튼 연방 검찰은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해킹 전문가 그리피스 씨가 평양 블록체인 회의에 참석해 북한 당국이 사전 승인한 주제를 발표하고, 암호화폐를 활용한 제재 회피와 돈세탁 방법에 대한 기술정보를 제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검찰은 또 그리피스 씨가 자신이 전달한 고급 정보가 북한으로 넘어갈 경우 이를 통해 북한이 돈세탁을 하고 제재를 피할 수 있을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밝혀, 그가 의도적인 이적 행위를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그리피스 씨가 남북한 간 암호화폐 교환 촉진 방안을 북측에 권장했으며, 이것이 대북 제재 위반이라는 것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추가로 공개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리피스 씨가 내년에 열릴 예정인 평양 블록체인 가상화폐 회의에 참여할 것을 주변 미국 전문가들에게 권유했고, 본인의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 시민권 취득 방법을 알아보기도 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언론들은 미국인 해킹 전문가가 핵심 기술 유출로 적국을 이롭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실을 비중있게 다뤘습니다.

‘뉴욕타임스’ 신문은 2일 그리피스 씨의 체포 사실을 전하면서 그의 흥미로운 이력을 소개했습니다.

신문은 그리피스 씨가 대학 1학년 때 여러 대학의 학생증 관리 프로그램의 보안상 허점을 해킹해 이를 악용했으며, 이 때문에 관리회사로부터 소송을 당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정보 제공 사이트인 위키피디아의 정보를 누가 편집했는지를 폭로하는 ‘위키스캐너’라는 해킹 프로그램을 발명했으며, 2008년에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싫어하는 기업과 조직에 해킹으로 재앙을 선사하겠다”고 밝히는 등 관련 업계 이단아로 명성을 쌓아왔다고 전했습니다.

신문은 미 사법당국이 제기한 그리피스 씨의 ‘이적죄’ 혐의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뤘습니다.

그리피스 씨에 대한 기소는 트럼프 행정부가 암호화폐를 통한 북한의 불법 자금 조달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줄곧 제기해온 데 따른 것으로, 최대 20년의 징역형 가능성이 거론된 것은 미 당국이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입니다.

미국의 경제 전문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미국 내 전문가들의 다른 목소리도 전했습니다.

이 매체는 그리피스 씨가 소속됐던 세계 양대 암호화폐 ‘이더리움’의 공동 창업자 비탈릭 부테린 씨를 인용해 “그리피스 씨는 이미 만천하에 공개된 정보를 기반으로 공개된 소프트웨어에 대해 설명했을 뿐”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부테린 씨는 이 매체에 그리피스 씨가 “첨단기술을 족집게 과외하거나 괴상한 해킹 방법을 알려준 것이 아니”라며, 미국의 이번 기소는 국가가 소유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암호화폐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해커 전문 잡지 ‘2600’의 편집장인 에마뉘엘 골드스타인 씨도 트위터에 “그리피스 씨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진정한 해커이며, 선한 방향으로 해킹 능력을 펼치려 했을 뿐”이라며 “이번 기소는 해커 모두에게 가해지는 공격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습니다.

VOA 뉴스 조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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