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의 국경 봉쇄 조치가 장기화하면서 국제기구들의 대북 지원 사업들도 대부분 중단된 상황입니다. 일부 사업들은 코로나 상황 이전부터 북한의 지원 거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안소영 기자입니다.
세계식량계획(WFP)이 매달 대북 식량 지원 사업과와 관련해 공개하던 ‘북한 국가보고서’(WFP DPR Korea Country Brief) 를 마지막으로 낸 건 지난 2020년 1월입니다.
보고서에는 평양에 상주하는 직원들이 북한에서 펼친 영양지원 활동과 평가, 북한에 지원한 식량 규모, 수혜 주민 수와 북한 내 식량 사정 변화, 외부의 지원 현황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고 국제기구 직원들을 모두 철수하면서 보고서 발간이 1년 9개월째 중단되고 있습니다.
직원이 모두 철수하고 현장 방문 등 북한 내 활동에 차질이 생기면서 이 기구의 대북 지원 사업은 사실상 멈췄습니다.
WFP 대변인실은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아동기금(UNICEF, 유니세프)의 인도적 지원 물자가 북한에 반입된 것과 관련해, 자신들의 지원 물자는 화물에 포함되지 않았고 향후 계획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전 세계 30개 결핵 고위험국 가운데 하나인 북한에서 결핵 퇴치 사업을 벌이고 말라리아, 어린이 종합 백신을 지원하는 유니세프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니세프는 최근 몇 주 동안 어린이 영양실조와 결핵 치료 관련 물자를 북한에 보냈다고 확인했지만, 전례 없는 국경 봉쇄 장기화로 인한 지원 공백을 메우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오렌 슐레인 유니세프 서울 연락사무소장은 지난 15일 인천에서 열린 포럼에서 유니세프가 북한의 보건과 영양, 식수와 위생 등 여러 측면에서 진전을 이끌어 왔지만 신종 코로나 사태로 퇴보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특히 유니세프 측은 앞서 VOA에 그동안 대북 지원 물자가 북한에 반입되지 못하면서 지난해 10월 소아마비 백신 재고가 바닥났고, 3분기 경구용 소아마비 백신접종률은 전년 대비 97.3% 감소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결핵 치료제와 진단 장비가 부족하고 치료가 까다로운 다제내성 결핵 환자들이 치료 시기를 놓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다제내성 결핵 치료는 여러 가지 약을 혼합해 사용하는데 한 두 가지 약이 떨어지면 치료 효과가 현저히 감소합니다.
북한에서 20년 동안 결핵 치료 사업을 펼쳤던 미국의 한 구호단체는 26일 VOA에, 북중 국경이 재개방되면 국제기구와 지원 단체들이 신속히 사업을 재개할 것이라며, 우선순위는 후퇴한 북한 내부의 인도주의 상황을 복구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해마다 폭우와 홍수, 태풍의 영향을 받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복구 지원도 무산됐습니다.
지난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장기화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태풍과 폭우로 인한 자연재해 등 삼중고를 겪으면서도 전염병 유입을 막겠다며 수해 복구 과정에서 외부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유엔과 유럽연합 등 국제사회의 수해 복구 지원 의사에 북한은 호응하지 않았고 올해도 같은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작년에 이어 이들 기구는 북한의 관련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북한 당국으로부터 지원 요청이 들어오지는 않았다고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국제기구들의 대북 지원 사업이 중단된 것은 단지 신종 코로나 여파 때문만은 아닙니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벌이는 대북 사업 가운데 하나인 인구주택총조사(인구 센서스)는 지난 2008년을 마지막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 유엔인구기금은 10년 만에 북한 당국과 인구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북한이 유엔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무산됐고 이 같은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북한 인구센서스는 600만여 가구를 대상으로 4만 명의 조사요원이 동원돼 진행됩니다.
지난 1993년과 2008년 인구센서스 모두 유엔인구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됐습니다.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의 북한 내 작황 조사도 7년 넘게 중단됐습니다.
북한 당국의 공식 요청이 있어야 북한 현지에서 작황과 식량안보 조사를 벌일 수 있지만 북한이 요청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995년 시작된 북한 작황 조사는 FAO와 WFP가 조사단을 북한으로 파견해 작황 실태와 식량 안보를 파악하는 주요 정례 사업입니다.
2000년대에 네 차례나 방북 조사가 중단됐었지만 2010년부터 3년 동안 연속적으로 이뤄지다 2014년 이후 지금까지 재개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