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연말기획: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4. 정체 상태 면치 못한 남북관계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김정은 븍힌 국무위원장이 이 군사분계선에서 처음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2019년 한 해가 저물어가는 현재 한반도 정세는 남북한을 둘러싼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 미-북 비핵화 협상이 전혀 진전을 이루지 못한 가운데, 한반도에서 머잖아 2017년과 같은 위기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VOA는 연말을 맞아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주요 움직임을 되돌아보는 기획물을 준비했습니다. 다섯 차례로 나눠 보내드리는 특집보도, 오늘은 네 번째 순서로 정체 상태를 면치 못한 남북관계를 살펴봅니다. 서울에서 한상미 기자입니다.

서울시가 최근 한국 국민 2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남북 교류협력 의식조사’에 따르면 5년 안에 남북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는 의견은 응답자의 39%에 불과했습니다. 48%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답했고, 나머지 12%는 오히려 남북관계가 나빠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현재의 남북관계에 대한 우려와 부정적 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실제 최근 남북관계는 지난해와는 달리 냉각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특히 도를 넘는 북한의 대남 비난이 지속되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북한의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가장 최근인 지난 23일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겨냥해, 한국이 다시 미-북 사이의 중재자로 나서려 한다며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이 매체는 ‘남조선 당국자가 지난해부터 조-미 사이의 중재자, 촉진자 역할을 운운하다가 무능함만 드러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사고력과 수치심만 있다면 중재자 타령을 더이상 하지 못할 것’이라고 문 대통령을 깍아내렸습니다.

북한이 문 대통령에 대한 ‘중재자’ 역할을 비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월 13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을 ‘오지랖 넓은 중재자’라고 비판했습니다. 미-북 사이에서 중재자나 촉진자 행세를 할 게 아니라 ‘당사자’가 돼야 한다는 겁니다.

당시 `조선중앙TV' 보도입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

이후 북한의 도를 넘는 대남 비난이 본격화 됐습니다.

북한은 지난 8월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통해 문 대통령을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언급한 ‘평화경제 구상’을 문제 삼았습니다.

[녹취: 문재인 대통령] “평화로 번영을 이루는 평화경제를 구축하고 통일로 광복을 완성하고자 합니다.”

조평통은 또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추진 계획에 대해 ‘삶은 소대가리도 비웃을 노릇’이라고 조롱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미-북 비핵화 협상에 남북대화는 방해 요소일 뿐이며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이상 할 말도 없고, 다시 마주앉을 생각도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8월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 내용입니다.

[녹취: 외무성 대변인]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과 마주앉아 맥을 뽑으면서 소득 없는 대화를 할 필요도 없다.”

이같은 비난이 지속되자, 대응을 자제하던 한국 정부도 강한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김은한 통일부 부대변인의 8월 16일 브리핑입니다.

[녹취: 김은한 부대변인] “그러한 발언은 남북 정상 간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 합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북관계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자 합니다.”

북한은 지난 19일에는 미국의 눈치를 보는 한국의 외세의존 정책 때문에 남북관계를 개선할 기회를 놓쳤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올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전성기를 열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였지만 한국 정부가 동족이 내민 선의의 손을 뿌리치고 외세의존에만 집요하게 매달렸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한국에 대해 ‘스스로 제 발에 족쇄를 채우는, 미국 상전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안되는 식민지 하수인의 가련한 처지’라고 비꼬았습니다.

이같은 대남 비난은 현재 북한에게 남북대화가 필요치 않기 때문이라고 한국의 전문가들은 진단했습니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입니다.

[녹취: 김천식 전 차관] “신년사 등에서 남측에 대해 요구한 것들이 여러 가지 있잖아요. 그 것이 하나도 이행되지 않으니까 이제 한국 정부와 상대해봐야 될 일이 없다, 미-북 관계에서 돌파구가 열리지 않으면 남북관계에서 이뤄질 것이 없다고 판단한 거죠. 남북대화 해봐야 지금 아무런 소득이 없으니까 할 필요가 없는 거죠.”

미국을 상대로 기싸움을 벌이는 북한이 한국 정부에게 나서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곽길섭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체제연구실장입니다.

[녹취: 곽길섭 전 실장] “미국과 협상을 하고 그 다음에 한국 정부와 실제적인 경협이나 교류가 이뤄질 때는 모르지만, 지금 협상 단계에서는 더이상 한국 측에 나서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아산정책연구원 고명현 연구위원은 북한이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냈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고명현 연구위원] “지난해부터 남측에 원했던 것이 제재를 우회한 대북 경제 지원이었는데 그 것도 안하고 있으니까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고 여차하면 남북관계를 파탄 내겠다고 위협하는 거죠.”

북한은 올해 13차례의 각종 발사체 도발을 통해서도 대남 압박을 이어갔습니다.

지난 7월 말 신형 전술유도무기 위력시위 사격 직후 `조선중앙TV'의 보도 내용입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아무리 비위가 거슬려도 남조선 당국자는 오늘의 평양발 경고를 무시해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냉담한 태도는 지난 10월 금강산관광지구의 남측 시설 철거 요구로도 이어졌습니다. 한국 정부는 대면 협의를 제안했지만 북측은 하루 만에 거절했습니다.

통일부 이상민 대변인의 지난 10월 29일 브리핑입니다.

[녹취: 이상민 대변인] “남북관계의 모든 현안은 대화와 협의를 통해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달 11일 금강산관광지구 남측 시설의 철거를 최후통첩했습니다. 남조선 당국이 부질없는 주장을 고집한다면 시설 철거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고 일방적으로 철거를 단행하겠다고 경고한 겁니다.

그러면서, 미국이 무서워 지난 10여 년 동안 금강산관광 시설들을 방치했다며, 이제와서 한국 당국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한국 당국이 대북 제재 등을 이유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등에 나서지 않는데 대한 압박과 실망감의 표출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박형중 선임연구위원] “금강산이나 개성공단 재개는 북한이 한국 정부와 관계를 해야 하는 이유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지금 북한은 그것이 필요 없고 남측과 상관 안해도 우리 식대로 잘 살 수 있다는 메시지로 보여요.”

한국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보조를 맞추느라 남북이 합의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 등을 이행하지 않는 데 대한 불쾌감의 표현이라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고려대 북한학과 임재천 교수입니다.

[녹취: 임재천 교수] “북한이 조건 없는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재개 용의가 있으니 미국 눈치 보지 말라고 누차 강조했는데 한국이 안 움직이니까 남북관계가 어려워질 수 밖에 없죠.”

남한을 겨냥한 북한의 비난은 인도적 대북 지원과 관련해서도 이어졌습니다.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21일 내년에 쌀 5만t 을 북한에 지원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에 대해, ‘연말연시를 앞두고 대북 지원을 떠들어대며 꼴사납게 놀아대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의 압력에 눌려 북-남 선언의 어느 한 조항도 이행하지 못한 가련한 처지를 가리기 위한 놀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함께 세계보건기구(WHO)를 통한 북한 모자 의료지원 사업과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추진하는 북한 아동, 장애인 지원사업 등을 일일이 거론하며 ‘희떠운 소리’라고 비하했습니다.

이에 한국 정부는 대응하지 않겠다며 원칙적 입장을 견지할 뜻을 밝혔습니다. 지난 23일 통일부 이상민 대변인의 브리핑입니다.

[녹취: 이상민 대변인] “북한의 선전매체에 의한 그런 비난에 대해서 정부가 일일이 입장을 얘기하거나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보여지고요. 기본적으로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정책 또 여러 가지 어떤 교류협력이나 지원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입장을 계속 견지해 나갈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산정책연구원 신범철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의 대남 비난은 결국 한국이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한국 정부가 북한의 기대와는 달리 북한 편을 들지 않고 미국, 중국과 같이 국제사회와 공조하려는 모습을 보이니까…”

신 센터장은 북한이 기본적으로 남북관계를 미-북 관계의 하위구조로 여긴다는 점이 대남 비난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선미후남’ 전략으로 돌아섰다며,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결국 북-미 관계 개선 없는 남북관계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북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북-미 간 진전이 없는 한 남북관계는 당분간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미-북 비핵화 협상에서 극적인 진전이 이뤄지기 전에는 북한이 한국 정부를 상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한상미입니다.

독자 제보: VOA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사화를 원하는 내용을 연락처와 함께 Koreanewsdesk@voanews.com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뉴스 제작에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제공하신 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되며, 제보자의 신분은 철저히 보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