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동서남북] 북한 내각회의 “살림집, 상수도, 채소”

지난 24일 서울역에 설치된 TV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재한 정치국 회의 관련 소식이 나오고 있다.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이 ‘혁명의 수도’라고 부르는 평양 시민들이 요즘 상당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돗물 공급이 잘 안 되는 데다 채소(남새) 공급도 원활치 않다고 합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 핵심 계층인 평양 시민들이 요즘 갖가지 생활난을 겪고 있습니다.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27일 내각이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열고 평양 시민들의 생활보장 문제를 논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 회의 결정서에 제시된 과업을 철저히 관철할 데 대한 문제를 토의한 소식을 싣고..”

이날 회의를 주재한 김재룡 내각총리는 주택 개보수, 건물 개건,생활용수 공급, 채소 생산 증대 등을 논의했습니다.

이는 핵심 계층이 모여 사는 평양에도 주택(살림집)에 문제가 있고, 수돗물 공급이 잘 안 되며, 채소(남새)마저 부족하다는 얘기라고,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평양시는 북한에서 최고의 도시, 선망의 도시인데 주택 살림집 문제, 먹는 물 문제, 상수도도 제대로 공급이 안 되고, 남새 공급 안되고, 그러면 의식주 중에 먹는 것과 잠자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거죠.”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7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평양시민 생활보장을 위한 당면한 문제’를 다뤘습니다.

노동당 정치국과 내각회의가 수돗물과 채소 공급같은 문제를 다룬 것은 북한 정권이 경제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드문 사례라고, 미국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말했습니다.

[녹취: 윌리엄 브라운 교수] ”Accepting these problems for the first time remember..”

북한은 특히 식량난이 심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북한전문 매체인 ‘아시아 프레스’에 따르면 북한 내 옥수수(강냉이) 가격은 지난 3월부터 석 달 간 kg당 1천 800원-2000원 선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6월 11일까지 1천800원이었던 옥수수 가격은 24일 갑자기 2천 400원으로 크게 올랐습니다. 13일간 무려 33%나 오른 겁니다.

북한경제 전문가인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북한의 식량 사정이 악화된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쌀을 사기 힘들 때 옥수수를 구매했는데 최근 옥수수 값이 크게 올랐다는 겁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The general population, if they can’t afford rice…”

북한의식량 사정이 3-4월경 악화됐다는 것은 무역 통계로도 뒷받침됩니다.

최근 국제무역센터(ITC)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4월 러시아로부터 740만 달러 상당의 밀가루를 수입했습니다. 5월에는 중국으로부터 밀가루를 비롯한 945 만 달러 상당의 곡물 2만 9천t을 수입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 나왔던 구호와 표현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북한 관영 TV와 `노동신문’을 보면 ‘자력갱생’은 물론 ‘풀과 고기를 바꾸자’는 구호가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노동신문’도 2일 ‘정론’을 통해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속에서”라고 밝히는 등 최근의 경제난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3일 북한 평양 시민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는 최근 “2020년 북한경제, 1994년의 데자뷔인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북한이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겪을 가능성을 예고했습니다.

제재에 겹친 코로나 전염병 사태로 경제가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4년째 계속되는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 제재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북한경제는 돈줄이 말랐습니다.

북한은 그동안 석탄 수출 10억 달러, 의류 임가공 수출 7억 달러, 해외 파견 노동자 임금 3억 달러, 수산물 수출 1억5천만 달러 등 한 해 21억 달러가량을 벌어 들였습니다.

이렇게 번 돈으로 중국에서 석유, 기계류, 원자재, 식량, 비료, 밀가루, 설탕, 식용유, 의류같은 생활필수품을 사들여 경제를 꾸려갔습니다.

그러나 2016년부터 시작된 유엔 안보리의 제재는 북한의 수출과 외화벌이를 대부분 차단했습니다.

게다가 1월 말 북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유입을 막기 위해 중국과의 국경을 차단했습니다. 그러자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던 물자 흐름도 끊겼습니다.

그동안 중국산 물자는 트럭에 실려 북한 전역의 400여개 종합시장과 장마당에 공급됐습니다. 그런데 국경이 갑자기 차단돼 물품이 들어오지 않자 물가가 오른 것은 물론 생활필수품 공급이 끊긴 겁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북-중 국경 차단은 북한의 마지막 남은 외화벌이 수단도 끊었습니다. 그동안 중국은 100만 명 이상의 중국인 관광객을 북한에 보내 매년 3억 달러 이상을 벌게 해주었는데, 이것이 중단된 겁니다.

외화 사정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수출에서 수입을 뺀 것이 ‘무역적자’인데 북한은 지난 3년 간 중국에 대해 엄청난 무역적자를 기록했습니다.

2017년에는 16억 달러, 2018년에는 20억 달러, 그리고 2019년에는 23억5천만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3년 간 북한의 대중 무역적자를 모두 합치면 59억 달러에 이릅니다.

이런 추세를 보면 북한 당국이 보유한 외화보유고는 이제 고갈된 것같다고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정부 차원의 외화는 고갈된 것같습니다. 왜냐면 지난 3-4년 간 북한은 매년 20억달러씩 무역적자를 봤는데, 외화 보유고가 평균 잡아 50억 달러인데, 대중 무역적자만 50억 달러가 넘으니까, 달러가 고갈됐다고 봐야죠.”

흥미로운 점은 최근 북-중 국경지대에서 트럭들의 통행이 눈에 띄게 느는 등 국경 봉쇄가 완화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의 북한전문 매체 `38노스’가 지난달 23일 공개한 인공위성 사진에 따르면 중국 단둥에서 북한 신의주로 가는 21대의 트럭이 포착됐습니다. 촬영 전후로 북한에 간 트럭까지 합치면 수 십대가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교수는 북-중 교역이 5월부터 늘어난 것을 보면 국경이 일부 열린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윌리엄 브라운 교수] ”So the border started open in May, but even border is open North Korea doesn't have money to buy...”

북한 남포항에도 많은 유조선들이 입항하고 있습니다. VOA가 최근 민간 위성사진 자료를 분석한 결과, 남포 유류 하역 시설에 1-6월 기간 중 45척의 유조선과 선박이 드나든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전년도 같은 기간의 25척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과거 보다 더 많은 석유가 북한으로 반입됐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신압록강대교 공사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단둥과 신의주 남쪽을 연결하는 이 공사는 북한 측 접속도로와 통관시설 미비로 5년째 개통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난달 말부터 북한은 신압록강대교 북한 측 도로에 아스팔트 공사를 하는 한편 세관 건물을 짓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신압록강대교 개통이 조만간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 경제난은 미-북 관계에서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북한은 지난해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을 댓가로 대북 제재를 풀려다 실패했습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도 지난달 29일 “북한경제가 지난 몇 년 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마당에 북한이 왜 그런 태도를 취하는지 이해할 수없다”고 말했습니다.

[스티븐 비건 부장관 ]”In fact, very likely by open estimates that the North Korean economy is going to take an even more substantial step backwards than it has in previous years.”

북한 수뇌부가 최악의 경제난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