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미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영화상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일명, 오스카상의 대학생 영화제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종군위안부를 주제로 한 작품이 애니매이션 부문 최고상을 받았습니다. 장양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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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비대면으로 열린 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학생아카데미 시상식(SAA).
[시상식 녹취] “I can assure you our winners are already hanging right back with their..”
데이비드 루빈 아카데미 회장은 제48회 학생아카데미 시상식 축하 연설에서 “도전을 공유하는 비전을 가진 예술가들을 축하한다”며 올해 수상자들의 비전과 상상력에 대한 믿음을 표명했습니다.
아카데미 측에 따르면 올해 미국 내 210개 대학과 126개 해외 소재 대학에서 출품된 1천400여 개 작품이 심사 대상이었습니다.
학생아카데미 시상식은 국제 학생영화제로 영화 인재 발굴을 목적으로 1972년 설립됐으며 미국과 해외 지역으로 나눠 애니매이션, 다큐멘터리, 실사, 실험영화 부문 금, 은, 동상을 각각 선정합니다.
올해 17명의 수상자 중 국내 애니메이션 부문 최고상은 명문 예술대인 미 서부 ‘캘리포니아 인스티튜트 오브 디 아츠’ 김수진 작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주제로 한 ‘잊히지 않는(Unforgotten)’에 돌아갔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입장이 다른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작품이 미 주류 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지난 1월 한국 법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통해 원고 1인 당 1억원, 미화 9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판결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2019년 일본 외무성의 ‘외교청서’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김 작가는 작품의 주제에 대해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 성노예로 고통받은 잊혀진 여성의 비극적이고 역사적인 투쟁에 대한 사회적 소외와 억압에 대한 조사 작업”라고 수상 소감을 통해 밝혔습니다.
‘잊히지 않는’은 고인이 된 김학순, 이화선, 김복동, 김순덕 등 4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풀었는데, 8분 간 계속되는 피해자들의 실제 음성이 상징적 형상과 함께 고요하면서도 역동적으로 흘러갑니다. 김수진 작가입니다.
[녹취: 화선 이야기 ‘잊히지 않은’ 중 / 김수진] “거기 뒷동산이 있거든, 동산에서 노는데 군복 입은 사람이 카라멜이라고 하데. 많이 줄테니까 가자고.. 김화선 할머니 이야기로 시작이 되죠. 어렸을 때 자주 놀던 동네로 동산 위로 올라갔는데 일본군을 만났고 카라멜을 주면서 따라오라고 유혹을 했죠. 배부르게 먹을 줄 알고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 갔는데, 저 먼 바다 넘어 어딘가로 가게 되는 것을 바다를 통해서 표현하고 싶었고, 빨간 상자들은 위안소에서 머무르셨던 작은 방이에요..”
영상은 시작부터 끝까지 증언자의 목소리를 따라 관객들의 시선을 이리저리 안내하는데, 두 번째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복동 할머니입니다.
[녹취:김복동 이야기’ 중] “공장에 손이 모자라니까 처녀들을 모집해간다. 그래 간 곳이 공장이 아니고..”
어둡고 거친 들판에 녹슬고 부서진 사람 형상들이 구부러져 있고, 형상들 사이로 두건을 쓴 여인의 뒷모습을 따라가니 갑자기 타버리고 수 천 마리 까마귀가 떼지어 날아갑니다.
세 번째 주인공 김순덕 할머니의 이야기는 위안소의 작은 방에서 시작하는데, 보름달 빛이 위안소 창문을 타고 침상을 비춥니다.
빨간색 천과 벽은 위안부와 위안소를 상징하는데, 벽이 산산이 부서지고 장면이 바뀌어 여성의 몸을 형상화한 커다란 두 암벽 사이로 빨간 천이 떨어집니다.
[녹취:김수진] “(순덕) 할머니가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당하니까, 여성들이 목을 매고 높은 데서 떨어지고 그렇게 자살을 했다. 목숨을 끊었다고 말씀하시는 순간 빨간색 큰 천이 떨어져요.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그 여성들을 천을 통해서 빗대서 표현을 했던거죠..”
위안소로 끌려가 하루에 수 십명의 군인을 상대하다 성병에 걸리고 도망가다 잡혀 감금당하고 폭행당했던 피해자들의 이야기.
영화는 이렇게 4명의 피해자 할머니 증언과 함께 이야기를 상징하는 영상들로 채워지는데 추상적 이미지와 사실적 이미지가 어우러져 작가의 메시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작가는 피해자의 모습과 고통, 가해자와 폭행 등도 추상적이면서 비유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천조각, 석상, 나비 등으로, 일본군은 거친 표면의 석상과 뱀 형상으로 또 고통은 붉은 색채와 부서진 돌상 등으로 담은 겁니다. 김 작가는 VOA에 구체적 설명보다 이미지로 보여지게 하고 싶었다며 이유를 설명합니다.
[녹취: 김수진] “돌을 머리에 이고 있는데, 돌상이 깨져요. 돌이 깨지면서 고통을 느끼잖아요. 저 여자들이 얼마나 아플까. 굳이 이 분들에게 채찍질이 가해지지 않아도, 불로 태우지 않아도 애니메이션에서 여성들이 머리를 바닥에 쳐박고 돌상이 깨지는 그 순간에 우리의 고통과 아픔이 이 여성들에 대한 연민..그게 (표현의)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작가는 무엇보다 해방 후 자유의 몸이 됐지만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평생 침묵할 수밖에 없는 수치스러운 아픔을 극복하고 목소리를 낸 피해자들의 용기를 조명했습니다.
[녹취: 김수진] “이 분들이 어떻게 고통을 당했고 버림을 받았고.. 라기보다는 제가 원치 않아도 전달해주지만, 정말 전하고 싶은 건 이 분들이 결국에는 목소리를 냈고 다시는 이런 일이, 후대에 어떤 전쟁에서도 여성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진술을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웬만한 용기에서 나올 수 없는 것이고 그 용기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어요.”
30년 전 녹음된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에는 누가 강요해서라 아니라 내 스스로 결심했고, 이제는 죽어도 좋으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겼습니다.
김학순 할머니는 1990년 일본 정부의 ‘일본군 군대위안부 관여 없다’는 발표에 분노해 이듬해인 1991년 최초 증언자로 나선 인물로 17세 때 중국 베이징에서 일본군 장교에게 성폭행을 당한 직후 위안소로 끌려갔습니다.
최근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뉴욕타임스' 신문은 뒤늦은 부고기사를 통해 김학순 할머니의 삶을 조명하기도 했습니다.
예술이 인간의 트라우마와 상처로부터 회복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김수진 작가는 2017년에 미국으로 유학, 올해 칼아츠에서 예술학 석사 과정을 마쳤고 현재 아리조나 주립대학교 미술대 3D 애니메이션 조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평소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김 작가는 2015년 한국 정부와 일본간 위안부 합의에 대한 피해자들의 분노와 한-일간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2019년 작품을 기획했습니다.
한국 여성가족부에 연락을 취하고 한국의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과 피해 할머니들의 거처이자 박물관인 ‘나눔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김수진] ”할머님들을 직접 만나는 것은 허락이 안 됐어요. 그 때는 문이 닫혀있었죠, 나눔의 집에 박물관이 있어요. 여러 물건이라든지 역사적인 내용들이 전시되고 할머님들 실제 패인 등을 보고 작품의 컨셉을 결정하게 됐어요. 그렇게나 폭력적이고 너무 여실하고 어떻게 했는데, 자기들의 상처를, 기억을, 감정을 표현한 그림은 너무 상징적인 거에요. 그걸 보면서 와 이거 누군가에게는 초현실적인 그림일 수 있는 거고, 상징화일 수도 있는 거고 그렇지만,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어요.”
나눔의 집에서 본 그림과 유품 등을 통해 작품 소재 등을 얻고 작품의 방향과 동기를 확실하게 얻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이를 통해 육체노동이 심한 영상작업이었지만 한 번도 제작 동기와 목적을 잃어본 적이 없었다고 회고합니다.
김 작가에 따르면 ‘3D애니메이션’은 물체를 컴퓨터에 형상화하고 물감을 칠하듯 작업하며 에니메이션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가상의 뼈대를 심은 등장인물이 움직이고 불, 물 등 자연 현상도 만들어내는 시뮬레이션 기법을 통해 제작합니다.
5천 달러의 상금과 오스카 트로피를 받게 된 김 작가는 “필름을 제작하는 사람에게 아카데미 수상 경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의미를 갖는다 “며 자신의 작품이 바깥 세상과 성공적이고 의미있게 소통했다는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과 이들의 용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잊히지 않는’은 현재 선댄스 영화제와 밴쿠버 국제 영화제,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 등 다수의 영화제에 출품됐습니다.
김 작가는 아카데미상 수상 후 많은 연락을 받고 있다면서 예술 장르로 위안부 문제가 국제사회에 더 많이 알려지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녹취: 김수진] “할머님들의 육성자료들을 들으면서 또 회고록들을 읽으면서 정말 많이 분노하고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분들은 피해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투사라고요 인생을 걸고 고통스러웠지만 인생을 걸고 후대에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세상에 고발하셨다는 것이 본질임을 제가 깨달았습니다. 제 작품을 통해서 평생을 피해자 프레임에 갇혀 있었을 할머님들과 세상에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목소리를 내주셨다는 것만으로도 할머님들께서는 그냥 피해자가 아니라 한 분 한 분이 위대한 인권운동가라고요.”
VOA뉴스 장양희입니다.