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새로 제정한 `육지국경법'이 신종 코로나 상황으로 가뜩이나 열악해진 탈북민들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고 탈북 지원단체들이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대부분 탈북민들이 한국 등 자유세계로 가기 위해 북-중, 동남아 국경을 모두 넘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란 전망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중국 ‘신화통신’ 등 관영매체들은 25일 중국의 국회격인 최고인민회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가 최근 국경 경비를 강화하는 `육지국경법' 제정안을 심의, 통과시켰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 매체들은 중국이 국가안보를 더욱 잘 유지하고 국경과 관련된 문제들을 법적 수준에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이 법률을 채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과 인도 등 14개 나라와 2만 2천 km에 달하는 국경을 마주하는 중국이 육상국경을 강화하기 위해 별도 법률을 제정한 것은 건국 이후 처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총 7장 62개 조로 구성돼 내년부터 발효될 이 법은 중국의 주권과 영토를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규정하고 위반자들에 대해 무력 행사를 정당화한 게 특징입니다.
특히 38조는 불법 월경 행위를 엄격히 통제하고 밀입국자가 체포에 불응하거나 폭력 행사, 또는 국경 지역 중국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할 경우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아울러 이런 무력 통제에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까지 동원할 수 있고, 국경 경비 강화를 위한 교통과 통신, 감시 시설 건설, 국경 안정을 손상시키는 모든 행위에 대비하고 타격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중국 언론과 외신들은 새 법률과 관련해 인도와의 국경분쟁,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통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위구르족 지원, 동남아시아 국경을 통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유입 차단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탈북 지원단체들은 중국의 새 육지국경법이 가뜩이나 어려운 탈북민들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는 25일 VOA에, 탈북민들은 중국 접경 지역을 두 번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새 법률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녹취: 김성은 목사] “탈북자한테는 이중으로 고통을 안기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북-중 국경이 굉장히 강화돼 있고, 또 강화된 곳을 목숨 걸고 헤쳐 나왔다 해도 동남아 국가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 길목까지 차단되면 탈북자들에게는 앞으로 탈출의 기회가 거의 없게 만드는 거나 마찬가지죠.”
북한 지도부가 코로나 대응으로 국경을 장기간 봉쇄하고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도 국경 통제를 강화해 탈북민들의 이동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중국의 새 법률 제정은 자유를 향한 탈북민들의 여정에 재앙과 같다는 겁니다.
한국 통일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민은 2003년 이후 해마다 2~3천 명을 유지했지만,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국경 경비 강화로 2012년부터는 연간 평균 1천 300명 대로 감소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 여파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지난해 입국 탈북민은 229명, 올해는 지난달까지 48명만이 입국했으며, 이마저도 대부분 코로나 이전에 탈북한 사람들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목사는 25일 오전 북한에서 중국으로 최근 탈출한 주민과 통화했다며, 어려운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했는데 도와줄 길이 없어 망막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성은 목사] “저한테 살려달라고 요청이 왔는데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아니 어떻게 이런 상황에 넘어왔냐고 물었더니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목숨을 거는 것 외에 북한에서 할 게 없다고. 이렇게 목숨을 걸고 넘어온 그 사람을 지금 상황에서 동남아로 이동시킬 수 없는데, 중국의 새 국경법마저 발효되면 앞으로는 탈북자 문제들을 정말 다룰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됩니다.”
세계 70개 이상의 민간단체와 개인 활동가들이 연대한 북한자유연합(NKFC)의 수전 숄티 의장은 중국의 육지국경법 발효로 탈북민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북한 내부 상황을 완전히 알 수 없지만 일부 주민들이 식량난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끔찍한 소식도 있어 걱정이 크다는 겁니다.
[녹취: 숄티 의장] “It's just gonna get worse and worse and worse. And we don't know the whole full extent of what's going on internally but there's a lot of reports, there's a lot of scary and from things coming out about what's happening and people dying in North Korea. I'm just so worried about it. We got to get that border open not further sealed shut.”
숄티 의장은 이 때문에 국경 봉쇄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주민들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중국과 북한 지도부가 국경을 닫지 말고 열 것을 촉구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탈북 지원단체들의 핵심 중개인으로 활동한 A 씨는 중국의 새 법률이 내년에 발효되면 중개비가 훨씬 더 오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체포 위험이 높아지면서 중국 내륙에서 동남아까지 이동하는 비용이 1인 당 평균 1만 달러로 치솟았는데, 중국이 국경 통제를 더 강화하면 탈북 기회는 더 줄고 비용은 역대 최대로 오를 수 있다는 겁니다.
[녹취: 중개인 A씨] “가격이 비싸진단 말입니다. 목숨 걸고 하는 사람들은 돈 보고 하지 않습니까?”
A 씨는 지난 8월 말 자오커즈 중국 국무위원 겸 공안부장과 이용남 주중 북한대사가 만난 뒤 두 나라 변경 지대 안정을 공동으로 수호하겠다고 강조하는 등 “북한 주민들의 탈출을 막기 위한 양국 정부의 의지가 매우 조직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 3국의 한 대북 소식통은 23일 VOA에 북한 지도부가 주민들의 대량 탈북과 체제에 대한 불만 고조를 막기 위해 코로나를 핑계로 국경을 봉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사실상 코로나 감염 위험이 없는 어부들의 조업마저 장기간 규제하는 것은 코로나 유입 위험보다 주민들의 탈북과 비사회주의 유입을 막기 위한 다목적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한국의 인권단체로 탈북민 구출 지원을 병행하는 북한인권시민연합 김영자 국장도 25일 VOA에 코로나를 핑계로 탈북 자체를 아예 봉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영자 국장] “코로나를 핑계로 확실하게 이용하는 거죠. 그래서 탈출구가 안 보여요. 그래서 저희도 이걸 어떡해야 하나? 아예 손을 딱 떼어야 하나? 도와줄 방법이 없고요.”
숄티 의장은 탈북민을 세상에서 가장 잘 대변할 주체는 헌법을 통해 이들을 자국민으로 수용하는 한국 정부라며,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인도적 차원의 탈북민 보호를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